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은 다 멸종했는데, 왜 새만 살아남았을까?

The Finch2026. 4. 17.

공룡은 다 멸종했는데, 왜 새만 살아남았을까?

현생 조류의 직계 조상으로 추정되는 ‘원더치킨’ 상상도. 닭·오리와 비슷한 모습이다. ⓒ 필립 크세민스키

6,600만 년 전 어느 봄날, 지름 10km짜리 소행성 하나가 지금의 멕시코 유카탄반도 바다에 꽂혔습니다. 당시 지구에 살던 육상 생물의 약 75%⁠가 사라진 '백악기-팔레오기 대멸종'이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같은 공룡들도 전부 이때 지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공룡이 모두 죽은 건 아니었습니다. 딱 한 그룹이 이 참사를 뚫고 살아남았죠. 바로 새입니다. 맞아요, 지금 창밖에서 짹짹거리는 참새, 베란다에 앉아 있는 비둘기, 치킨집의 닭까지. 이들이 전부 공룡의 직계 후손입니다.

지구를 뒤덮은 다른 공룡들은 왜 다 죽었는데, 새만 살아남았을까요? 이 질문은 지난 20년 동안 고생물학자들이 가장 치열하게 파고든 수수께끼 중 하나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중요한 화석과 게놈 연구가 쌓이면서, 답에 꽤 가까이 다가왔죠.

새는 공룡에서 왔다

먼저 정리해둘 게 있습니다. 새가 공룡의 후손이라는 건 비유가 아닙니다. 분류학적으로도 새는 수각류 공룡, 그중에서도 벨로키랍토르나 데이노니쿠스 같은 드로마에오사우루스류와 같은 가지에서 갈라진 그룹이에요. 영화에선 파충류 비늘로 그려지지만, 화석 증거를 보면 이 친구들은 온몸에 깃털이 덮여 있었습니다. 영화가 틀린 겁니다.

깃털로 덮인 벨로키랍토르 복원도. 지난 20년 동안 수천 점의 깃털 공룡 화석이 중국 랴오닝성에서 발굴되면서, 수각류 공룡이 비늘이 아니라 깃털로 덮여 있었다는 사실이 확정됐다. ⓒ Fred Wierum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새의 기원은 약 1억 5천만 년 전 쥐라기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시기의 대표 화석이 바로 독일에서 발굴된 시조새 Archaeopteryx예요. 파충류 같은 이빨과 긴 뼈꼬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날개와 비대칭 깃털을 지닌 이 생물은 "공룡과 새의 중간 고리"로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려 왔습니다. 지금은 시조새가 새의 직계 조상은 아니라고 보는 견해가 많지만, 그 시기 이미 '깃털 달린 공룡'이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는 증거로는 여전히 결정적이죠.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Archaeopteryx 화석 복원도. 이빨이 있는 턱, 긴 뼈꼬리, 앞발의 갈고리발톱은 공룡의 특징이고, 비대칭 깃털과 날개는 새의 특징이다. 약 1억 5천만 년 전 독일에 살았다. ⓒ Emily Willoughby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쥐라기 이후 새는 맹렬히 진화했습니다. 백악기에 접어들면서 지구의 하늘은 이미 온갖 새들로 북적였죠. 이빨이 있는 새, 발톱이 붙은 날개를 가진 새, 잠수하는 새, 도요새처럼 생긴 새까지. 특히 '반조강⁠(enantiornithes)'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분류군은 당시 새 계통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빨과 긴 꼬리뼈를 여전히 갖고 있었고, 백악기 하늘의 주인공이었죠.

새의 90%⁠도 같이 사라졌다

6,600만 년 전 그날의 충돌은 이 모든 걸 거의 다 쓸어버렸습니다. 고생물학자 다니엘 필드 팀이 2020년 Natur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대멸종 당시 하늘을 날던 새의 약 90% 이상이 이 충돌을 기점으로 사라졌어요. 이빨 달린 반조강은 거의 완전히 절멸했고, 아주 소수의 '현생조류⁠(Neornithes)' 계통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 됩니다. 공룡 전체가 몰살당했는데 그중에서 새라는 한 가지만 살아남은 게 아니라, 새들도 대부분 죽고 그중 아주 일부가 간신히 병목을 통과했다는 거죠. 오늘날 우리가 보는 11,000여 종의 새는 전부 그 '일부'의 후손입니다.

필드의 연구가 던진 진짜 질문은 이겁니다. 왜 하필 그 일부가 살아남았을까?

생존자의 '포커 패'

필드와 동료들이 화석 기록을 샅샅이 뒤진 결과, 살아남은 새들에겐 공통된 특징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걸 "대멸종 포커 게임에서 받아든 좋은 패"라고 부르죠.

첫째, 덩치가 작았습니다. 소행성 충돌은 전 지구적인 산불과 '충돌 겨울'을 불러왔고, 그 뒤엔 혹독한 먹이 부족이 이어졌어요. 몸집이 크면 더 많이 먹어야 하는데, 먹이가 없으니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살아남은 조류 계통은 대부분 몸무게 수백 그램 이하의 소형종이었습니다.

둘째, 이빨이 없고 단단한 부리를 지녔습니다. 이게 결정적 대목인데요. 충돌 이후 숲은 전 세계적으로 몇 년 동안 불타 없어졌습니다. 광합성이 멎은 땅에서 살아남은 거라곤 질긴 씨앗, 열매, 그리고 곤충 정도였죠. 씨앗을 깨먹을 수 있는 부리는 이때 결정적인 무기가 됩니다. 이빨이 달려 있으면 고기나 열매 같은 건 씹을 수 있어도 두꺼운 씨앗은 잘 처리 못 하거든요. 반면 단단한 부리와 모래주머니를 가진 새는 씨앗을 쪼개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지질학자들이 백악기-팔레오기 경계층을 보면, 꽃가루와 나뭇잎 화석이 뚝 끊기고 양치식물 포자와 씨앗류 흔적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숲이 사라진 자리에 양치식물이 먼저 피어난 거죠. 그 사이 씨앗을 깨먹는 작은 부리 새들은 숲속 화재가 남긴 '씨앗 은행'에 의지해 몇 년의 혹한기를 넘겼습니다.

셋째, 지상이나 물가에 살았습니다. 하늘 위의 익룡과 나무 위에 살던 새들은 충돌 직후의 고온·산불 앞에서 가장 먼저 당했어요. 반면 호숫가 개흙을 뒤지거나 얕은 물에서 지내던 종류는 상대적으로 덜 다쳤죠. 살아남은 조류 계통 대부분이 '지상형'이나 '반수생형'이라는 점이 이 가설을 뒷받침합니다.

대멸종 직전의 새, '원더치킨'이 발굴되다

이 가설에 결정적인 무게를 실어준 게 바로 '원더치킨⁠(Wonderchicken)'입니다. 2020년 필드 팀이 벨기에의 한 채석장에서 발견한 화석인데요. 공식 학명은 Asteriornis maastrichtensis. 약 6,670만 년 전, 그러니까 소행성이 떨어지기 고작 70만 년 전의 개체입니다.

약 6,670만 년 전 벨기에 해안에 살았던 Asteriornis maastrichtensis의 복원도. 별명은 '원더치킨'. 닭·오리의 먼 조상으로, 현생조류 중 대멸종 직전까지 거슬러 올라간 거의 유일한 화석이다. ⓒ Phillip Krzeminski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이 화석이 중요한 건 크기와 생김새 때문입니다. 몸무게 400g 정도, 길쭉한 다리를 가진 해안가 새였고, 머리뼈를 분석해보니 오늘날의 닭·오리 계통⁠(Galloanserae)⁠의 가까운 친척이었습니다. 필드 팀은 "대멸종 포커 게임 좋은 패"를 실제로 들고 있던 새가 소행성 충돌 직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찾은 거죠.

원더치킨 이후로, 비슷하게 '생존에 유리한 체형'을 지닌 다른 백악기 말 새 화석이 남극⁠(Vegavis iaai)⁠과 몽골에서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대멸종 당시 지구엔 이미 현대형 조류가 소수지만 분명히 살고 있었고, 바로 그 소수가 충돌 이후 비어버린 하늘의 주인이 된 겁니다.

빈 하늘이 만든 폭발적 진화

대멸종 직후 지구의 하늘은 거의 비어 있었습니다. 경쟁자가 사라진 빈 공간은 살아남은 새들에겐 천국이었죠. 독일 지겐대학교의 요제프 스틸러 팀이 2024년 Nature에 발표한 대규모 게놈 분석에 따르면, 지금 있는 현생조류의 거의 모든 주요 분기가 대멸종 이후 불과 수백만 년 사이에 한꺼번에 일어났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가 보는 조류의 다양성—지금 지구에 있는 11,000여 종 새 대부분—이 6,600만 년 전 그 소수 생존자 집단에서 '폭발적'으로 갈라져 나왔다는 거예요. 연구진은 무려 363개 조류 종의 유전체를 비교해 이 시나리오를 그려냈습니다. 맹금류, 올빼미류, 딱따구리, 참새목, 물새류, 심지어 펭귄까지. 다들 이 빈 하늘의 방사⁠(adaptive radiation) 와중에 생겨났습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쥐새⁠(mousebird). 이 계통의 친척 화석⁠(Tsidiiyazhi abini)⁠이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발견됐는데, 시기가 약 6,250만 년 전이다. 대멸종 직후 불과 300~400만 년 만에 현대형 새 계통이 이미 자리를 잡았다는 증거다. ⓒ Hobbyfotowiki / Wikimedia Commons (CC0)

실제 화석 기록도 이 시나리오와 맞아떨어집니다. 뉴멕시코주에서 발굴된 Tsidiiyazhi abini는 약 6,250만 년 전에 살던 쥐새과의 초기 친척인데, 대멸종이 끝나고 400만 년도 안 돼서 현대형 새 계통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는 이야기죠. 소행성이 지운 자리를, 살아남은 소수의 후손이 순식간에 채운 겁니다.

우리가 먹는 '치킨'의 족보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닭과 오리, 칠면조 같은 가금류는 계통학적으로 조류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분기에 속합니다. '원더치킨'이 닭·오리의 먼 조상으로 추정됐던 것도 우연이 아니에요. 소행성이 떨어지기 직전의 백악기 말 해안에 살던 작은 새가, 6,600만 년을 거쳐 지금 우리 식탁에 올라온 거죠.

달리 말하면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치킨을 뜯을 때 실제로 씹고 있는 건,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가 멸망한 참사를 뚫고 날아와 지구의 하늘을 다시 채운 승자의 후손입니다.

진화라는 게임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습니다. 가끔은 가장 크고 무섭고 강한 존재가 사라지고, 손에 닿지 않던 작고 먹기 좋은 씨앗을 부리로 깨먹을 줄 알았던 '작은 친구'가 다음 시대의 주인이 됩니다. 운이 좋은 겁니다. 하지만 운이 좋으려면, 무엇보다 그 순간에 '살아서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참고문헌

1. Field, D. J. et al., "Late Cretaceous neornithine from Europe illuminates the origins of crown birds", Nature, 2020. doi:10.1038/s41586-020-2096-0

2. Stiller, J. et al., "Complexity of avian evolution revealed by family-level genomes", Nature, 2024. doi:10.1038/s41586-024-07323-1

3. Longrich, N. R. et al., "Mass extinction of birds at the Cretaceous-Paleogene (K-Pg) boundary", PNAS, 2011. doi:10.1073/pnas.1110395108

4. Ksepka, D. T. et al., "Tempo and pattern of avian brain size evolution", Current Biology, 2020. doi:10.1016/j.cub.2020.03.060

5. Brusatte, S. L., "An asteroid extinguished all the dinosaurs except for birds. Here's why", Scientific American,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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