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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수백만 명이 그 거대한 붉은 절벽 앞에 서서 숨을 멈춥니다. 그랜드 캐니언입니다. 폭 29km, 깊이 1.6km, 길이 446km. 미국 애리조나 북부, 콜로라도강이 흐르는 이 협곡은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지질 명소로 꼽히죠.
이 거대한 협곡은 과학계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지형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언제, 어떻게 생겼는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놓고 지질학자들은 여전히 한목소리를 못 내고 있습니다. 2026년 4월 16일 Science지에 그 오랜 논쟁에 새로운 단서를 던지는 논문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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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니언을 흐르는 콜로라도강의 말굽 굽이(Horseshoe Bend). 이 거대한 협곡을 깎아 온 주역이 바로 이 강입니다. 사진=Christian Mehlführer/Wikimedia Commons (CC BY 2.5)
문제는 '시간'입니다. 지질학자들이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자료에는 도무지 맞지 않는 빈칸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콜로라도강은 로키산맥에서 발원해 콜로라도, 유타, 애리조나, 네바다를 거쳐 캘리포니아만으로 흘러듭니다. 지질학자들은 이 강이 약 1,100만 년 전에는 서쪽 콜로라도 지역까지 이미 뻗어 있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합니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강이 지금의 그랜드 캐니언 서쪽 끝에 도달한 시점이 약 560만 년 전이라는 점이죠.
그런데 그 중간 500만 년 동안, 이 강이 어디로 흘렀는지가 오랜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습니다. 강은 분명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을 텐데, 딱 그 500만 년짜리 구간의 물길만 지도에서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랜드 캐니언 자체의 나이에 대해서도 해석이 엇갈려 왔습니다. 한쪽에서는 현재의 협곡 대부분이 500~600만 년 전에 비교적 '최근'에 깎였다고 보고, 다른 쪽에서는 훨씬 이전 7,000만~5,500만 년 전에 이미 이 지역에 '고(古)협곡(paleocanyon)'들이 존재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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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북부의 페인티드 데저트(Painted Desert). 이 지역 남쪽의 비다호치 분지(Bidahochi basin)가 이번 연구의 핵심 무대입니다. 사진=Finetooth/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이번 연구의 시작은 한 지질학자의 '어디서 본 듯한' 느낌에서 출발했습니다. 애리조나 지질조사국의 브라이언 구티(Brian Gootee)는 그랜드 캐니언 하류에서 나오는 사암과, 북쪽 비다호치 분지(Bidahochi basin)에서 나오는 사암이 매우 닮았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두 곳의 모래 모두 분홍빛이 도는 둥근 알갱이들로 이루어져 있었죠. 마치 같은 강이 옮겨다 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공동 주저자인 미국 지질조사국(USGS) 지질학자 라이언 크로(Ryan Crow) 연구팀과 함께 두 지역의 지층에서 지르콘(zircon) 결정을 채취해 나이를 쟀습니다. 지르콘은 풍화에 아주 잘 견디는 광물이라, 강을 따라 긴 거리를 이동해도 원래의 나이를 고스란히 간직하는 '지질학적 지문' 같은 존재입니다.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두 지역에서 나온 지르콘은 모두 콜로라도강 유역의 같은 모암에서 기원한 것들이었죠. 이전 연구가 두 퇴적층 사이에 연관성을 찾지 못했던 건, 당시 비다호치 샘플이 콜로라도강 본류가 아니라 지역 지류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더 나아가 비다호치 분지에서 나온 콜로라도강 퇴적물은 카이밥 융기부(Kaibab uplift)를 타고 넘을 수 있을 만큼 높은 지점까지 쌓여 있었습니다. 카이밥 융기부는 비다호치 분지와 현재 그랜드 캐니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둥근 지형 장벽인데, 만약 그 장벽을 물이 넘어갔다면, 꽤 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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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니언 동쪽 지역의 일몰. 연구진이 제안한 시나리오에서는 카이밥 융기부를 넘은 호수의 물이 이 근처를 지나 서쪽으로 쏟아지며 협곡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사진=inkknife_2000/Wikimedia Commons (CC BY-SA 2.0)
이번 논문이 지지하는 건 예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논쟁적이던 '스필오버(spillover, 넘침) 가설'입니다. 원시 콜로라도강이 비다호치 분지로 흘러들어 거대한 호수를 만들었고, 그 호수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불어나다가 결국 장벽을 넘어 서쪽으로 쏟아졌다는 시나리오입니다. 이 쏟아진 물이 지금의 그랜드 캐니언을 깎아내리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연구진이 확보한 증거들은 이 시나리오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660만 년 전 즈음 비다호치 분지에 콜로라도강 퇴적물이 도착했다는 사실에 더해, 퇴적 속도가 한 자릿수 배로 빨라진 점, 탄산염 지층의 스트론튬 동위원소 비율이 급변한 점, 빠르게 흐르는 물 환경을 좋아하는 큰 물고기 종의 화석이 이 무렵 등장한다는 점까지, 모든 증거가 같은 시기에 비다호치로 제대로 된 강이 흘러들었다는 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라이언 크로는 Scientific America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호수가 협곡 형성에 역할을 했다는 건 분명합니다. 아직 알 수 없는 건 그 과정이 엄청난 홍수처럼 한 번에 일어났는지, 점진적인 침식으로 서서히 진행됐는지 하는 부분이죠."
그는 덧붙입니다. "지금 가진 증거만 놓고 보면, 이 큰 호수가 넘쳐흘렀다는 설명이 훨씬 더 단순하고 가능성 높은 메커니즘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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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니언 호피 포인트(Hopi Point) 위에 걸린 무지개. 이 협곡의 붉은 지층들은 수억 년에 걸쳐 쌓였지만, 이렇게 깊이 파인 모습으로 깎이는 데는 비교적 '짧은' 수백만 년이 걸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진=Tuxyso/Wikimedia Commons (CC BY-SA 3.0)
그러나 이 결론에 모든 연구자가 수긍하는 건 아닙니다. 뉴멕시코 대학 지질학자 칼 칼스트롬(Karl Karlstrom)은 같은 Scientific American 기사에서 이견을 밝혔습니다. 그는 원시 콜로라도강이 비다호치 분지로 흘러들었다는 점까지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강이 과연 거대한 호수를 만들 만큼 큰 양이었는지, 설령 만들었더라도 그 호수가 그랜드 캐니언 형성의 '주된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입장이죠.
칼스트롬은 "[저자들이 말하는] 호수 스필오버 결론의 핵심적인 세부 사항들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시나리오는 조금 다릅니다. 콜로라도강이 비다호치 분지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이미 카이밥 융기부를 가로지르는 옛 협곡(paleocanyon)이 존재했었다는 겁니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라면 강물은 굳이 호수를 가득 채울 필요 없이 이미 있던 옛 협곡을 따라 빠져나갔을 테고, 스필오버라는 사건 자체가 일어날 이유가 없어집니다.
물론 이번 연구 한 편으로 논쟁이 마무리되는 건 아닙니다. 지질학자들이 그랜드 캐니언 형성의 범인으로 꼽아 온 후보는 꽤 다양합니다. 지하 동굴 네트워크의 천장이 무너지면서 드러났다는 설, 작은 지류가 상류로 침식해 올라가다가 결국 거대한 콜로라도강을 낚아채듯 자기 물길로 끌어들였다는 설 등이 대표적이죠. 이번 연구가 이 후보들을 완전히 밀어낸 건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성과가 있습니다. 그동안 설명이 막혀 있던 500만 년의 빈칸, 그러니까 콜로라도강이 서부 콜로라도를 이미 지나고 있던 1,100만 년 전과 그랜드 캐니언 서쪽 끝에 도달한 560만 년 전 사이의 잃어버린 시간을, 비다호치 분지 위의 거대한 호수가 상당 부분 메워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로의 말대로 "이건 대륙 규모 강 시스템의 역사를 계속 공부해 나가는 데 중요한 퍼즐 조각 하나"가 제자리를 찾은 발견이기도 합니다.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거대한 벼랑은 여전히 많은 비밀을 품고 있지만, 그 비밀에 다가가는 길은 한 걸음 더 분명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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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니언 남쪽 절벽에서 바라본 일몰. 이 거대한 협곡이 언제 어떻게 새겨졌는가라는 질문은, 여러 세대의 지질학자들을 여전히 이 벼랑 끝으로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사진=Mgimelfarb/Wikimedia Commons (CC0)
1. Cottier, C. (2026.04.16). The mystery of how and when the Grand Canyon formed gets a new clue. Scientific American.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how-the-grand-canyon-formed-is-a-surprisingly-messy-story-heres-the-latest-clue/
2. Crow, R. S., Gootee, B. F. et al. (2026). Late Miocene Colorado River arrival in the Bidahochi basin supports spillover origin of Grand Canyon. Science.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dz6826
3. Karlstrom, K. E. et al. (2014). Formation of the Grand Canyon 5 to 6 million years ago through integration of older paleocanyons. Nature Geoscience, 7, 239–244.
4. UCLA Newsroom (2026). How the Colorado River got to the Grand Canyon. https://newsroom.ucla.edu/releases/how-colorado-river-got-to-grand-canyon
5. Science News (2026). Grand Canyon's origin resolved? Ancient lake's flood may have etched famed gorge.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grand-canyon-s-origin-resolved-ancient-lake-s-flood-may-have-etched-famed-gorge
6. Live Science (2026). Colorado River may have pooled and spilled over to form the Grand Canyon. https://www.livescience.com/planet-earth/rivers-oceans/colorado-river-may-have-pooled-and-spilled-over-to-form-the-grand-canyon-solving-a-long-standing-mystery-but-not-everyone-agr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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