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공동묘지 아래에서 벌 560만 마리가 발견됐습니다

The Finch2026. 4. 17.

뉴욕 공동묘지 아래에서 벌 560만 마리가 발견됐습니다

뉴욕 주 이타카 이스트 론 시메터리 풀밭 아래에서 매년 봄 560만 마리가 일제히 깨어난다. 사진은 근연종 Andrena cineraria. ⓒ Flocci Nivis / Wikimedia Commons (CC BY 4.0)

뉴욕 주 이타카에 150년 된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이스트 론 시메터리⁠(East Lawn Cemetery). 짧게 깎인 잔디만 보면 조용한 풍경이지만, 그 풀밭 아래에는 매년 봄마다 약 560만 마리의 벌이 일제히 올라옵니다. 2026년 4월 13일 학술지 Apidologie에 실린 코넬대학교 연구팀의 논문이 이 숫자를 보고했습니다. 지금까지 기록된 땅벌 집결지 중 세계 최대급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장면이 만드는 역설입니다. 주인공은 꿀벌이 아니라 "단독생활 벌⁠(solitary bee)"입니다. 말 그대로 혼자 사는 벌인데, 한 자리에 560만 마리가 모여 있다는 건 언뜻 모순처럼 들리죠. 사회성 군체도 아닌 벌들이 어떻게 이 규모의 "도시"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 논문이 파고든 핵심이 바로 이 질문입니다.

모였지만 사회는 아니다 — 혼자 사는 벌의 역설

벌이라는 곤충의 지도를 먼저 잠깐 펼쳐 보죠. 지금까지 기록된 벌은 전 세계 약 2만 종입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꿀벌속⁠(Apis)⁠은 그 중 10종이 채 안 됩니다. 나머지 절대다수가 "단독생활 벌"입니다. 여왕도, 일꾼도, 군체도 없이, 각 암컷이 혼자서 굴을 파고 혼자 알을 낳고 혼자 살다 죽는 벌들이죠. 북미에서는 토종 벌의 약 70~75%⁠가 이렇게 땅속에 굴을 뚫는 단독생활 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논문의 주인공은 그 가운데 Andrena regularis라는 종입니다. 우리말로는 "광부벌" 정도로 옮기는 Andrena속의 한 종이죠. 한 마리가 보이는 행동은 지극히 고독합니다. 짝짓기를 마치면 암컷은 혼자 굴을 파고, 혼자 꽃가루를 모으고, 혼자 알을 낳고, 굴 입구를 흙으로 막은 뒤 며칠 안에 죽습니다. 군체를 이루고 분업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단독생활 벌의 둥지 구멍. 한 구멍당 암컷 한 마리. 이스트 론 시메터리의 풀밭에는 1제곱미터당 수백 개의 구멍이 빼곡히 뚫려 있었다. ⓒ Leanmeanmo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그런데도 한 자리에 모이는 건 왜일까요. 학술 용어로는 이런 집결을 "집합 둥지⁠(aggregation)"라고 부릅니다. 사회성 군체⁠(colony)⁠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에요. 이스트 론 시메터리의 암컷들은 땅 위에 1제곱미터당 수백 개의 구멍을 뚫어 두었지만, 각 구멍 속에선 여전히 한 마리가 혼자 새끼를 돌봅니다. 집이 빽빽할 뿐, 공동체는 아닌 겁니다.

그렇다면 왜 모일까요. 연구자들이 오래전부터 지목하는 요인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흙 조건이 종마다 까다롭게 정해져 있다는 점. 배수, 입도, 햇볕 각도가 맞지 않으면 굴이 무너지거나 알이 곰팡이에 질식합니다. 적합지가 드물면 벌이 몰릴 수밖에 없죠. 다른 하나는 짝짓기 기회가 시공간적으로 극히 제한돼 있다는 점입니다. 한 해에 단 몇 주, 같은 땅에서 터지는 짝짓기 시즌을 놓치지 않으려면, 태어난 자리 근처로 다시 모이는 편이 유리합니다. 이 두 요인이 만나면, 혼자 사는 벌이 지하 도시를 만드는 결과가 나옵니다.

한 엄마, 4~5개 방, 한 세대

Andrena regularis의 생활사는 일 년에 정확히 한 번만 돌아갑니다. 학술 용어로 "1화성⁠(univoltine)". 1년에 단 한 세대만 태어나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땅속에서 보낸다는 뜻이죠.

짝짓기를 끝낸 암컷은 곧바로 굴을 팝니다. 지표면에 작은 구멍을 뚫은 뒤 아래로 좁은 수직 갱도를 내려가다가, 옆 방향으로 방 4~5개를 파 내는 방식입니다. 각 방은 지표에서 10~22cm 깊이. 방 하나가 아기 한 마리분의 육아실이죠. 암컷은 꽃에서 꽃가루와 꿀을 긁어모아 방마다 "벌 빵⁠(bee bread)"이라는 덩어리를 쌓고, 그 위에 알을 딱 하나씩 낳은 뒤 입구를 다시 흙으로 막습니다. 이 일을 네댓 번 반복하면 한 암컷의 임무는 끝입니다. 이후 수명은 며칠에서 몇 주에 불과하죠.

Andrena속 암컷이 자신의 굴로 들어가는 모습. 굴 하나가 한 마리가 쓰는 작은 단독주택이고, 아래에는 네댓 개의 육아실이 옆으로 붙어 있다. ⓒ Judy Gallagher / Wikimedia Commons (CC BY 2.0)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방 안의 벌 빵을 먹고 자라다가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됩니다. 여기서 이 종만의 특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A. regularis는 "성충 상태로 겨울을 나는" 벌입니다. 대부분의 벌은 알이나 유충, 번데기 상태로 월동하는데, 이 종은 가을이 오기 전에 이미 다 자란 성충이 된 뒤 땅속 방에서 다음 봄까지 기다리죠.

이 전략을 쓰는 벌은 상대적으로 드뭅니다. 이유는 단순한데, 봄이 오자마자 가장 먼저 땅을 뚫고 올라와 초봄 꽃에 달라붙기 위해서입니다. 유충 상태에서 겨울을 나는 벌은 봄이 와도 아직 성숙해야 하니 출발이 늦죠. 성충 월동 벌은 햇볕이 조금만 강해져도 즉시 비행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 셈입니다. 왜 이런 "선두주자 전략"을 고집했을까. 답은 다음 섹션의 꽃 이야기와 맞물립니다.

4월 아침 21℃를 기다리는 수컷들

이번 논문이 특히 공들여 들여다본 부분은 이 벌들이 "언제" 땅에서 나오느냐였습니다. 연구진은 2023년 3월 30일부터 5월 16일까지 이스트 론 시메터리 여러 지점에 "출현 포획기⁠(emergence trap)" 10대를 설치했습니다. 작은 텐트 밑에서 기어 올라오는 벌이 위쪽 깔때기를 따라 채집통으로 모이는 구조죠. 7주 사이에 잡힌 표본은 3,251개체, 16종에 달했습니다.

데이터에서 분명한 순서가 드러났습니다. 먼저 수컷들이 우르르 올라오고, 며칠 뒤에야 암컷이 뒤를 따릅니다. 수컷의 출현은 갑작스럽게 터지는데, 조건은 대체로 한낮 기온이 약 21℃(70°F)⁠를 넘길 때였습니다. 이 온도에 도달하는 따뜻한 날, 묘지 위에는 수컷들이 낮게 날며 암컷을 기다리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수컷이 먼저 나오는 이 순서를 생물학 용어로 "수컷 선출현⁠(protandry)"이라고 부릅니다. 한정된 짝짓기 기회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수컷이 먼저 장면에 등장해 암컷을 기다리도록 진화한 현상이죠. 반대 방향, 즉 암컷이 먼저 나와 기다리는 전략은 거의 없습니다. 알을 품은 암컷은 에너지 소모가 더 크기 때문에, 출현 순간을 되도록 짧게 가져가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이 출현 타이밍이 중요한 건 두 가지 시계와 동시에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꽃이 피는 시계, 다른 하나는 기생자가 움직이는 시계입니다. 두 시계 모두 하루 단위로 어긋나기 시작하면 이 지하 도시의 다음 세대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거든요.

사과꽃이 피면 암컷이 올라온다

A. regularis는 꽃을 크게 가리지 않는 벌입니다. "다화성⁠(polylectic)", 즉 여러 과의 꽃을 두루 이용하죠. 그런데 이용 빈도가 유독 높은 식물군이 있습니다. 장미과⁠(Rosaceae). 사과⁠(Malus), 벚·자두⁠(Prunus), 채진목⁠(Amelanchier), 산사나무⁠(Crataegus) 같은 나무들입니다.

사과꽃을 찾아온 단독생활 벌. 미국 북동부 사과 과수원의 이른 봄 수분은 꿀벌보다 Andrena속 땅벌에 훨씬 크게 의존한다. ⓒ stanze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미국 북동부 사과 과수원에서 이 벌이 맡는 역할은 단순한 조연이 아닙니다. 사과꽃은 4월 말⁠~5월 초에 짧고 강렬하게 피는데, 이때 기온은 꿀벌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에 아직 낮습니다. 꿀벌은 기온이 12℃를 밑돌면 잘 비행하지 않죠. 반면 성충으로 월동하는 Andrena속 벌들은 가슴 근육을 떨어 체온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꿀벌이 출근하지 못하는 싸늘한 아침에도 사과꽃을 찾아갑니다. 사과꽃이 처음 벌어지는 그 며칠의 창에 이 벌들이 이미 땅에서 올라와 있다는 건, 과수 수분의 관점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시계는 A. regularis의 생활사 전체를 묶어 주는 접착제이기도 합니다. 성충으로 월동, 이른 출현, 짧은 성충 수명, 장미과 꽃가루 집중 수집, 1년 1세대 — 각기 따로 진화한 형질들이 "사과꽃이 피는 몇 주의 창"에 동기화돼 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거죠. 이스트 론 시메터리 지하 도시의 스케줄표는, 사실상 사과꽃 피는 시기에 맞춰 짜여진 시간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뻐꾸기 벌의 기회, 밀도가 만드는 함정

이 거대한 지하 도시에는 불청객이 있습니다. Nomada imbricata라는 벌인데, 영어권에서는 "뻐꾸기 벌⁠(cuckoo bee)"이라고 부르죠.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 것처럼, 이 벌은 Andrena regularis가 파 놓은 굴에 자기 알을 밀어 넣는 "산란 기생자"입니다.

Nomada속 뻐꾸기 벌. 꽃가루를 나르지 않는 기생성이라 몸에 꽃가루 주머니용 털⁠(스코파)⁠이 없고, 성충의 외형도 말벌에 가깝다. ⓒ Charles J. Sharp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Nomada는 몸의 설계부터 다릅니다. 꽃가루를 나를 이유가 없으니 다리·배에 꽃가루 주머니용 털⁠("스코파")⁠이 거의 없어 외형이 매끈합니다. 성충만 보면 말벌에 가깝죠. 수컷은 또 재미있는 재주를 갖고 있습니다. 숙주 벌 수컷과 비슷한 화학 신호를 몸에 뒤집어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화학 의태는 Nomada 암컷이 숙주 굴에 접근할 때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해석됩니다.

산란 방식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숙주 암컷⁠(여기서는 A. regularis)⁠이 굴 바닥에 벌 빵을 쌓고 알을 낳은 뒤, 입구를 흙으로 막기 직전의 짧은 공백을 Nomada 암컷이 노립니다. 이때 굴로 잠입해 방 벽에 자기 알을 몰래 끼워 넣는 거죠. 부화한 Nomada 애벌레는 숙주의 알이나 막 태어난 애벌레를 먼저 죽이고, 대신 벌 빵을 독차지합니다. 남이 정성껏 차린 육아실을 통째로 차지하는 셈입니다.

이번 논문의 설계가 흥미로운 건, 숙주와 기생자의 출현 곡선까지 같은 포획기 데이터로 잡아냈다는 점입니다. 숙주 A. regularis의 출현이 피크를 찍은 뒤, 뒤이어 N. imbricata의 출현이 더 늦고 더 완만하게 따라 올라왔습니다. 기생자가 숙주보다 먼저 나와 봤자 산란할 둥지가 준비돼 있지 않으니, 숙주가 벌 빵을 쌓을 때까지 기다리는 쪽이 합리적입니다. 이 시간 차는 오랜 공진화가 남긴 미세한 튜닝의 흔적인 셈이죠.

숙주가 한 자리에 극단적으로 밀집한다는 건, 기생자에게는 최고의 사냥터가 열리는 것과 같습니다. 집결지 규모가 커질수록 Nomada가 얻는 "탐색 비용 절감"도 커지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이 도시가 유지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숙주의 절대 개체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매년 일정 비율을 기생으로 잃어도 전체 개체군이 무너지지는 않는 균형점에 올라서 있는 겁니다.

100년 넘게 한 자리에 남은 지하 도시

마지막 질문은 간단합니다. 왜 하필 공동묘지일까요. 이스트 론 시메터리는 1878년에 조성됐습니다. 지금까지 약 150년 동안 잔디를 짧게 관리하는 것 외에는 땅을 크게 건드리지 않았죠. 농약도 거의 뿌리지 않고, 굴착 공사도 없습니다.

조용한 공동묘지의 잔디밭. 오랫동안 땅이 뒤집히지 않고 유지되는 묘지의 흙은, 땅속 벌에겐 최적의 서식지가 된다. ⓒ Gary Halvorson / Oregon State Archives (Attribution)

이게 단독생활 벌에게 무슨 의미냐. Andrena속의 굴은 지표에서 22cm 이내에 얕게 만들어집니다. 쟁기질이나 땅파기 한 번이면 그 세대가 통째로 사라진다는 뜻이죠. 대부분의 농경지·정원·공원은 해마다 이런 교란을 반복하기 때문에 집결지가 누적될 수 없습니다. 반면 묘지는 잔디만 깔끔히 유지하는 "반⁠(半)⁠자연 상태"를 오래 가져가기 좋은 곳이에요. 햇볕이 잘 드는 점, 배수가 좋은 점, 관리 담당자가 바뀌어도 기본 구조가 유지되는 점까지 겹치면, 수십 년 단위로 벌의 시간표에 맞는 땅이 됩니다.

이 집결지의 역사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연구팀이 과거 곤충 채집 기록을 뒤진 결과, 1900년대 초반부터 이 묘지에서 A. regularis가 채집된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최소한 한 세기 동안, 같은 지점에서 같은 종의 벌이 끊이지 않고 살아온 셈이죠. 묘지의 물리적 안정성에 더해, 이 벌들이 보이는 "태어난 자리로 돌아오는 경향⁠(philopatry)"이 맞물려 이 긴 시간이 이어졌다고 해석됩니다.

이스트 론 시메터리의 발견은 "벌이 위기다"라는 흔한 이야기에 작은 균열 하나를 냅니다. 북미 꿀벌의 쇠퇴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시야를 단독생활 벌 쪽으로 넓히면 아직 우리가 데이터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한 거대한 지하 도시들이 발밑에 남아 있습니다.

조용히 잔디밭만 관리해 온 150년 된 묘지 밑에, 560만 마리의 벌이 매년 봄 4월 21℃의 아침을 기다립니다. 그 시간표는 우리가 아직 다 읽지 못했을 뿐, 최소 100년은 흘러온 기록인 셈입니다.

참고문헌

1. Hoge, S. T. et al., "Emergence dynamics and host-parasite associations in a large aggregation of Andrena regularis (Hymenoptera: Apoidea: Andrenidae)", Apidologie, 2026. doi:10.1007/s13592-026-01256-6

2. Danforth, B. N. et al., "The Solitary Bees: Biology, Evolution, Conserva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9.

3. Park, M. G. et al., "Apple pollination by wild bees in New York State: Shifting pollinator communities during orchard bloom", Basic and Applied Ecology, 2015.

4. Cane, J. H. & Neff, J. L., "Predicted fates of ground-nesting bees in soil heated by wildfire: Thermal tolerances of life stages and a survey of nesting depths", Biological Conservation, 2011.

5. Portman, Z. M. et al., "Under the radar: detection avoidance in brood parasitic bees",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 2019. doi:10.1098/rstb.2018.0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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