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호수가 폭발했다? 그랜드 캐니언 탄생의 새 시나리오

The Finch2026. 4. 17.

거대 호수가 폭발했다? 그랜드 캐니언 탄생의 새 시나리오

해마다 수백만 명이 그 거대한 붉은 절벽 앞에 서서 숨을 멈춥니다. 그랜드 캐니언입니다. 폭 29km, 깊이 1.6km, 길이 446km. 미국 애리조나 북부, 콜로라도강이 흐르는 이 협곡은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지질 명소로 꼽히죠.

이 거대한 협곡은 과학계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지형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언제, 어떻게 생겼는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놓고 지질학자들은 여전히 한목소리를 못 내고 있습니다. 2026년 4월 16일 Science지에 그 오랜 논쟁에 새로운 단서를 던지는 논문이 실렸습니다.

콜로라도강과 그랜드 캐니언의 말굽 굽이

그랜드 캐니언을 흐르는 콜로라도강의 말굽 굽이⁠(Horseshoe Bend). 이 거대한 협곡을 깎아 온 주역이 바로 이 강입니다. 사진=Christian Mehlführer/Wikimedia Commons (CC BY 2.5)

500만 년의 빈칸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지질학자들이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자료에는 도무지 맞지 않는 빈칸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콜로라도강은 로키산맥에서 발원해 콜로라도, 유타, 애리조나, 네바다를 거쳐 캘리포니아만으로 흘러듭니다. 지질학자들은 이 강이 약 1,100만 년 전에는 서쪽 콜로라도 지역까지 이미 뻗어 있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합니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강이 지금의 그랜드 캐니언 서쪽 끝에 도달한 시점이 약 560만 년 전이라는 점이죠.

그런데 그 중간 500만 년 동안, 이 강이 어디로 흘렀는지가 오랜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습니다. 강은 분명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을 텐데, 딱 그 500만 년짜리 구간의 물길만 지도에서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랜드 캐니언 자체의 나이에 대해서도 해석이 엇갈려 왔습니다. 한쪽에서는 현재의 협곡 대부분이 500~600만 년 전에 비교적 '최근'에 깎였다고 보고, 다른 쪽에서는 훨씬 이전 7,000만⁠~5,500만 년 전에 이미 이 지역에 '고⁠(古)⁠협곡⁠(paleocanyon)'들이 존재했다고 주장합니다.

애리조나 북부 페인티드 데저트

애리조나 북부의 페인티드 데저트⁠(Painted Desert). 이 지역 남쪽의 비다호치 분지⁠(Bidahochi basin)⁠가 이번 연구의 핵심 무대입니다. 사진=Finetooth/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분홍빛 둥근 모래 알갱이가 이어준 단서

이번 연구의 시작은 한 지질학자의 '어디서 본 듯한' 느낌에서 출발했습니다. 애리조나 지질조사국의 브라이언 구티⁠(Brian Gootee)⁠는 그랜드 캐니언 하류에서 나오는 사암과, 북쪽 비다호치 분지⁠(Bidahochi basin)⁠에서 나오는 사암이 매우 닮았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두 곳의 모래 모두 분홍빛이 도는 둥근 알갱이들로 이루어져 있었죠. 마치 같은 강이 옮겨다 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공동 주저자인 미국 지질조사국⁠(USGS) 지질학자 라이언 크로⁠(Ryan Crow) 연구팀과 함께 두 지역의 지층에서 지르콘⁠(zircon) 결정을 채취해 나이를 쟀습니다. 지르콘은 풍화에 아주 잘 견디는 광물이라, 강을 따라 긴 거리를 이동해도 원래의 나이를 고스란히 간직하는 '지질학적 지문' 같은 존재입니다.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두 지역에서 나온 지르콘은 모두 콜로라도강 유역의 같은 모암에서 기원한 것들이었죠. 이전 연구가 두 퇴적층 사이에 연관성을 찾지 못했던 건, 당시 비다호치 샘플이 콜로라도강 본류가 아니라 지역 지류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더 나아가 비다호치 분지에서 나온 콜로라도강 퇴적물은 카이밥 융기부⁠(Kaibab uplift)⁠를 타고 넘을 수 있을 만큼 높은 지점까지 쌓여 있었습니다. 카이밥 융기부는 비다호치 분지와 현재 그랜드 캐니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둥근 지형 장벽인데, 만약 그 장벽을 물이 넘어갔다면, 꽤 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동쪽 그랜드 캐니언의 일몰

그랜드 캐니언 동쪽 지역의 일몰. 연구진이 제안한 시나리오에서는 카이밥 융기부를 넘은 호수의 물이 이 근처를 지나 서쪽으로 쏟아지며 협곡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사진=inkknife_2000/Wikimedia Commons (CC BY-SA 2.0)

'스필오버⁠(spillover) 가설'이 말하는 시나리오

이번 논문이 지지하는 건 예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논쟁적이던 '스필오버⁠(spillover, 넘침) 가설'입니다. 원시 콜로라도강이 비다호치 분지로 흘러들어 거대한 호수를 만들었고, 그 호수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불어나다가 결국 장벽을 넘어 서쪽으로 쏟아졌다는 시나리오입니다. 이 쏟아진 물이 지금의 그랜드 캐니언을 깎아내리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연구진이 확보한 증거들은 이 시나리오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660만 년 전 즈음 비다호치 분지에 콜로라도강 퇴적물이 도착했다는 사실에 더해, 퇴적 속도가 한 자릿수 배로 빨라진 점, 탄산염 지층의 스트론튬 동위원소 비율이 급변한 점, 빠르게 흐르는 물 환경을 좋아하는 큰 물고기 종의 화석이 이 무렵 등장한다는 점까지, 모든 증거가 같은 시기에 비다호치로 제대로 된 강이 흘러들었다는 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라이언 크로는 Scientific America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호수가 협곡 형성에 역할을 했다는 건 분명합니다. 아직 알 수 없는 건 그 과정이 엄청난 홍수처럼 한 번에 일어났는지, 점진적인 침식으로 서서히 진행됐는지 하는 부분이죠."

그는 덧붙입니다. "지금 가진 증거만 놓고 보면, 이 큰 호수가 넘쳐흘렀다는 설명이 훨씬 더 단순하고 가능성 높은 메커니즘이라고 봅니다."

그랜드 캐니언과 호피 포인트의 무지개

그랜드 캐니언 호피 포인트⁠(Hopi Point) 위에 걸린 무지개. 이 협곡의 붉은 지층들은 수억 년에 걸쳐 쌓였지만, 이렇게 깊이 파인 모습으로 깎이는 데는 비교적 '짧은' 수백만 년이 걸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진=Tuxyso/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 결론에 모든 연구자가 수긍하는 건 아닙니다. 뉴멕시코 대학 지질학자 칼 칼스트롬⁠(Karl Karlstrom)⁠은 같은 Scientific American 기사에서 이견을 밝혔습니다. 그는 원시 콜로라도강이 비다호치 분지로 흘러들었다는 점까지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강이 과연 거대한 호수를 만들 만큼 큰 양이었는지, 설령 만들었더라도 그 호수가 그랜드 캐니언 형성의 '주된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입장이죠.

칼스트롬은 "[저자들이 말하는] 호수 스필오버 결론의 핵심적인 세부 사항들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시나리오는 조금 다릅니다. 콜로라도강이 비다호치 분지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이미 카이밥 융기부를 가로지르는 옛 협곡⁠(paleocanyon)⁠이 존재했었다는 겁니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라면 강물은 굳이 호수를 가득 채울 필요 없이 이미 있던 옛 협곡을 따라 빠져나갔을 테고, 스필오버라는 사건 자체가 일어날 이유가 없어집니다.

물론 이번 연구 한 편으로 논쟁이 마무리되는 건 아닙니다. 지질학자들이 그랜드 캐니언 형성의 범인으로 꼽아 온 후보는 꽤 다양합니다. 지하 동굴 네트워크의 천장이 무너지면서 드러났다는 설, 작은 지류가 상류로 침식해 올라가다가 결국 거대한 콜로라도강을 낚아채듯 자기 물길로 끌어들였다는 설 등이 대표적이죠. 이번 연구가 이 후보들을 완전히 밀어낸 건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성과가 있습니다. 그동안 설명이 막혀 있던 500만 년의 빈칸, 그러니까 콜로라도강이 서부 콜로라도를 이미 지나고 있던 1,100만 년 전과 그랜드 캐니언 서쪽 끝에 도달한 560만 년 전 사이의 잃어버린 시간을, 비다호치 분지 위의 거대한 호수가 상당 부분 메워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로의 말대로 "이건 대륙 규모 강 시스템의 역사를 계속 공부해 나가는 데 중요한 퍼즐 조각 하나"가 제자리를 찾은 발견이기도 합니다.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거대한 벼랑은 여전히 많은 비밀을 품고 있지만, 그 비밀에 다가가는 길은 한 걸음 더 분명해졌습니다.

그랜드 캐니언 남쪽 절벽의 일몰

그랜드 캐니언 남쪽 절벽에서 바라본 일몰. 이 거대한 협곡이 언제 어떻게 새겨졌는가라는 질문은, 여러 세대의 지질학자들을 여전히 이 벼랑 끝으로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사진=Mgimelfarb/Wikimedia Commons (CC0)

참고문헌

1. Cottier, C. (2026.04.16). The mystery of how and when the Grand Canyon formed gets a new clue. Scientific American.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how-the-grand-canyon-formed-is-a-surprisingly-messy-story-heres-the-latest-clue/

2. Crow, R. S., Gootee, B. F. et al. (2026). Late Miocene Colorado River arrival in the Bidahochi basin supports spillover origin of Grand Canyon. Science.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dz6826

3. Karlstrom, K. E. et al. (2014). Formation of the Grand Canyon 5 to 6 million years ago through integration of older paleocanyons. Nature Geoscience, 7, 239–244.

4. UCLA Newsroom (2026). How the Colorado River got to the Grand Canyon. https://newsroom.ucla.edu/releases/how-colorado-river-got-to-grand-canyon

5. Science News (2026). Grand Canyon's origin resolved? Ancient lake's flood may have etched famed gorge.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grand-canyon-s-origin-resolved-ancient-lake-s-flood-may-have-etched-famed-gorge

6. Live Science (2026). Colorado River may have pooled and spilled over to form the Grand Canyon. https://www.livescience.com/planet-earth/rivers-oceans/colorado-river-may-have-pooled-and-spilled-over-to-form-the-grand-canyon-solving-a-long-standing-mystery-but-not-everyone-agr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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