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광년 밖 우주의 바다레몬, 29년 만에 허블이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The Finch2026. 4. 22.

5,000광년 밖 우주의 바다레몬, 29년 만에 허블이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2026년 4월에 공개한 삼렬성운 일부. 주황빛 가스 구름이 레몬 혹은 바다민달팽이처럼 보인다. 출처: NASA, ESA, STScI (Public Domain) / Image processing: J. DePasquale (STScI)

5,000광년 떨어진 곳에 레몬을 닮은 주황빛 구름이 하나 떠 있습니다. 머리에는 뿔이 하나, 몸통은 울렁울렁, 마치 바다를 헤엄치는 갯민숭달팽이⁠(sea slug) 같기도 하죠. NASA와 ESA가 허블 우주망원경 발사 36주년을 맞아 2026년 4월에 공개한 새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NASA는 이 장면에 꽤 귀여운 별명을 붙였는데요. 바로 우주의 바다레몬⁠(Cosmic Sea Lemon)입니다. 실제 바다에 사는 노란 민달팽이류 바다레몬⁠(Doris pseudoargus)⁠을 닮았다는 거죠. 그런데 이 귀여운 별명 뒤에는, 29년을 기다려야만 확인할 수 있었던 진지한 과학이 숨어 있습니다.

레몬의 정체, 그리고 삼렬성운

이 주황빛 구름이 떠 있는 곳은 정식으로는 삼렬성운⁠(Trifid Nebula, M20, NGC 6514)이라고 불립니다. 사수자리 방향, 약 5,000광년 떨어진 별 탄생 지역⁠(HII 영역)⁠이죠. 어두운 먼지 띠 세 갈래가 밝은 성운을 세 조각으로 가른다고 해서 삼렬⁠(三裂)⁠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성운이 사실 아주 젊다는 점입니다. 2006년 《The Astrophysical Journal》에 실린 미 NASA 에임스연구센터의 정희 로⁠(Jeonghee Rho) 박사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삼렬성운은 약 30만 년 전쯤 빛을 내기 시작한, 우주적 기준으로는 갓난아기 같은 성운이죠. 같은 연구팀은 스피처 우주망원경으로 이 성운 안에서 약 160개의 젊은 별⁠(YSO)을 찾아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레몬은, 갓 태어난 별들의 요람 한 귀퉁이인 셈이에요. 그 요람을 달구고 있는 건 성운 바깥쪽에 있는 O형 거대 별 HD 164492A입니다. 이 뜨거운 별이 자외선을 쏟아내며 주변 가스를 이온화하고, 강한 별 바람으로 구름을 조각내고 있죠.

삼렬성운 전체 모습

삼렬성운⁠(M20)⁠의 전체 모습. 어두운 먼지 띠가 빛나는 가스를 세 조각으로 가르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ESO (CC BY 4.0) / European Southern Observatory

레몬의 뿔이 말해주는 것

허블이 새로 공개한 이미지를 자세히 보면, 레몬의 왼쪽 머리 위로 가느다란 뿔 같은 게 삐죽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게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천문학자들이 허빅-아로 399(Herbig-Haro 399, HH 399)라고 부르는 천체인데요.

허빅-아로 천체가 뭐냐고요? 쉽게 말하면, 아직 완전히 별이 되지 못한 원시성⁠(protostar)⁠이 양쪽 극축으로 뿜어내는 플라즈마 제트가 주변 가스 구름과 부딪히며 빛을 내는 현상입니다. 젊은 별이 자라면서 몸에 쌓이는 회전 에너지를 분출해 버리는, 일종의 별의 성장통 같은 거죠.

그러니까 레몬의 뿔은 장식이 아니라, 레몬 머리 안에 숨어 있는 아기 별이 수백 년에 걸쳐 주기적으로 뿜어낸 가스 트림 자국인 겁니다. 꽤 낭만적이지 않나요?

1997년 허블이 포착한 삼렬성운 속 플라즈마 제트

1997년 허블이 포착한 삼렬성운 속 허빅-아로 제트의 근접 촬영본. 2026년 이미지와 비교하면 29년 사이 제트가 얼마나 움직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출처: NASA, ESA, The Hubble Heritage Team (Public Domain) / AURA/STScI

29년을 기다려 찍은 같은 장면

여기서 허블의 진짜 기술이 드러납니다. 사실 허블은 이 장면을 1997년에도 한 번 찍어뒀어요. 당시에는 광시야 행성 카메라 2(WFPC2)⁠라는 구형 카메라로였죠. 그로부터 무려 29년 뒤인 2026년, 이번에는 현역 카메라인 광시야 카메라 3(WFC3)⁠으로 정확히 같은 지점을 다시 겨눴습니다.

왜 굳이 그랬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제트가 얼마나 빨리,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재기 위해서죠. 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모든 게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하지만 시간을 충분히 길게 잡고 두 장의 사진을 겹쳐 보면, 제트 끝자락이 실제로 앞으로 밀려나온 모습이 드러납니다. 같은 성운을 한 세대 가까이 두 번 찍을 수 있는 망원경은 사실 허블 말고는 거의 없죠.

연구자들은 이렇게 측정한 제트의 속도와 팽창 폭으로 원시성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별이 태어나는 과정을 그야말로 실시간 동영상처럼 보는 셈이에요.

레몬 주변, 또 다른 이야기들

2018년 《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에 발표된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UNAM)⁠의 마우리시오 타피아⁠(Mauricio Tapia) 박사 연구팀 논문은 삼렬성운 중심부에서 HH 399의 반대쪽 제트⁠(counterjet) 후보까지 찾아냈는데요. 원시성이 양쪽으로 플라즈마를 뿜는다는 건 이론적 예측이었지만, 실제 관측으로 그 쌍둥이를 집어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죠.

더 최근인 2024년 《The Astrophysical Journal》에 실린 인도 타타기초연구소 바스와티 무커르지⁠(Bhaswati Mookerjea) 박사와 캐나다 SOFIA팀 괴란 샌델⁠(Göran Sandell) 박사 연구팀은, 삼렬성운이 초속 5km로 바깥쪽으로 팽창하고 있으며 이 팽창을 밀고 있는 주된 동력이 HD 164492A 별이 뿜어내는 별 바람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팽창하는 껍질의 질량만 태양 질량의 516배나 된다고 하죠.

VISTA 적외선 망원경이 포착한 삼렬성운

ESO의 VISTA 적외선 망원경으로 본 삼렬성운. 먼지에 가려져 있던 은하 반대쪽의 세페이드 변광성까지 드러났다. 출처: ESO / VVV consortium (CC BY 4.0) / D. Minniti

귀여운 별명 뒤에 숨은 우주의 시간

처음엔 그저 바다레몬처럼 생긴 예쁜 성운 정도로 보였을지 몰라도,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건 한 세대 가까이 찍은 두 장의 사진 사이를 움직인 제트의 실제 흔적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제 막 태어나려 애쓰는 별이 있고, 그 아기 별을 달구는 어른 별이 있고, 그 어른 별의 바람에 떠밀려 넓어지는 가스 껍질이 있어요.

우리가 별을 볼 때 대개는 정지한 점으로 보기 마련인데요. 하지만 허블이 29년에 걸쳐 찍은 이 두 장은, 별조차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단지 사람 한평생은 그 움직임을 체감하기엔 너무 짧을 뿐이죠.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우리는 앞으로 29년 뒤 이 바다레몬을 또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허블은 1990년에 발사돼 설계 수명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관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퇴역하겠죠. 그때 이 바통을 받아 같은 장면을 다시 찍어줄 망원경이, 우리 곁에 준비돼 있을까요?

참고문헌

1. Rho, J. Reach, W. T. Lefloch, B. & Fazio, G. G. (2006). "Spectacular Spitzer Images of the Trifid Nebula: Protostars in a Young, Massive-Star-forming Region." The Astrophysical Journal, 643(2), 965-977. DOI: 10.1086/503245

 2. Tapia, M. Persi, P. Román-Zúñiga, C. Elia, D. Giovannelli, F. & Sabau-Graziati, L. (2018). "The star-forming cores in the centre of the Trifid nebula (M 20): from Herschel to the near-infrared." 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 475(3), 3029-3045. DOI: 10.1093/mnras/sty048

 3. Mookerjea, B. & Sandell, G. (2024). "Tracing the Layers of Photodissociated Gas in the Trifid Nebula." The Astrophysical Journal, 962(2), 132. DOI: 10.3847/1538-4357/ad19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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