![]()
알에서 갓 나온 병아리. 눈을 뜬 지 얼마 안 된 이 작은 새가 사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 Petr Kratochvil (CC0)
여기 두 개의 도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무풍선처럼 둥글둥글한 얼룩, 다른 하나는 폭죽이 터진 듯 뾰족뾰족한 덩어리. 이 중 어느 쪽이 "부바(bouba)"이고, 어느 쪽이 "키키(kiki)"일까요?
둥근 쪽이 부바, 뾰족한 쪽이 키키. 거의 모든 사람이 이렇게 답합니다. 한국어, 영어, 타밀어, 스와힐리어 어느 언어를 쓰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결과는 비슷합니다. 그런데 지난 2월, 한 이탈리아 연구팀이 이 질문을 알에서 갓 나온 병아리에게 던졌고, 병아리마저도 사람과 같은 답을 내놨습니다. 3억 년 전에 갈라진 먼 친척이 같은 대답을 한 겁니다.
이 현상의 이름은 '부바-키키 효과(bouba-kiki effect)'입니다. 사람이 특정한 소리를 특정한 모양과 일관되게 연결하는 경향을 가리키죠.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닌데, 이 연결은 문화권을 가로질러 놀라우리만큼 일치합니다.
2022년 독일·폴란드 연구팀이 25개 언어권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조사에서, 17개 언어권의 사람들이 둥근 모양을 부바, 뾰족한 모양을 키키라고 답했습니다. 중국어·루마니아어·터키어 등 소수 예외가 있었지만, 이 예외들도 해당 언어의 문자 체계가 다른 연상을 덮어썼기 때문으로 해석됐죠. 바꿔 말하면 인류는 언어가 달라도 같은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
부바-키키 효과의 대표 이미지. 왼쪽은 '부바', 오른쪽은 '키키'로 읽힌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 중 95% 이상이 이렇게 답한다. ⓒ Bendž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이 현상을 처음 학문적으로 기록한 사람은 독일 심리학자 볼프강 쾰러(Wolfgang Köhler)입니다. 1929년, 쾰러는 책 속에 둥근 도형과 뾰족한 도형을 나란히 그려놓고 독자에게 물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 '마루마(maluma)'이고 어느 쪽이 '타케테(takete)'인가?" 거의 모든 사람이 둥근 쪽을 마루마, 뾰족한 쪽을 타케테라고 답했습니다.
쾰러는 여기서 의미심장한 가능성을 봤습니다. 소리와 모양 사이에 인간이 공유하는 '기본값 연결'이 있다면, 인류 최초의 단어들은 바로 그 직관을 이용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2001년 신경과학자 V. S. 라마찬드란(Ramachandran)과 에드워드 허버드(Hubbard)도 같은 실험을 '부바'와 '키키'라는 새 이름으로 재현했고, 미국 대학생과 인도 타밀어 사용자 모두 95~98%가 같은 답을 골랐습니다. 라마찬드란은 이 직관이 "최초 언어의 뼈대였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
독일계 미국인 심리학자 볼프강 쾰러(1887~1967). 1929년 책에서 '마루마/타케테' 실험을 기록하며 부바-키키 효과를 학계에 처음 소개했다. ⓒ Historical Library, Swarthmore College (CC BY-SA 2.5)
문제는 이 직관이 언제 어떻게 생기는가였습니다. 어른이 단어와 모양을 맞출 수 있는 건 평생 쌓아온 언어 경험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요. 인간 아기가 통과하긴 했지만, 아기도 이미 엄마 목소리와 수많은 소리 환경에 노출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언어 경험이 거의 없는 동물'을 실험 대상으로 찾아 나섰고, 결과는 엇갈렸습니다. 2019년과 2022년 침팬지·보노보 실험에서는 부바-키키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거든요. 이때까지만 해도 '이 효과는 인간 뇌의 고유한 특징'이라는 결론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였습니다.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마리아 로콘솔레(Maria Loconsole) 연구팀은 여기서 시야를 확 넓혔습니다. 병아리라면 알에서 나오자마자 실험이 가능하고, 세상의 어떤 소리 환경에도 아직 물들지 않은 상태라는 것. 더 결정적인 건 병아리의 조상이 인간과 갈라진 시점이었습니다. 약 3억 년 전. 이 먼 친척이 부바와 키키를 구별한다면, 이 감각은 언어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동물계 어딘가에 이미 존재했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
알에서 막 빠져나오는 병아리. 연구팀은 이처럼 세상을 처음 마주한 병아리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알 밖 경험이 없는 뇌가 어떤 답을 내놓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 Linsenhejhej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실험 장치는 단순했습니다. 병아리 앞에 두 개의 화면을 놓고, 한쪽에는 둥근 꽃 같은 도형을, 다른 쪽에는 만화 속 폭발 같은 뾰족한 도형을 띄웁니다. 그다음 사람이 녹음해 둔 "부바" 또는 "키키" 소리를 들려주고 병아리가 어디로 가는지 관찰합니다. 어린 병아리는 호기심이 많아서 낯선 자극 쪽으로 걸어가는 습성이 있는데, 연구팀은 그 '첫걸음'의 방향을 신호로 삼았습니다.
결과는 깔끔했습니다. "부바" 소리를 들은 병아리 중 80%가 둥근 모양 쪽으로 먼저 다가갔고, 그 앞에서 평균 3분 이상 서성였습니다. 뾰족한 모양 앞에서는 1분도 머물지 않았습니다. "키키"로 바뀌면 선호도가 정반대로 뒤집혔습니다. 알에서 나온 지 하루 또는 사흘밖에 안 된 개체들입니다. 언어 훈련, 사회적 학습, 세상 경험이 전무한 뇌가 소리와 모양의 쌍을 가려낸 겁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폴란드 코페르니쿠스 대학의 언어학자 알렉산드라 치비에크(Aleksandra Ćwiek)의 반응이 인상적입니다.
"새와 우리는 3억 년 전 진화의 길에서 갈라졌습니다. 이건 정말 머리가 멍해지는 결과예요."
![]()
실험 대상이 된 어린 병아리. 병아리는 눈을 뜬 순간부터 낯선 자극 쪽으로 걸어가려는 성향이 강해서, '부바' 소리 후 둥근 모양으로 다가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유의미한 선호를 읽어낼 수 있었다. ⓒ Kamalimaddy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이 결과는 한 세기 동안 '언어 기원의 단서'로 여겨졌던 부바-키키 효과의 위상을 흔듭니다. 치비에크의 표현이 날카로웠는데요. "부바-키키가 언어 기원 문제의 해답이 될 거라는 가능성은, 오히려 이번 결과로 덜 흥미로워졌어요. 이제 이건 '언어 이전(pre-language)'의 문제가 된 거니까요."
한 가지 흥미로운 가설은 이 효과가 물리 세계의 구조에서 온다는 겁니다. 둥근 물체가 바닥에 굴러다닐 때 내는 소리는 대체로 낮고 이어지는 반면, 뾰족한 물체가 부딪힐 때 내는 소리는 높고 날카롭게 끊어집니다. 진화 과정에서 동물이 '눈에 보이는 형태'와 '귀에 들리는 소리'를 재빨리 짝지을 수 있다면, 먹이와 포식자를 구분하는 속도가 빨라졌을 겁니다. 인간과 병아리가 같은 답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을지도 모릅니다.
로콘솔레의 마지막 말이 남겼던 여운이 있습니다.
"언어가 인간만의 것이라고 해도, 그 뿌리가 되는 능력까지 인간만의 것은 아닙니다."
언어를 만든 뇌의 회로는 진화의 훨씬 이른 시기에 이미 거기 있었다는 말입니다. 병아리는 지금도 우리에게 그 힌트를 던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1. Loconsole, M., Benavides-Varela, S., Regolin, L., "Matching sounds to shapes: Evidence of the bouba-kiki effect in naïve baby chicks", Science, 2026. doi:10.1126/science.adq7188
2. Ćwiek, A. et al., "The bouba/kiki effect is robust across cultures and writing systems",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 2022. doi:10.1098/rstb.2020.0390
3. Ramachandran, V. S. & Hubbard, E. M., "Synaesthesia — a window into perception, thought and language", Journal of Consciousness Studies, 2001.
4. Köhler, W., "Gestalt Psychology", Liveright, 1929.
5. Cottier, C., "Baby chicks pass the 'bouba-kiki' test, challenging a theory of language evolution", Scientific American, May 2026.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