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가 없던 앵무새가 무리의 1위가 된 방법

The Finch2026. 4. 24.

부리가 없던 앵무새가 무리의 1위가 된 방법

뉴질랜드의 산악 앵무새 케아. 출처: Wikimedia Commons (CC0 1.0) / Bernard Spragg. NZ

뉴질랜드에는 케아라는 앵무새가 삽니다. 산악 지대에 사는 이 새는 호기심이 많고, 장난이 심하고, 문제 해결 능력도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죠. 그런데 그중 브루스라는 수컷 케아는 조금 달랐습니다. 윗부리 대부분이 없었습니다.

새에게 부리는 손이자 입입니다. 먹이를 집고, 깃털을 고르고, 상대를 위협하고, 사회적 신호를 보내는 도구죠. 그렇다면 윗부리가 없는 케아는 무리에서 밀려났을까요? 그리고 그런 몸으로 어떻게 다른 수컷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브루스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윌로뱅크 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덫이나 포식자 공격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겪어 윗부리를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생이었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보호구역에서 브루스는 자기 몸에 맞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냈습니다.

케아 자체도 평범한 새가 아닙니다. 이들은 물건을 물어뜯고, 굴리고, 서로의 행동을 살피며 배웁니다. 뉴질랜드에서는 등산객의 가방이나 자동차 고무를 건드리는 장난꾸러기로도 유명하죠. 문제를 만나면 일단 만져 보고, 밀어 보고,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브루스의 행동 혁신도 이런 배경 위에서 더 잘 이해됩니다.

먼저 유명해진 건 도구 사용이었습니다. 2021년 오클랜드대학교의 아멜리아 바스티안⁠(Amalia Bastos) 박사 연구팀은 브루스가 작은 조약돌을 집어 깃털 손질에 쓰는 행동을 보고했습니다. 케아가 원래 조약돌로 털을 다듬는 종은 아닙니다. 브루스가 자신의 결핍에 맞춰 새 행동을 만든 겁니다.

연구팀은 이 행동이 우연한 장난인지, 진짜 도구 사용인지 확인하려 했습니다. 결과는 꽤 분명했습니다. 브루스가 조약돌을 집은 경우의 90% 이상에서 곧바로 깃털 손질이 이어졌습니다. 조약돌을 떨어뜨리면 95%⁠의 경우 다시 주워 오거나 새 조약돌을 집어 손질을 계속했습니다. 아무 돌이나 집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특정 크기의 조약돌을 골랐죠.

윗부리가 없는 케아가 조약돌 도구와 아랫부리 자세를 활용해 적응하는 행동 도식

브루스는 사라진 윗부리를 대신해 조약돌 도구와 아랫부리 움직임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행동을 조정했다. 그림ⓒ The Finch

그런데 브루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6년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된 연구는 브루스의 사회적 지위까지 살폈습니다. 캔터베리대학교의 알렉산더 그래브햄⁠(Alexander Grabham) 연구원과 동료들은 네 주 동안 케아 무리의 공격 행동과 승패를 관찰했습니다.

무리 안에서는 총 227번의 공격적 상호작용이 기록됐습니다. 그중 수컷끼리의 충돌은 162번이었습니다. 케아 사회에서 수컷 사이의 힘겨루기는 먹이 접근, 짝짓기 기회, 공간 사용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부리가 없는 브루스에게는 불리한 싸움처럼 보이죠.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브루스는 자신이 참여한 36번의 충돌에서 모두 이겼습니다. 결국 연구진은 브루스가 무리의 최상위 수컷, 즉 알파 수컷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윗부리가 없는 새가 단순히 버틴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서열의 꼭대기에 선 겁니다.

케아 무리의 상호작용 네트워크에서 행동 변화가 사회적 서열과 연결되는 도식

무리 안의 서열은 몸의 조건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반복된 상호작용과 문제 해결 행동도 사회적 위치를 바꿀 수 있다. 그림ⓒ The Finch

비결은 싸움 방식에 있었습니다. 보통 케아는 부리를 맞대고 힘을 겨룹니다. 브루스는 여기에 다른 전략을 썼습니다. 아랫부리를 앞으로 내밀어 상대를 밀어내거나 찌르는 방식이었죠. 연구진은 이것을 브루스에게서만 관찰되는 독특한 행동 혁신으로 봤습니다.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브루스는 없는 윗부리를 완벽히 대체한 것이 아닙니다. 대신 남아 있는 몸을 다르게 썼습니다. 깃털 손질에서는 조약돌이 윗부리 역할을 일부 대신했고, 싸움에서는 아랫부리가 새로운 무기가 됐습니다. 같은 결핍이 상황에 따라 다른 전략을 낳은 거예요.

물론 이 이야기를 모든 장애가 의지만 있으면 극복된다는 식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자연은 가혹하고, 신체 손상은 실제로 생존 가능성을 크게 낮춥니다. 브루스가 보호구역에서 살았다는 조건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례의 의미가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동물의 행동 유연성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진화는 몸의 모양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몸을 쓰는 방식도 중요합니다. 같은 부리를 가진 새들도 다른 환경에서 다른 행동을 만들고, 몸이 달라진 개체는 더더욱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브루스는 약점이 곧 끝이 아니라, 때로는 새로운 전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동물 행동학에서 이런 사례는 특히 귀합니다. 대부분의 연구는 종 전체의 평균적인 행동을 다룹니다. 하지만 브루스처럼 한 개체의 특수한 문제가 새로운 행동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종의 능력뿐 아니라 개체의 발명성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브루스 이야기는 단순한 감동담이 아닙니다. 이건 동물 행동학의 좋은 사례입니다. 개체 하나의 창의적인 행동이 자기 관리에서 사회적 지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사례죠. 무리의 1위가 된 것은 힘만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몸을 새롭게 쓰는 방법을 발견한 결과였습니다.

참고문헌

1. Bastos, A. P. M., Horváth, K., Webb, J. L., Wood, P. M., & Taylor, A. H. (2021). "Self-care tooling innovation in a disabled kea." Scientific Reports, 11, 18035. DOI: 10.1038/s41598-021-97086-w

 2. Grabham, A., Nelson, X. J., Taylor, A. H., et al. (2026). "A disabled kea parrot is the alpha male of his circus." Current Biology. DOI: 10.1016/j.cub.2026.03.004

 3. Goodman, M., Hayward, T., & Hunt, G. R. (2018). "Habitual tool use innovated by free-living New Zealand kea." Scientific Reports, 8, 13935. DOI: 10.1038/s41598-018-32363-9

 4. Bastos, A. P. M., & Taylor, A. H. (2020). "Kea show three signatures of domain-general statistical inference." Nature Communications, 11, 828. DOI: 10.1038/s41467-020-146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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