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칩 과식하고 흙을 퍼먹는 원숭이들이 있다고?

The Finch2026. 4. 22.

감자칩 과식하고 흙을 퍼먹는 원숭이들이 있다고?

지브롤터의 바위 위에서 관광객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바버리마카크. 이들은 간식으로 얻은 정크푸드를 소화시키려 흙과 점토를 찾아 먹는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 3.0) / AlexCurl

스페인 남쪽 끝, 지중해 입구에 솟은 거대한 석회암 바위가 하나 있습니다. 높이 426m의 지브롤터의 바위⁠(Rock of Gibraltar)⁠인데요. 이 바위에는 지구상에 단 한 곳, 유럽 대륙에서 유일하게 야생 상태로 살아가는 원숭이 무리가 있죠. 바로 약 230마리의 바버리마카크⁠(Barbary macaque, Macaca sylvanus)⁠입니다.

그런데 이 원숭이들이 최근 좀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풀도 아니고 과일도 아닌, 붉은 흙덩이를 일부러 퍼먹기 시작한 거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지브롤터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바버리마카크

지브롤터 바위에 앉아 있는 바버리마카크⁠(Macaca sylvanus). 유럽 대륙에 남은 유일한 야생 원숭이 집단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Diego Delso

바버리마카크는 원래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알제리의 아틀라스 산맥에 살던 종입니다. 2005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라라 모돌로⁠(Lara Modolo) 스위스 취리히대학교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지브롤터의 무리는 알제리와 모로코 두 지역의 계통이 섞여 있는 이중 기원 집단이죠. 사람 손에 의해 옮겨진 개체들이 수백 년간 섬처럼 고립된 채 자리 잡은 결과입니다.

문제는 이 작은 영토가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명소라는 점인데요. 원숭이들에게는 씨앗, 과일, 잎사귀 대신 감자칩과 샌드위치, 초콜릿바, 달콤한 음료가 끊임없이 손에 쥐어집니다. 2026년 4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실뱅 르무안⁠(Sylvain Lemoine) 박사 연구팀이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브롤터 마카크가 먹이를 먹는 시간의 약 20%⁠가 이런 인간 가공식품으로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르무안 박사팀은 9곳의 서식지에서 무려 612시간 넘게 원숭이들을 따라다니며 관찰했는데요. 그 결과 최소 44마리의 개체에서 46건에 이르는 흙 먹기⁠(geophagy) 행동이 기록됐습니다. 그냥 실수로 입에 들어간 게 아니었습니다. 원숭이들은 특정 붉은 점토⁠(terra rossa) 노두를 골라서 손으로 긁어 먹거나 바위를 핥듯이 섭취했죠. 이처럼 흙을 의도적으로 먹는 현상을 학계에서는 지오파지⁠(geophagy)⁠라 부릅니다.

바위 위에서 정면을 바라보는 바버리마카크

바위 위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바버리마카크. 관광객이 주는 간식은 원래 이들의 식단에 없던 음식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Diego Delso

그럼, 이들은 왜 흙을 먹을까요? 사실 영장류의 지오파지 자체는 꽤 오래 전부터 알려진 현상입니다. 2019년 《미국물리인류학회지》에 실린 파울라 펩스워스⁠(Paula Pebsworth) 텍사스대학교 박사 연구팀의 종합 리뷰는 전 세계 영장류 136종에서 흙 먹기가 보고됐다고 정리했죠. 1993년 《영장류⁠(Primates)》에 실린 캐나다 요크대학교 윌리엄 머해니⁠(William Mahaney) 박사팀의 분석에서는 일본원숭이⁠(Macaca fuscata)⁠가 골라 먹는 흙에서 카올리나이트⁠(kaolinite)⁠라는 점토 성분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카올리나이트는 사람이 설사약을 만들 때도 쓰는 성분입니다. 장 속에 얇은 막을 형성해 자극 물질을 빨아들이고, 독소와 세균을 흡착하죠. 이 때문에 학자들은 동물의 지오파지를 일종의 자가 치료 행위⁠(zoopharmacognosy)⁠로 해석해 왔습니다. 말하자면 자연산 위장약인 셈이죠.

르무안 박사는 지브롤터 마카크의 행동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설탕과 지방은 많고 섬유질은 거의 없는 간식이 장에 부담을 주자, 원숭이들이 스스로 흙을 먹어 속을 달래고 있다는 거죠. 흙 속의 미네랄과 미생물이 부족한 영양을 채우고, 점토가 장 내벽에 막을 깔아 설사와 구토를 줄인다는 가설입니다.

지브롤터 바위에서 쉬고 있는 바버리마카크 가족

지브롤터 바위 위에서 휴식 중인 바버리마카크 가족. 연구팀은 46건의 흙 먹기 사례 중 89%⁠가 다른 개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났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 2.0) / Jon Rawlinson

흥미로운 사실은 이 행동이 단독 행위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연구팀의 집계에 따르면, 흙 먹기 사건의 약 30%⁠는 두 마리 이상이 같은 바위에 모여 함께 점토를 먹는 장면이었고, 전체의 89%⁠는 최소한 다른 원숭이 한 마리가 옆에서 지켜보는 상황에서 벌어졌습니다. 연구진은 이 때문에 지브롤터의 지오파지가 사회적 학습을 통해 번지고 있는 문화적 전통일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새끼가 어미의 입을 쳐다보며 따라 먹는 거죠.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흙 먹기 빈도가 여름, 즉 관광객이 가장 몰리는 시기에 급격히 증가했다는 겁니다. 관광객 발길이 뜸해지면 흙도 덜 먹는다는 뜻인데요. 이 통계는 이 행동이 단순한 우연이나 습관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식단 압력에 반응한 결과임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르무안 박사는 성명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식량이 부족한 시기를 견디기 위해 고열량 지방과 당을 갈망하도록 진화했고, 이 회로가 지금은 우리로 하여금 정크푸드를 끊지 못하게 만들고 있죠. 같은 진화적 스위치가 마카크에게도 켜졌을 수 있습니다." 즉, 사람이 감자칩을 멈출 수 없는 이유와 원숭이가 초콜릿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가 같은 뿌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지브롤터의 원숭이들이 흙을 먹는 모습은 얼핏 귀엽고 신기한 해프닝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장면은 사실 우리가 무심코 건넨 간식 한 봉지가 야생 동물의 소화기관에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한 마리의 원숭이가 붉은 흙덩이를 입에 넣는 순간, 그건 인간 문명이 만든 식탁이 어떤 식으로 자연에 스며드는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거울이 됩니다. 우리에게도 왠지 모르게 익숙한 장면 아닌가요?

참고문헌

1. Frater, J., et al. (2026). "Geophagy in Gibraltar Barbary macaques is a primate tradition anthropogenically induced."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41598-026-44607-0

2. Modolo, L., Salzburger, W., & Martin, R. D. (2005). "Phylogeography of Barbary macaques (Macaca sylvanus) and the origin of the Gibraltar colony." PNAS, 102(20), 7392-7397. DOI: 10.1073/pnas.0502186102

3. Pebsworth, P. A., Huffman, M. A., Lambert, J. E., & Young, S. L. (2019). "Geophagy among nonhuman primates: A systematic review of current knowledge and suggestions for future directions." 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 168(S67), 164-194. DOI: 10.1002/ajpa.23724

4. Mahaney, W. C., Hancock, R. G. V., & Inoue, M. (1993). "Geochemistry and clay mineralogy of soils eaten by Japanese macaques." Primates, 34(1), 85-91. DOI: 10.1007/BF02381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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