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핵폭탄이 만든 사막의 유리, 그 안에서 81년 뒤에 발견된 결정

The Finch2026. 5. 13.

최초 핵폭탄이 만든 사막의 유리, 그 안에서 81년 뒤에 발견된 결정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폭발 후 25밀리초 시점에 라파트로닉 카메라로 포착한 트리니티 핵폭발의 화구.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미국 국방위협감소국

1945년 7월 16일 새벽 5시 29분, 미국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르도 사막. 25킬로톤짜리 플루토늄 폭탄이 30미터 높이 철탑 위에서 점화됐습니다. 인류 최초의 핵폭발, 트리니티⁠(Trinity) 실험이었죠. 폭발 직후 0.025초 사이에 화구의 표면 온도는 섭씨 1,500도를 훌쩍 넘었고, 압력은 수 기가파스칼에 이르렀습니다. 흑연을 다이아몬드로 쥐어짤 수 있는 압력이었죠.

버섯구름이 가라앉은 자리에 남은 건 사람들이 처음 보는 물질이었습니다. 모래사장이 통째로 녹아내려 옅은 녹색 유리가 됐고, 거기에는 사막에 박혀 있던 구리 센서선이 기화되어 섞여 들어가 있었죠. 과학자들은 이 사막의 유리에 트리니타이트⁠(trinitite)⁠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폭발 자체는 0.025초 사이에 끝났는데, 그 짧은 순간이 만들어낸 이 유리에서 8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로운 결정 구조가 줄줄이 발견되고 있다면요? 도대체 그 찰나에 사막의 모래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트리니티 핵폭발 직후 트리니타이트가 형성되는 압력-온도 조건 도식

핵폭발 직후 사막 모래가 트리니타이트로 굳기까지의 압력-온도 변화를 보여주는 도식. 짧은 시간 동안 비평형 조건이 유지된다. 출처: Finch 편집부 자체 제작 일러스트

모래가 다이아몬드 압력을 받았을 때

트리니타이트는 그 자체로 이상한 물건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유리는 마그마가 천천히 식거나 번개가 모래를 때릴 때 만들어지는데요. 트리니타이트는 핵폭발이라는 단 한 번의 비평형 상태에서 단숨에 굳어진 물질이었죠. 사막 모래의 주성분인 석영, 정장석에 더해 폭심부 철탑의 철, 센서선의 구리, 콘크리트 기반의 칼슘이 한꺼번에 증발했다가 몇 초 안에 다시 응결된 결과물입니다.

덕분에 이 유리 안에는 평소 자연에서는 짝이 될 일이 없는 원소들이 한 덩어리로 갇히게 됐는데요. 그 가운데 일부 영역은 붉은빛이 도는데, 이 빨간 트리니타이트가 특히 흥미롭습니다. 폭심부 가까이에서 구리가 많이 섞여 들어간 부위로, 훗날 두 번의 놀라운 발견이 모두 이 안에서 나왔거든요.

트리니타이트 표면을 약 6mm 크기로 확대한 사진

지름 약 6mm로 확대한 트리니타이트의 단면. 매끈한 녹색 유리질 안에 어두운 금속 알갱이가 점점이 박혀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DE) / H. Hiller

2021년,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가 깨지다

이야기의 첫 번째 반전은 2021년에 찾아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대학교의 광물학자 루카 빈디⁠(Luca Bindi) 교수와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의 물리학자 폴 스타인하트 박사 연구팀은, 빨간 트리니타이트 한 조각에서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결정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죠. 바로 준결정⁠(quasicrystal)⁠이었습니다.

준결정이 무엇인지 짧게 짚고 가야겠는데요. 보통의 결정은 같은 원자 배열이 일정한 간격으로 무한히 반복됩니다. 그런데 1984년 이스라엘 공과대학의 단 셰흐트만 박사는 알루미늄-망가니즈 합금에서 반복은 없는데도 깨끗한 회절 무늬가 나오는 이상한 고체를 관찰했죠. 다섯 겹 대칭처럼 결정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패턴이었습니다. 이 발견은 화학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들었고, 셰흐트만은 2011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자연에 존재하는 준결정은 단 하나, 약 45억 년 전 소행성 충돌로 만들어진 운석 조각에서만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빈디 교수팀은 트리니타이트 안에서 또 다른 자연 준결정을 찾아낸 거죠. 화학식은 규소 61%, 구리 30%, 칼슘 7%, 철 2%⁠였습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준결정이었고, 동시에 핵폭발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첫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열두면체와 십사면체로 이루어진 클라트레이트 결정 격자 도식

새 결정의 골격은 규소 원자들로 이뤄진 열두면체와 십사면체의 새장이고, 그 안에 칼슘, 구리, 철이 갇혀 있다. 출처: Finch 편집부 자체 제작 일러스트

2026년 5월, 같은 트리니타이트에서 또 한 번

그리고 81년이 지난 2026년 5월 11일, 빈디 교수와 폴 스타인하트 박사 연구진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PNAS》에 또 하나의 새로운 발견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빨간 트리니타이트 안에 박힌, 구리가 풍부한 금속 방울 속에서 이번에는 클라트레이트⁠(clathrate)⁠라는 케이지 구조 결정이 나왔거든요.

클라트레이트는 원자들이 새장처럼 빈 공간을 만들어 다른 원자를 가두는 결정입니다. 이 결정의 골격은 규소 원자로 짜인 열두면체와 십사면체 두 종류의 새장이었고, 그 안에는 칼슘, 그리고 일부는 구리와 철이 갇혀 있었습니다. 화학식은 (Ca3.3Cu0.4Fe0.3)Σ4Si23. 핵폭발이 만든 고체 생성물 가운데 결정학적으로 확인된 첫 클라트레이트 구조죠.

흥미로운 건 이 두 번째 결정이 5년 전 발견된 준결정과 같은 네 가지 원소, 즉 철, 규소, 구리, 칼슘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입니다. 연구진은 같은 폭발이 만든 같은 온도, 같은 압력 조건에서도 구리가 풍부한 자리에서는 준결정이, 구리가 부족한 자리에서는 클라트레이트가 만들어졌다고 추정합니다. 빈디 교수는 "이 준결정은 똑같은 극한 조건에서 만들어졌는데도 아직 실험실에서 재현되지 않았다. 자연이 만들었지만 우리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죠.

0.025초 안에 일어난 일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시간 규모입니다. 트리니티 화구가 만들어진 뒤 식는 데에는 겨우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빈디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원자들이 안정한 구조로 정렬할 시간조차 없었던" 상태죠. 그 짧은 비평형 순간에 자연은, 평소라면 절대 만들지 않는 원소 조합을 강제로 한자리에 묶었고, 그 결과가 우리가 80년 넘게 풀어내고 있는 결정학적 수수께끼가 됐습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이런 현상을 자연 실험실이라고 부릅니다. 핵폭발만이 아니라 번개가 모래에 떨어지는 순간, 운석이 초속 수십 킬로미터로 지면을 때리는 순간 같은 극단적 사건들이 모두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사람의 손이 닿기 어려운 압력과 온도가 단숨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그곳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결정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트리니타이트 한 조각은, 단순한 핵실험의 흔적이 아닙니다. 인류가 두려운 마음으로 처음 열어 본 극한의 물리 화학 실험실에서 자연이 슬쩍 내려놓은 견본인 셈이죠. 빈디 교수팀은 같은 시료에서 앞으로도 새로운 결정이 더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1945년 그 새벽의 사막은 81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의 비밀을 모두 다 풀어놓지는 않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참고문헌

1. Bindi, L., Kolb, W., Eby, G. N., Asimow, P. D., Wallace, T. C., & Steinhardt, P. J. (2021). "Accidental synthesis of a previously unknown quasicrystal in the first atomic bomb test."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8(22), e2101350118. DOI: 10.1073/pnas.2101350118

 2. Bindi, L., Mihalkovič, M., Widom, M., & Steinhardt, P. J. (2026). "Extreme nonequilibrium synthesis of a Ca-Cu-Si clathrate during the Trinity nuclear test."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2604165123

 3. Shechtman, D., Blech, I., Gratias, D., & Cahn, J. W. (1984). "Metallic Phase with Long-Range Orientational Order and No Translational Symmetry." Physical Review Letters, 53(20), 1951-1953. DOI: 10.1103/PhysRevLett.53.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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