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옮길 수 있을까? 8미터 혹등고래와 바닷가 사람들의 사흘

The Finch2026. 5. 13.

고래를 옮길 수 있을까? 8미터 혹등고래와 바닷가 사람들의 사흘

혹등고래⁠(Megaptera novaeangliae)⁠는 평소엔 거대한 몸짓으로 바다를 가르지만, 일단 모래에 얹히면 자신의 무게에 깔려 죽는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Giles Laurent

11월의 어느 오후, 미국 오리건주의 작은 해안 마을 야챗⁠(Yachats) 북쪽 해변. 길이 약 8미터⁠(26피트)⁠짜리 어린 혹등고래 한 마리가 모래사장 위로 떠밀려 왔습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약 800미터 떨어진 바다 한복판에서 게잡이 통발 줄에 휘감겨 몸부림치던 녀석이었죠. 한 주민이 헤엄쳐 나가 가슴지느러미를 옥죈 밧줄을 잘라 줬지만, 고래는 방향을 바꾸지 못한 채 얕은 파도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해안에 모인 사람들은 곧장 구조 전화를 돌렸습니다. 약 32킬로미터 북쪽 뉴포트에 본부를 둔 오리건 해양포유류 좌초 네트워크 소속 전문가 두 명이 도착했지만, 그들의 대답은 단호했죠. 짙은 안개, 거세지는 만조, 곧 닥칠 어둠 때문에 다음 날 아침 전에는 상태 평가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사람들이 손으로 직접 밀어 바다로 돌려보내면 되지 않을까요? 길이 8미터짜리 고래쯤이야 여럿이 힘을 합치면 옮길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과학자들이 한사코 말리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육상에 좌초된 고래의 몸이 자기 체중에 깔리는 메커니즘 도식

좌초된 고래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는 도식. 바닷속에서는 부력이 장기를 떠받쳐 주지만, 모래 위에선 두꺼운 지방층이 폐와 신장을 짓누른다. 출처: Finch 편집부 자체 제작 일러스트

다 자란 혹등고래의 몸무게는 최대 약 36톤⁠(8만 파운드)⁠에 달합니다. 이들의 몸은 애초에 물속에 떠 있도록 설계돼 있죠. 바닷속에서는 부력이 거대한 몸을 받쳐 주지만, 일단 뭍에 얹히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두꺼운 지방층과 근육 덩어리가 폐, 신장, 간 같은 내부 장기를 그대로 짓누르기 시작하거든요. 이른바 좌초성 근병증 또는 압궤 손상이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2018년 《PLOS ONE》에 발표된 한 연구는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브라질 해안에 좌초된 혹등고래들을 부검한 카치아 그로치⁠(Kátia Regina Groch) 박사 연구팀은, 좌초 개체들이 광범위한 근육 괴사와 장기 손상을 동반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다시 말해 외상이 보이지 않더라도, 몸 안에선 이미 회복 불능의 손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거죠. 깊은 물로 되돌려 보내도 결국 죽는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고래의 거대한 몸은 그 자체로 흉기가 됩니다. 2017년 북대서양에서 그물에 얽힌 한 고래를 풀어 주던 베테랑 구조대원이, 풀려난 고래의 꼬리지느러미 한 번에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일반 시민이 혹등고래에게 약 90미터⁠(100야드)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구조 시도 자체를 법으로 막아 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죠.

좌초 고래 구조에서 사용되는 도르래·앵커·슬링 장비 구성 도식

전문가가 좌초 고래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낼 때 쓰는 도르래, 앵커, 슬링 시스템 도식. 야챗에선 도르래 해제 장치가 부러지고 밧줄이 끊어졌다. 출처: Finch 편집부 자체 제작 일러스트

야챗에 모인 시민들은 그런 사정을 모르는 채 밤새 양동이 릴레이로 고래의 피부를 적셨고, 파도에 맞춰 손으로 밀었습니다. 12시간 넘게 그렇게 매달렸지만 만조는 무심히 왔다 갔고, 고래는 꼬리에서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결국 사흘째 되던 날, NOAA 인증 전문 구조팀이 도르래와 앵커, 슬링을 동원해 본격적인 견인을 시도했죠. 하지만 도르래 해제 장치가 부러지고 밧줄이 끊어졌고, 두 번의 만조 동안 물 밖에 노출된 고래는 더 이상 살릴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안락사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네덜란드 라젠더 볼 모래톱에 좌초된 혹등고래

2012년 12월, 네덜란드 라젠더 볼 모래톱에 좌초된 혹등고래. 야챗 사례와 마찬가지로 자기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폐사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Ecomare, Salko de Wolf

좌초 고래의 안락사를 어떻게, 또 언제 결정해야 하는가는 여전히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2021년 학술지 《Animals》에 실린 레베카 보이스⁠(Rebecca M. Boys) 박사 연구팀의 논문은, 전 세계적으로 이 데이터가 거의 기록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죠. 어떤 약물을, 얼마만큼, 어느 부위에 투여했는지조차 표준화돼 있지 않다는 겁니다. 야챗에서도 결국 수의 기술자들이 진정제를 먼저 놓은 뒤 긴 주사기로 안락사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이 쓰였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조금 의외인 대목은, 안락사 직전 콘페더레이티드 실레츠 부족이 해변에 모여 기도와 북소리로 고래에게 감사 의식을 올렸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오리건주 정부와의 합의에 따라, 한 세대 만에 처음으로 고래의 고기, 지방, 뼈를 수습할 권리를 얻었거든요. 지방은 비누 재료로, 뼈는 깨끗해질 때까지 비밀스러운 장소에 묻어 둘 예정이었습니다.

야챗 해변에 모였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 62세의 은퇴한 건축업자 롭 히터⁠(Rob Heater)⁠는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페이스북에 정치 게시물을 30번씩 공유하며 무력감에 시달리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고래의 몸에 손을 댄 순간,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한 박자로 움직이며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을 만지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고 했죠. 결과적으로 고래는 죽었지만, 그 밤에 함께 파도를 맞은 낯선 이들은 40년 지기 친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전문가가 보기에 그 시도는 무모했고, 그 자리에서 사람이 다칠 위험도 매우 컸습니다. 동시에, 그 무모함은 우리가 자연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으려는 본능이기도 합니다. 과학은 종종 고래를 살리는 가장 빠른 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실이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한다면, 그건 어쩌면 아직 우리 안에 자연을 향해 응답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참고문헌

1. Groch, K. R., Díaz-Delgado, J., Marcondes, M. C. C., et al. (2018). "Pathology and causes of death in stranded humpback whales (Megaptera novaeangliae) from Brazil." PLOS ONE, 13(5), e0194872. DOI: 10.1371/journal.pone.0194872

 2. Boys, R. M., Beausoleil, N. J., Betty, E. L., & Stockin, K. A. (2021). "Deathly Silent: Exploring the Global Lack of Data Relating to Stranded Cetacean Euthanasia." Animals, 11(5), 1460. DOI: 10.3390/ani1105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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