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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 위에 덮인 '뉴 세이프 컨파인먼트(NSC)' 아치. 2016년 11월 말 지금의 위치로 밀려 들어와 옛 '석관(Sarcophagus)'을 감쌌습니다. 길이 165m, 높이 108m, 무게 3만 6천t. ⓒ Tim Porter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1986년 4월 26일 새벽,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가 폭발했습니다. 올해로 꼭 40년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어 들어가는 구간이 더 많죠.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크라이나 안전 원자력 발전소 과학 연구소(ISPNPP)의 과학자 아나톨리 도로셴코(Anatoly Doroshenko)입니다. 폭발 당시 남겨진 핵연료 덩어리에서 불과 8m 떨어진 지점까지 매달 직접 들어가 수치를 재는 몇 안 되는 사람이죠.
안으로 들어가기 전 그가 걸치는 장비는 이렇습니다. 머리에는 모자, 손에는 장갑, 얼굴에는 방독면, 몸에는 전신 작업복, 그 위에 폴리에틸렌 커버, 그리고 맨 위에 무거운 납 앞치마. 한 겹 한 겹 쌓여 꽤 두툼한 누더기가 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원자로 안에는 지금도 '손댈 수 없는' 물질 덩어리들이 식다 말고 가라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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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 내부의 원자로 홀 잔해. 1986년 사고 직후 소련이 급조한 '석관' 아래에서 40년 동안 이 풍경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 IAEA Imagebank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그날 4호기에서는 '안전 시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외부 전원이 끊겼을 때 증기 터빈이 관성만으로 얼마나 더 냉각수 펌프를 돌릴 수 있는지 측정하는 실험이었죠. 아이러니하게도 안전을 확인하려던 실험이 재난의 방아쇠가 된 겁니다.
시험은 밤으로 밀렸고, 운전원들은 원자로 출력을 너무 낮게 떨어뜨렸다가 다시 끌어올렸습니다. 소련형 흑연 감속로 RBMK-1000에는 출력이 낮을 때 반응이 오히려 폭주하기 쉬운 설계 결함이 있었는데, 그 조건을 정확히 건드린 겁니다.
새벽 1시 23분, 원자로 출력이 순식간에 설계 기준의 수십 배로 튀어 올랐습니다. 연료가 녹고 물이 폭발적으로 증기로 바뀌며 원자로 위의 1,000t짜리 뚜껑을 날려버렸죠. 이어진 수소 폭발로 흑연이 노출됐고, 흑연은 그대로 열흘 동안 탔습니다.
문제는 그 안에 있던 약 190t의 핵연료입니다. 연료봉이 녹아 주변의 강철·콘크리트·모래·지르코늄 피복재와 뒤엉키면서 걸쭉한 '용암'이 됐고, 이게 식으며 굳은 덩어리를 '코리움(corium)'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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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4호기 외벽과 사고 희생자 추모비. 사진 속 왼쪽에 보이는 4호기 건물 아래, 닫힌 벽체 너머로 녹아내린 핵연료 덩어리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 Matti Paavonen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코리움은 4호기 아래층으로 흘러내리며 기이한 모양으로 굳었습니다. 사람들은 각 덩어리에 별명을 붙였는데, 이름들이 꽤 동물적이죠.
가장 유명한 건 '코끼리 발(Elephant's Foot)'입니다. 둥글고 주름진 표면이 정말 코끼리 발등처럼 생겼습니다. 무게는 대략 2t, 지름은 2m쯤이죠. 1986년 말 처음 발견됐을 당시 이 덩어리 표면에서 나오는 방사선은 시간당 8,000뢴트겐에 달했습니다. 가까이에서 몇 분만 서 있어도 치사량을 받는 세기입니다.
그 외에도 '고양이 집(Cat's House)', '개 집', '문어 빔', '매머드 빔' 같은 이름이 붙은 덩어리들이 방마다 하나씩 굳어 있습니다. 녹아내린 도시의 유적을 뒤지고 다니는 것 같은 풍경인 셈이죠.
그리고 그 위에는 '엘레나(Elena)'라는 별명의 거대 철판이 있습니다. 원래 원자로 덮개 역할을 하던 '상부 생물학적 차폐판'인데, 무게가 2,200t. 이 철판이 폭발로 15도 기울어진 채 공중에 위태롭게 멈춰 섰죠. 40년째 그 자세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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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의 통제실 내부. 폭발 당일 운전원들이 실험을 진행했던 바로 그 공간입니다. ⓒ Bibric02 / Wikimedia Commons (CC0)
폭발 직후 소련은 원자로 위에 콘크리트와 강철로 구조물을 급히 씌웠습니다. 흔히 '석관(Sarcophagus)'이라 부르는 이 구조물은 6개월 만에 지어졌죠. 임시방편이었고, 설계 수명도 길게 잡아 30년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석관은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눈과 비가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방사성 먼지가 바깥으로 다시 새 나갈 위험이 커진 겁니다. 그래서 국제 사회가 돈을 모아 새 덮개를 만들었습니다. '뉴 세이프 컨파인먼트(NSC·New Safe Confinement)'라 부르는 길이 165m, 높이 108m짜리 거대 아치입니다.
NSC는 원자로 옆 비교적 방사선이 덜한 땅에서 따로 조립됐습니다. 몇 년에 걸쳐 차근차근 지은 뒤, 2016년 11월 14일부터 29일까지 15일 동안 레일 위로 밀어 옛 석관을 통째로 덮어씌우는 방식이었죠. 이런 식으로 이동시킨 인공 구조물 중 역대 가장 무거운 기록입니다.
무게만 3만 6,000t, 설계 수명은 100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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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바로 옆에서 조립되고 있던 NSC의 모습. 이후 레일 위로 밀어 옛 석관 위에 씌웠습니다. ⓒ ArticCynda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얼핏 생각하면 NSC로 덮인 지금이 가장 안전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ISPNPP 연구팀은 오히려 긴장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유가 좀 묘하죠.
옛 석관은 빗물이 꽤 많이 새어 들어왔습니다. 그 물이 안쪽에 쌓인 코리움과 먼지를 계속 적시고 있었죠. 그런데 물이라는 건 핵분열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중성자를 느리게 만드는 '감속재' 노릇을 하거든요. 중성자가 느려지면 우라늄-235가 그걸 더 잘 포획해 다시 분열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물은 반대로 중성자를 흡수해 분열을 막기도 합니다. 40년 동안 이 균형이 어정쩡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겁니다.
NSC가 덮이면서 비와 눈이 더는 안으로 스미지 않게 됐습니다. 원자로 내부 습도가 사고 이래 처음으로 뚝 떨어졌죠. 그러자 이상한 현상이 관측됐습니다. 2016년 이후 코리움 덩어리들이 몰려 있는 일부 구역에서 중성자 선속이 슬금슬금 올라간 겁니다. 가장 눈에 띄게 반응한 곳은 '305/2번 방'이라 불리는 공간으로, 도로셴코가 매달 내려가 점검하는 지점과 가깝습니다.
지금 당장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날 단계는 아닙니다. 다만 변화가 감지됐으니 누군가는 직접 들어가 측정을 해야 하는 셈입니다. 감지기 하나에만 맡겨두기에는 그 안의 환경이 너무 가혹하니까요. 기계는 방사선에 고장 나거나 오염되기 쉽고, 결국 누군가는 그걸 직접 교체하거나 다시 설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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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출입 금지 구역에서 방사선 수치를 측정하는 휴대용 선량계. 도로셴코가 원자로 안에서 쓰는 장비도 기본 원리는 동일합니다. ⓒ Jennifer Boyer / Wikimedia Commons (CC BY 2.0)
도로셴코는 안에서 한 시간 남짓 작업한 뒤 밖으로 나옵니다. 측정 장비를 회수하고, 수치를 기록하고, 다음 달 다시 들어가죠. 법이 정한 방사선 작업자 연간 한도를 넘기지 않게 관리되지만, 평생 받아도 되는 총량은 조금씩 줄어드는 셈입니다.
NSC라는 거대한 덮개 덕분에 바깥 세상은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 거의 잊고 지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덮개 안쪽의 사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죠.
원자로 가장 깊은 곳에는 40년째 식고 있는 코끼리 발이 있고, 그 옆에서 매달 숫자를 기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풍경은 앞으로 몇 세대 동안 이어질 겁니다.
1. Matthew Sparkes, "The man who crawls into the perilous heart of the Chernobyl reactor", New Scientist, 2026-04-13.
2.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 "Chernobyl: Assessment of Radiological and Health Impacts — 2002 Update", 2006.
3. Maxim V. Saveliev et al., "Chernobyl accident — 30 years after: Lessons and forecasts", Progress in Nuclear Energy, 2017.
4. European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The New Safe Confinement Project at Chernobyl NPP", EBRD fact sheet, 2017.
5. V. A. Krasnorutskyy et al., "Neutron flux monitoring of fuel-containing materials in the Shelter Object of Chornobyl NPP Unit 4", Nuclear Physics and Atomic Energ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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