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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등고래(Megaptera novaeangliae)는 평소엔 거대한 몸짓으로 바다를 가르지만, 일단 모래에 얹히면 자신의 무게에 깔려 죽는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Giles Laurent
11월의 어느 오후, 미국 오리건주의 작은 해안 마을 야챗(Yachats) 북쪽 해변. 길이 약 8미터(26피트)짜리 어린 혹등고래 한 마리가 모래사장 위로 떠밀려 왔습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약 800미터 떨어진 바다 한복판에서 게잡이 통발 줄에 휘감겨 몸부림치던 녀석이었죠. 한 주민이 헤엄쳐 나가 가슴지느러미를 옥죈 밧줄을 잘라 줬지만, 고래는 방향을 바꾸지 못한 채 얕은 파도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해안에 모인 사람들은 곧장 구조 전화를 돌렸습니다. 약 32킬로미터 북쪽 뉴포트에 본부를 둔 오리건 해양포유류 좌초 네트워크 소속 전문가 두 명이 도착했지만, 그들의 대답은 단호했죠. 짙은 안개, 거세지는 만조, 곧 닥칠 어둠 때문에 다음 날 아침 전에는 상태 평가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사람들이 손으로 직접 밀어 바다로 돌려보내면 되지 않을까요? 길이 8미터짜리 고래쯤이야 여럿이 힘을 합치면 옮길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과학자들이 한사코 말리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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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초된 고래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는 도식. 바닷속에서는 부력이 장기를 떠받쳐 주지만, 모래 위에선 두꺼운 지방층이 폐와 신장을 짓누른다. 출처: Finch 편집부 자체 제작 일러스트
다 자란 혹등고래의 몸무게는 최대 약 36톤(8만 파운드)에 달합니다. 이들의 몸은 애초에 물속에 떠 있도록 설계돼 있죠. 바닷속에서는 부력이 거대한 몸을 받쳐 주지만, 일단 뭍에 얹히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두꺼운 지방층과 근육 덩어리가 폐, 신장, 간 같은 내부 장기를 그대로 짓누르기 시작하거든요. 이른바 좌초성 근병증 또는 압궤 손상이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2018년 《PLOS ONE》에 발표된 한 연구는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브라질 해안에 좌초된 혹등고래들을 부검한 카치아 그로치(Kátia Regina Groch) 박사 연구팀은, 좌초 개체들이 광범위한 근육 괴사와 장기 손상을 동반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다시 말해 외상이 보이지 않더라도, 몸 안에선 이미 회복 불능의 손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거죠. 깊은 물로 되돌려 보내도 결국 죽는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고래의 거대한 몸은 그 자체로 흉기가 됩니다. 2017년 북대서양에서 그물에 얽힌 한 고래를 풀어 주던 베테랑 구조대원이, 풀려난 고래의 꼬리지느러미 한 번에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일반 시민이 혹등고래에게 약 90미터(100야드)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구조 시도 자체를 법으로 막아 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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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좌초 고래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낼 때 쓰는 도르래, 앵커, 슬링 시스템 도식. 야챗에선 도르래 해제 장치가 부러지고 밧줄이 끊어졌다. 출처: Finch 편집부 자체 제작 일러스트
야챗에 모인 시민들은 그런 사정을 모르는 채 밤새 양동이 릴레이로 고래의 피부를 적셨고, 파도에 맞춰 손으로 밀었습니다. 12시간 넘게 그렇게 매달렸지만 만조는 무심히 왔다 갔고, 고래는 꼬리에서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결국 사흘째 되던 날, NOAA 인증 전문 구조팀이 도르래와 앵커, 슬링을 동원해 본격적인 견인을 시도했죠. 하지만 도르래 해제 장치가 부러지고 밧줄이 끊어졌고, 두 번의 만조 동안 물 밖에 노출된 고래는 더 이상 살릴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안락사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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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네덜란드 라젠더 볼 모래톱에 좌초된 혹등고래. 야챗 사례와 마찬가지로 자기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폐사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Ecomare, Salko de Wolf
좌초 고래의 안락사를 어떻게, 또 언제 결정해야 하는가는 여전히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2021년 학술지 《Animals》에 실린 레베카 보이스(Rebecca M. Boys) 박사 연구팀의 논문은, 전 세계적으로 이 데이터가 거의 기록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죠. 어떤 약물을, 얼마만큼, 어느 부위에 투여했는지조차 표준화돼 있지 않다는 겁니다. 야챗에서도 결국 수의 기술자들이 진정제를 먼저 놓은 뒤 긴 주사기로 안락사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이 쓰였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조금 의외인 대목은, 안락사 직전 콘페더레이티드 실레츠 부족이 해변에 모여 기도와 북소리로 고래에게 감사 의식을 올렸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오리건주 정부와의 합의에 따라, 한 세대 만에 처음으로 고래의 고기, 지방, 뼈를 수습할 권리를 얻었거든요. 지방은 비누 재료로, 뼈는 깨끗해질 때까지 비밀스러운 장소에 묻어 둘 예정이었습니다.
야챗 해변에 모였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 62세의 은퇴한 건축업자 롭 히터(Rob Heater)는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페이스북에 정치 게시물을 30번씩 공유하며 무력감에 시달리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고래의 몸에 손을 댄 순간,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한 박자로 움직이며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을 만지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고 했죠. 결과적으로 고래는 죽었지만, 그 밤에 함께 파도를 맞은 낯선 이들은 40년 지기 친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전문가가 보기에 그 시도는 무모했고, 그 자리에서 사람이 다칠 위험도 매우 컸습니다. 동시에, 그 무모함은 우리가 자연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으려는 본능이기도 합니다. 과학은 종종 고래를 살리는 가장 빠른 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실이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한다면, 그건 어쩌면 아직 우리 안에 자연을 향해 응답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1. Groch, K. R., Díaz-Delgado, J., Marcondes, M. C. C., et al. (2018). "Pathology and causes of death in stranded humpback whales (Megaptera novaeangliae) from Brazil." PLOS ONE, 13(5), e0194872. DOI: 10.1371/journal.pone.0194872
2. Boys, R. M., Beausoleil, N. J., Betty, E. L., & Stockin, K. A. (2021). "Deathly Silent: Exploring the Global Lack of Data Relating to Stranded Cetacean Euthanasia." Animals, 11(5), 1460. DOI: 10.3390/ani1105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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