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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에서 '딸깍' 하고 짧게 터지는 소리가 납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리듬을 가진 소리의 묶음입니다. 이 소리의 주인공은 지구에서 가장 큰 이빨을 가진 동물, 향유고래(Physeter macrocephalus)죠.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이 딸깍 소리를 모스 부호처럼 읽으려고 해왔습니다. 몇 번을 딸깍거렸고, 어떤 리듬으로 딸깍거렸는지. 그런데 2026년 4월 14일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새로운 연구가 발표됐습니다. 이 소리 속에 사람의 'ㅏ'와 'ㅣ' 같은 '모음'이 숨어 있었다는 겁니다.
향유고래는 이빨고래(odontoceti) 중에서도 가장 큰 종입니다. 다 자란 수컷은 몸길이가 16~18m에 이르고, 무게는 50~60톤까지 나갑니다. 더 놀라운 건 뇌죠. 향유고래의 뇌 무게는 약 8kg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 중 가장 큽니다. 사람 뇌의 5배가 넘는 크기인 겁니다.
이들의 사는 방식도 독특합니다. 암컷과 새끼들로 이루어진 '사회적 단위(social unit)'를 만들어 함께 다니고, 수컷은 성체가 되면 따로 고위도 바다로 떠납니다. 한 단위에 속한 향유고래들은 수십 년에 걸쳐 서로를 알아보고, 사냥을 함께 하고, 새끼를 돌보면서 살아갑니다.
향유고래가 서로 어떻게 '대화'하는지는 오래전부터 해양생물학자들의 숙제였습니다. 고래가 내는 소리는 크게 보면 두 종류입니다. 먹이 사냥에 쓰는 빠르고 강한 반향 정위(echolocation) 클릭, 그리고 가족 사이에서 주고받는 '코다(coda)'라는 리듬 패턴이죠. 코다는 짧은 클릭 몇 번을 특정한 박자에 맞춰 묶어 놓은 일종의 '소리 꾸러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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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셔스 해역에서 헤엄치는 향유고래 가족. 향유고래는 암컷과 새끼로 이루어진 가족 단위로 평생을 함께 보냅니다. 사진=Gabriel Barathieu/Wikimedia Commons (CC BY-SA 2.0)
향유고래가 클릭 소리를 내는 방식은 다른 어떤 동물과도 닮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성대(vocal cords)를 떨어 소리를 내고, 다른 이빨고래들은 머리 안쪽에 두 쌍의 '음성 입술(phonic lips)'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향유고래만큼은 큰 코 앞쪽에 오직 한 쌍의 음성 입술만 가지고 있고, 그것도 머리의 맨 앞, 숨구멍 바로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죠.
프랑스어로 '원숭이 주둥이(museau de singe)', 영어로는 '몽키 립스(monkey lips)'라고도 부르는 이 기관입니다. 향유고래는 오른쪽 콧구멍으로 들어온 공기를 세게 밀어 이 한 쌍의 두꺼운 검은 입술을 진동시켜 첫 딸깍음을 만듭니다.
이 소리는 곧장 뒤쪽으로 이동합니다. 머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뇌유 기관(spermaceti organ)'이라는 거대한 기름 주머니를 통과하고, 뒤쪽의 막주머니(frontal sac)에 반사된 뒤 앞쪽의 '멜론(melon)'이라는 또 다른 지방 구조에서 초점이 맞춰져 바깥으로 쏘여 나갑니다. 이 과정이 몇 밀리초 사이에 반복되면서, 단 한 번의 '딸깍'은 실제로는 여러 겹의 펄스가 겹친 복합 구조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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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고래의 거대한 머리. 이 머리의 상당 부분이 소리 생성과 반사를 담당하는 경뇌유 기관과 멜론 지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진=Bernard Spragg/Wikimedia Commons (CC0)
이번 연구의 핵심 데이터는 한 사람의 끈질긴 기록에서 나왔습니다. 캐나다 출신 고래 생물학자 셰인 게로(Shane Gero)는 2005년부터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 도미니카 앞바다에서 향유고래 가족들을 추적해왔습니다. 도미니카 향유고래 프로젝트(Dominica Sperm Whale Project)라는 이름 아래, 그는 20개가 넘는 사회적 단위의 향유고래들을 이름으로 구별하고, 이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수천 시간 넘게 녹음했죠.
2020년에는 여기에 대형 연구 컨소시엄이 합류했습니다. 'Project CETI(Cetacean Translation Initiative, 고래 언어 해독 프로젝트)'입니다. MIT, UC 버클리, 하버드, 도미니카 정부 등의 연구진이 머신러닝과 로봇공학을 총동원해 향유고래 소리를 해독하려는 시도입니다.
2024년 5월, CETI 팀은 이 녹음 자료 속 코다 9,000여 개를 분석해 Nature Communications에 중요한 논문 한 편을 실었습니다. MIT의 프라툐샤 샤르마(Pratyusha Sharma) 박사과정생이 이끈 이 연구는 향유고래 코다가 단순한 리듬 패턴이 아니라, 리듬·템포·루바토(rubato, 속도 변화)·장식음(ornamentation) 네 가지 요소가 조합된 '음성학적 알파벳(phonetic alphabet)'이라는 걸 밝혀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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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로조(Roseau) 앞바다에서 잠수를 준비하며 몸을 기울인 향유고래. 이 지역 가족들이 이번 '모음' 발견의 데이터 원천입니다. 사진=Michelle Reback/Wikimedia Commons (CC BY-SA 3.0)
그리고 2026년 4월, UC 버클리 언어학과 부교수 가슈페르 베구시(Gašper Beguš)가 이끄는 CETI 연구팀은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또 다른 한 걸음을 내딛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번엔 코다의 리듬이 아니라, 딸깍음 하나하나의 '음색'에 주목했습니다.
사람 말의 모음은 공명 주파수(formant, 포먼트)로 구별됩니다. 입과 목의 모양을 바꾸면 어떤 주파수 대역이 크게 울리는지가 달라지고, 그 차이가 'ㅏ'와 'ㅣ'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인 거죠. 베구시 팀은 향유고래의 딸깍음에도 이 포먼트가 두 가지 다른 패턴으로 나타난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두 유형을 각각 'a-코다'와 'i-코다'로 불렀습니다(이름은 사람 언어의 ㅏ, ㅣ에서 따온 임의적인 이름일 뿐입니다).
문제는, 이 차이가 사람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소리를 몇 배 빠르게 재생해야 비로소 두 음색이 서로 다르게 들릴 정도죠. 하지만 스펙트로그램(spectrogram) — 소리에 담긴 주파수를 시각화한 그래프 — 위에서는 두 유형이 뚜렷이 갈렸습니다. 연구진은 향유고래가 코 안쪽의 '먼쪽 공기주머니(distal air sac)' 모양을 조절해 공명 주파수를 바꾸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입과 혀 모양으로 'ㅏ'와 'ㅣ'를 구별해 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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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등고래 노래의 스펙트로그램. 가로축은 시간, 세로축은 주파수입니다. 사람 목소리의 모음도 이런 스펙트로그램 위에서 서로 다른 주파수 띠로 구별됩니다. 이미지=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두 종류의 클릭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언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만약 a-코다와 i-코다가 아무 데나 무작위로 섞여 있었다면, 이 차이는 그냥 우연한 음색 변화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중요한 건 그다음입니다.
베구시 팀이 분석해보니, 두 유형은 분명한 규칙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딸깍 … 딸깍 … 딸깍딸깍딸깍' 같은 특정 리듬 패턴에서는 a-코다와 i-코다가 반반씩 섞였고, 다른 리듬 패턴에서는 a-코다가 대부분이고 i-코다는 드물게 나타났죠. 또 a-코다는 대체로 짧은 반면, i-코다는 짧은 것과 긴 것 두 가지 형태가 모두 있었습니다.
사람 언어에서 흔히 보는 현상이죠. 아랍어에서는 모음의 길이가 단어의 뜻을 바꾸고, 영어에서는 'ship'과 'sheep'처럼 미묘한 모음 차이가 전혀 다른 단어를 만들어냅니다. 향유고래들이 '어느 리듬에서 어떤 모음을 몇 번 쓸지'를 사실상 골라 쓰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 모음 차이가 실제로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논문 주저자 베구시는 "이 소리들이 의미를 담고 있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능력이 어떤 목적을 위해 진화했을 가능성은 큽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스토니브룩 대학의 동물 의사소통 연구자 메이슨 영블러드(Mason Youngblood)는 Scientific America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소리들이 우리가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외계 지능처럼 느껴왔던 '딸깍' 소리가, 사실 사람 언어와 놀랍도록 닮은 구조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향유고래들이 서로에게 뭘 말하는지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한 겹의 베일은 확실히 걷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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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카이코우라 앞바다의 향유고래. 이 거대한 동물들은 수백 미터 깊이의 바닷속에서 자기들만의 '모음'을 쓰며 서로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사진=Marion & Christoph Aistleitner/Wikimedia Commons (CC0)
1. Parshall, A. (2026.04.14). Sperm whales may make their own vowel sounds, similar to human language. Scientific American.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sperm-whales-may-make-their-own-vowel-sounds-similar-to-human-language/
2. Beguš, G., Dąbkowski, M., Sprouse, R. L., Gruber, D. F., & Gero, S. (2026). The phonology of sperm whale coda vowel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 293(2069), 20252994. https://royalsocietypublishing.org/doi/10.1098/rspb.2025.2994
3. Sharma, P., Gero, S., Payne, R. et al. (2024). Contextual and combinatorial structure in sperm whale vocalisations. Nature Communications, 15, 3617.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4-47221-8
4. UC Berkeley News (2026). UC Berkeley and Project CETI study shows sperm whales communicate in ways similar to humans. https://ls.berkeley.edu/news/uc-berkeley-and-project-ceti-study-shows-sperm-whales-communicate-ways-similar-humans
5. MIT News (2024.05.07). Exploring the mysterious alphabet of sperm whales. https://news.mit.edu/2024/csail-ceti-explores-sperm-whale-alphabet-0507
6. Project CETI. Sperm Whale Phonetic Alphabet Proposed for the First Time. https://www.projectceti.org/blog-posts/sperm-whale-phonetic-alphabet-proposed-for-the-first-time
7. Dominica Sperm Whale Project. http://www.thespermwhaleprojec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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