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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윈린현 마이랴오의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 산업단지. 이곳의 나프타 분해 시설은 아시아 플라스틱 공급망의 한 축을 담당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 4.0) / Malcolm Koo
2026년 3월, 한국의 대형마트 진열대에서 쓰레기봉투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대량으로 사재기에 나선 거였죠. 며칠 뒤 인도 최대 생수업체는 한 병 가격을 10% 이상 올렸고, 대만 정부는 플라스틱 공급업체에게 의료용을 먼저 챙기라고 요청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페르시아만에서 시작된 충격이 한 달도 안 돼 동아시아 식탁과 약장 안까지 도착한 거예요.
그 사이를 잇는 끈은 단 하나,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이라는 가느다란 바닷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왜 기름 한 척이 멈췄다고 봉지와 페트병 가격까지 출렁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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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산 나프타가 아시아의 분해 공장을 거쳐 봉지, 페트병, 자동차 부품으로 흘러가는 경로 도식. 한 길목이 막히면 그 끝에 있는 소비자 물가까지 흔들린다. 출처: Finch 편집부 자체 제작 일러스트
현대인이 매일 만지는 플라스틱은 거의 모두 석유와 천연가스에서 나옵니다. 그중 핵심 원료가 나프타(naphtha)라는 옅은 노란색 액체인데요. 정유 공장에서 원유를 끓여 분리한 가벼운 기름 성분이 바로 이 나프타입니다. 이걸 900도 가까운 고온 분해기에 통과시키면 에틸렌과 프로필렌이 떨어져 나오고, 다시 이걸 줄줄이 엮으면 우리가 아는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페트가 되는 거죠.
문제는 이 첫 단추가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점입니다. 2025년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된 카울라 우세이니(Khaoula Houssini) 중국 칭화대학교 환경학원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거래된 플라스틱 관련 물질은 약 4억 3,666만 톤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원료와 화학 중간체는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출발해 대부분 동아시아 분해 공장으로 향하죠.
아시아 석유화학 산업은 나프타를 평균 70%까지 수입해 쓰고, 그 다수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에서 옵니다. 이 화물의 거의 모든 배가 폭이 33km에 불과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하죠. 이란 사태로 해협이 일부 봉쇄되자, 곧바로 중국,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의 석유화학 기업들이 줄줄이 불가항력 선언을 내놓았습니다. 계약대로 물건을 댈 자신이 없다는 비상 신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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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에서 나프타, 에틸렌, 그리고 폴리에틸렌과 페트로 이어지는 화학 변환 단계 도식. 한 단계라도 끊기면 그 아래 단계 전체가 멈춘다. 출처: Finch 편집부 자체 제작 일러스트
그럼, 이 충격은 우리 일상까지 어떻게 번질까요? 가장 빠르게 반응한 곳은 가격표입니다. 미국 다우는 3월에 북미 폴리에틸렌 가격을 파운드당 10센트 올렸고, 4월엔 15센트 인상안을 발표한 뒤 곧장 두 배로 늘렸으며, 5월엔 다시 20센트 추가 인상을 예고했습니다. 같은 기간 중국에서는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페트 가격이 일제히 30% 이상 뛰었죠. 폴리에스터로 짠 옷, 카펫, 가구 가격에도 같은 압력이 걸리고 있습니다.
제조 현장은 더 직접적입니다. 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합성 고무장갑의 절반 가까이를 생산하는데, 한 업체가 원료값 폭등을 이유로 이번 달부터 가동을 줄이겠다고 발표했고 다른 업체들은 가격을 40%까지 인상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타이어 공장들은 합성 고무 부족에 시달리는 중이고요. 미국 화학경제 전문지 《Chemical & Engineering News》의 알렉산더 툴로 기자는 "고무가 빡빡해지면 타이어 생산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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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거장에 쌓인 페트병. 우리가 매일 쓰는 이 작은 용기 하나에도 호르무즈를 건너온 나프타가 녹아 있다. 출처: Unsplash (Unsplash License) / Nick Fewings
왜 이렇게 한 길목이 흔들리는 것만으로 시장 전체가 출렁이는지를 두고, 학계는 오래전부터 경고를 보내 왔습니다. 2023년 《Global Networks》에 실린 중국 둥베이사범대학교 쉰 순(Xin Sun) 박사 연구팀의 분석은, 1990년대 이후 세계 석유와 가스 무역 네트워크가 점점 더 소수 거점에 집중되며 이른바 구조적 취약성이 커졌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한 거점에 문제가 생기면 충격이 줄어들기는커녕 네트워크 전체로 빠르게 번진다는 거죠.
플라스틱은 한번 만들어지면 끝이 아니라 폐기까지 또 한번 국경을 넘나듭니다. 2023년 《ACS Sustainable Chemistry & Engineering》에 발표된 미국 피츠버그대학교의 일라이자 스미스(Elijah Smith) 박사 연구팀의 마르코프 연쇄 분석에 따르면,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의 흐름은 생산과 마찬가지로 몇몇 무역 허브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고, 이 흐름이 끊기면 폐기물 관리 실패율이 즉시 치솟는다고 합니다. 만드는 길도, 버리는 길도 모두 가느다란 끈으로 매달려 있는 셈이죠.
이번 사태의 의외인 대목은 미국 쪽 풍경에 있습니다. 미국 석유화학 회사들은 셰일가스를 캐낼 때 함께 나오는 에탄을 분해해 폴리에틸렌을 만드는데, 이 원료는 중동에서 오지 않거든요. 그래서 다우 같은 미국 기업의 원료비는 별로 오르지 않았는데, 시장이 빠듯하다는 이유만으로 판매 가격은 올리고 있습니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은 빠듯하니, 우리가 부르는 값이 시세가 되는 상황"이라고 미드스트림 에너지 그룹의 석유화학 전문가 앤 켈러는 설명합니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라고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셰일가스 기반 에탄 분해로는 비교적 단순한 일회용 봉지나 페트병 정도밖에 만들지 못하거든요. 자동차 부품이나 의료 장비처럼 단단하고 정밀한 플라스틱은 결국 나프타가 있어야 만들어지고, 이런 부품은 여전히 아시아에서 수입됩니다. 호르무즈가 막힌 효과가 미국 시민의 자동차 정비소에 도달하는 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뜻이죠.
휴스턴대학교의 에너지 경제학자 에드 허스 박사는 이 흐름을 "슬금슬금 소비자 지갑 속으로 파고드는 끈질긴 종류의 인플레이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기름값처럼 한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라면 봉지부터 자동차 범퍼까지 곳곳에서 조용히 가격을 끌어올린다는 거예요.
플라스틱은 한때 가장 싸고 가장 흔한 물질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가벼움을 누리고 있던 사이, 그 흐름은 어느덧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단 하나의 가느다란 바닷길에 매여 있게 됐죠. 마트의 쓰레기봉투 사재기, 인도 생수병의 인상된 가격표는 어쩌면 "플라스틱 의존 사회"라는 우리의 익숙한 풍경이 얼마나 외부 충격에 약한지를 잠깐 보여주는 거울 같은 장면 아닐까요?
1. Houssini, K., Li, J., & Tan, Q. (2025). "Complexities of the global plastics supply chain revealed in a trade-linked material flow analysis."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 6, 257. DOI: 10.1038/s43247-025-02169-5
2. Sun, X., Wei, Y., Jin, Y., Song, W., & Li, X. (2023). "The evolution of structural resilience of global oil and gas resources trade network." Global Networks. DOI: 10.1111/glob.12399
3. Smith, E., Bilec, M. M., & Khanna, V. (2023). "Evaluating the Global Plastic Waste Management System with Markov Chain Material Flow Analysis." ACS Sustainable Chemistry & Engineering, 11(11), 4495-4506. DOI: 10.1021/acssuschemeng.2c04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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