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짓기 너무 힘들어서, 이웃집 둥지를 통째로 털었습니다

The Finch2026. 5. 14.

둥지 짓기 너무 힘들어서, 이웃집 둥지를 통째로 털었습니다

붉은빛이 선명한 이이위⁠(Drepanis coccinea). 하와이 마우이섬 할레아칼라 국립공원의 호스머 그로브에서 촬영된 이 새는 곡선형 부리로 토종 꽃의 꿀을 빨아 먹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 Kanalu Chock

1885년 하와이섬 마우나로아 화산이 폭발했습니다. 흘러내린 용암은 토종 숲을 통째로 덮어버렸지만, 다 태우진 못했죠. 군데군데 살아남은 작은 숲 조각이 검은 용암 들판 사이에 섬처럼 떠 있게 됐는데요. 하와이 사람들은 이 숲 섬을 키푸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키푸카가 오늘날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작은 새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됐죠.

이 새들이 바로 하와이 꿀빨이새, 영어로는 하와이언 허니크리퍼입니다. 모기가 올라오지 못하는 해발 1,5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살면서, 길쭉하게 휜 부리로 토종 꽃의 꿀을 빨아 먹죠. 한때 50종이 넘게 번성했지만, 외래종 모기와 조류 말라리아 때문에 지금은 17종 남짓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멸종 위기죠.

그런데 2026년 봄, 이 작은 생존자들에게서 좀 황당한 행동이 발견됐습니다. 옆집 둥지에서 나뭇가지를 훔쳐 자기 둥지에 갖다 붙이고 있었던 거예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이야기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의 곤충학자 에린 윌슨 랭킨⁠(Erin E. Wilson Rankin) 박사 연구팀이 던진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새들이 둥지를 짓는 과정을 GPS로 정밀하게 따라가 보면, 우리가 모르던 행동이 잡히지 않을까.

GPS 추적으로 잡힌 꿀빨이새의 둥지 재료 절도 동선 도식

그림: GPS로 추적한 216개 둥지 중 39개에서 발견된 둥지 재료 절도 행위 도식. 도둑새가 옆집 둥지에서 나뭇가지를 빼내 자기 둥지로 가져가는 동선을 보여줍니다. ⓒ The Finch

연구팀은 하와이섬의 키푸카 숲에서 꿀빨이새 216개 둥지에 GPS 추적 장치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정리해 2026년 학술지 《아메리칸 내추럴리스트》에 발표했죠. 둥지 39개에서 도둑질 현장이 잡혔습니다. 무려 18%⁠죠. 그것도 다 한 종 안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이위⁠(ʻiʻiwi), 아파파네⁠(ʻapapane), 그리고 황금빛 깃털을 가진 종까지, 세 종이 서로의 둥지를 가리지 않고 털었습니다.

이 행동에는 둥지 재료 절도 기생, 학술 용어로는 네스트 머티리얼 클렙토파라시티즘⁠(nest material kleptoparasitism)⁠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요. 다른 새의 둥지에서 재료를 훔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랭킨 박사는 자신들도 깜짝 놀랐다고 말했죠. 지금까지 노래하는 새 40종 이상에서 이런 절도가 일화처럼 보고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숫자로 정리된 연구는 처음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왜 굳이 훔치는 걸까요. 잘 생각해 보면 답이 보입니다. 둥지 짓기는 정말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먼저 작은 나뭇가지를 부리로 부러뜨려 바닥을 깔고, 컵 모양으로 정교하게 엮은 다음, 그 안쪽을 더 가늘고 부드러운 재료로 덧대야 합니다. 알을 따뜻하게 품으려면 단열도 잘 돼야 하죠.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어떤 재료가 좋은지 아는 경험이 동시에 필요한 작업입니다.

이 연구의 또 다른 저자인 미국 매사추세츠 휘튼 대학의 조류 생태학자 제시 놀튼⁠(Jessie Knowlton) 박사는 데이터에서 흥미로운 패턴을 찾아냈습니다. 꿀빨이새가 둥지를 터는 시점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거죠. 이들은 평소 먹이를 찾는 높이와 똑같은 높이의 둥지에서만 재료를 훔쳤습니다. 자기가 늘 다니던 길목에 마침 빈 둥지가 있으면, 살짝 들러서 챙기는 식이었다는 얘기입니다.

놀튼 박사는 이걸 자연선택이 빚은 효율 전략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새 가지를 찾아 멀리 날아갈 필요도, 부리로 따로 가공할 필요도 없으니, 둥지 짓는 데 드는 에너지와 위험을 한꺼번에 줄일 수 있죠. 어린 새일수록 둥지를 잘 못 짓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종의 학습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 섐페인 캠퍼스의 보전생물학자 제프 브론⁠(Jeff Brawn) 박사는 좋은 재료를 골라내는 안목 자체가 시간과 기술을 요구한다고 설명했죠.

둥지 짓기 비용과 도둑질 비용을 비교한 진화적 비용편익 도식

그림: 처음부터 둥지를 짓는 데 드는 에너지와 옆집 둥지에서 재료를 훔칠 때의 비용을 비교한 도식. 시간, 에너지, 천적 노출, 기생충 감염 위험이 양쪽 저울에 올라가 있습니다. ⓒ The Finch

그렇다면 도둑질에는 위험이 전혀 없을까요. 그건 또 아닙니다. 연구에 따르면 털린 둥지 39곳 중 5곳은 그때까지도 부모 새가 알이나 새끼를 품던 활성 둥지였습니다. 그중 2건은 도둑이 다녀간 직후 부모가 둥지를 버렸고, 새끼는 살아남지 못했죠. 즉 약 5%⁠의 절도 행위가 그대로 둥지 실패로 이어진 셈입니다. 빈 둥지에서 훔치는 경우도 안전하지만은 않습니다. 미국 노스텍사스 대학교의 보전생물학자 제임스 베드나즈⁠(James C. Bednarz) 박사는 이전 번식 시도에서 남은 깃털 진드기나 깃 이가 새 새끼에게 그대로 옮겨갈 수 있다고 지적했죠. 결국 모든 게 비용 편익 분석이라는 거예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다른 새들보다 하필 하와이 꿀빨이새들이 이런 행동을 더 자주 보일까요. 베드나즈 박사는 그 답을 키푸카라는 환경 자체에서 찾았습니다. 용암으로 잘게 쪼개진 숲에서는 좋은 둥지 재료를 찾는 게 더 어렵죠. 이런 곳에서는 훔치다 들킬 위험보다, 재료를 못 구해 둥지를 완성하지 못할 위험이 더 클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하와이 마우이섬 할레아칼라 국립공원에서 촬영된 아파파네 꿀빨이새

아파파네⁠(Himatione sanguinea). 진홍색 깃털과 검은 부리가 특징인 토종 꿀빨이새로, 이번 연구에서 도둑새인 동시에 피해자로 자주 관찰됐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0) / Alan Schmierer

하와이 꿀빨이새들의 조상은 약 570만 년 전, 카우아이섬과 니이하우섬이 막 바다 위로 솟아오를 무렵 아시아에서 날아온 한 작은 핀치였습니다. 2011년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헤더 러너⁠(Heather R. L. Lerner) 박사 연구팀의 분석은 이 한 마리의 후손이 섬을 옮겨 다니며 50종 넘는 꿀빨이새로 폭발적으로 갈라졌다는 사실을 보여줬죠. 부리 모양도 새마다 제각각이 됐고요. 적응방산이라 부르는 이 진화의 교과서 같은 사례가 지금 우리가 보는 꿀빨이새들입니다.

그런데 화려한 진화의 끝자락에 서 있는 이들 앞에는 기후 변화, 질병, 외래종이라는 거대한 벽이 줄지어 있습니다. 따뜻해진 날씨가 모기를 산 위로 밀어 올리고, 폭풍이 둥지를 부수고, 외래종 쥐가 알과 새끼를 노리죠. 거기에 더해, 이웃이 들이닥쳐 둥지 재료까지 빼앗아 가는 겁니다. 놀튼 박사는 이걸 이들이 짊어진 또 하나의 도전이라고 표현했죠.

참 묘한 풍경 아닌가요. 한쪽에서는 수백만 년에 걸친 적응방산이 만들어 낸 정교한 부리로 꿀을 빨고, 다른 한쪽에서는 옆집 둥지에서 잔가지 하나라도 더 챙기려 부지런히 오간다는 거죠. 자연선택이 빚어낸 두 얼굴이 같은 새 안에 공존하는 셈입니다. 다음에 작은 새가 부리에 나뭇가지 하나 물고 있는 모습을 보거든, 그게 어디서 온 가지인지 한 번쯤 의심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1. Wilson Rankin, E. E., Knowlton, J. L., Flaspohler, D. J., & Rankin, D. T. (2026). "Upcycling in the Hawaiian Islands: Native Forest Birds Commonly Engage in Nest Material Kleptoparasitism." The American Naturalist. DOI: 10.1086/740144

2. Lerner, H. R. L., Meyer, M., James, H. F., Hofreiter, M., & Fleischer, R. C. (2011). "Multilocus Resolution of Phylogeny and Timescale in the Extant Adaptive Radiation of Hawaiian Honeycreepers." Current Biology, 21(21), 1838-1844. DOI: 10.1016/j.cub.2011.09.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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