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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산호초 위를 무리 지어 헤엄치는 앵무고기. 한 마리의 잘못된 신호가 무리 전체를 헛되이 도망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NOAA Fisheries, Kaylyn McCoy
약 1,500마리짜리 물고기 무리가 산호초 위를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자리에 있던 한 마리가 갑자기 옆구리를 비틀며 반대 방향으로 쏜살같이 도망칩니다. 그 모습을 본 옆 친구가 따라 도망치고, 또 옆이 따라 도망치고. 1초도 안 되어 무리 전체가 산호 그늘로 숨어버립니다. 그런데 정작 그 자리에는 포식자가 없었어요. 시작점이었던 그 한 마리도, 아무것도 못 본 채 그냥 놀랐을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기는데요. 동물 세계에도 우리 인간이 SNS에서 자주 보는 가짜뉴스 같은 게 있는 걸까요? 혹시 자연이 우리보다 먼저 그 문제를 겪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 의문에 본격적으로 답한 사람이 미국 코넬대학교의 앤드루 하인(Andrew Hein) 박사입니다. 계산생물학자인 그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모레아(Mo'orea) 섬 앞바다에서 산호초 물고기 무리를 카메라로 추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이상한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됐죠.
가만히 헤엄치던 물고기 한 마리가 "안전한데 갑자기 목숨 걸고 도망치는" 행동을 반복했거든요. 옆 동료들은 그 친구의 도주만 보고 "위험하구나"라고 판단해 같이 도망쳤습니다. 가짜 경보가 도미노처럼 무리 전체로 번지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인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터넷에서 가짜뉴스가 퍼지는 그림과 똑같다는 게 머릿속에서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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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마리의 잘못된 도주가 옆 물고기에게 전달되고, 그 신호가 무리 전체로 퍼지는 가짜 경보 도미노. 진짜 위협이 없어도 무리는 한꺼번에 도망칩니다. ⓒ The Finch
하인 박사 연구팀은 이 현상을 "가짜 경보 도미노(false alarm cascade)"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2025년 《왕립학회 인터페이스 저널》에 발표한 새 논문에서 더 큰 주장을 펼쳤어요. 가짜 정보는 물고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호를 주고받는 모든 생물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구조적 결과라는 거죠.
실제로 무리를 짓는 동물은 비비원숭이부터 흰개미까지 끊임없이 서로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박테리아도 마찬가지인데요. 화학 신호로 동료의 숫자를 세고, 함께 점액질 방어막을 만들죠. 심지어 우리 몸속 면역세포도 다른 세포에게 "적이 왔다"는 신호를 보내며 협력합니다. 정보가 흐르는 모든 곳에 가짜 정보가 끼어들 자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가짜 신호 한두 개가 그렇게 큰 문제일까요? 예전 생물학자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봤습니다. 물고기 한 마리가 헛도주를 해봐야 점심 한 끼 정도 놓치는 거 아니냐는 거죠. 하인 박사 연구팀은 그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너무 예민하게 가짜 경보에 반응하는 물고기는 "한 끼가 아니라 모든 끼니를 놓치게 된다"고 말합니다. 도망만 다니다 굶어 죽는 거예요.
이탈리아 사피엔자 대학교의 발테르 콰트로치오키 데이터과학 교수도 비슷한 평을 내놨습니다. 그는 이 연구가 "가짜 정보는 도덕적 결함이나 예외가 아니라, 잡음과 한정된 맥락 속에서 소통할 수밖에 없는 모든 시스템의 구조적 결과임을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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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작은 무리에서는 한 마리의 도주가 곧바로 전체로 번지지만, 큰 무리에서는 뇌가 민감도를 낮춰 몇 마리가 같이 움직여야만 반응합니다. 자연이 진화시킨 가짜뉴스 방어막. ⓒ The Finch
그렇다면 물고기들은 가짜 경보를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요? 하인 박사 연구팀이 사전 연구에서 발견한 답이 흥미롭습니다. 같은 종이라도 무리 크기에 따라 반응 민감도가 달라진다는 거였어요. 무리가 작으면 한 마리의 움직임에도 곧바로 반응합니다. 그런데 무리가 커지면 물고기의 뇌가 알아서 민감도를 낮춰버립니다. 몇 마리가 동시에 도망쳐야 비로소 "진짜인가 보다"라고 판단하는 거죠.
이 전략은 가짜 경보 자체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다만 도미노가 작은 범위에서 꺼지도록 막아주는 거예요. 무리 전체가 휩쓸리기 전에 자연스럽게 멈추는 셈입니다. 이 결과는 같은 연구팀이 2023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한 논문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산호초 물고기들이 사회적으로 퍼지는 가짜 정보를 스스로 억제한다는 제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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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 산호초 위를 헤엄치는 큰눈전갱이(Selar crumenophthalmus) 무리. 무리가 클수록 뇌는 가짜 경보에 둔감해지고, 진짜 위험에는 여전히 반응합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NOAA Fisheries, Jeff Milisen
물론 한계도 분명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의 케일린 오코너(Cailin O'Connor) 철학 교수는 하인 박사 연구팀의 수학 모델이 "너무 단순하다"고 지적합니다. 정보 한 조각이 여러 믿음에 동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떤 신호가 "가짜 정보인지"를 생물학적으로 정의하려면 훨씬 정교한 모델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오코너 교수는 한 가지 흥미로운 제안을 던졌습니다. "사람을 더 똑똑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그만하자"는 거였어요. 인간의 판단력에는 한계가 있고, 자연도 똑똑함이 아니라 민감도 조절로 가짜 정보에 대응했다는 거죠. 물고기가 진화로 찾은 해법이 우리가 알고리즘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살짝 비춰주는 셈입니다.
여운이 남는 부분이 있습니다. 작은 산호초 한 자락에서 한 마리 물고기가 헛놀랐을 뿐인데, 그 작은 떨림이 무리의 점심도, 진화의 방향도, 어쩌면 SNS 시대를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까지 비추고 있다는 점이죠. 모든 소통은 잡음과 함께 흐르고, 살아남은 사회는 결국 잡음을 다루는 법을 익혀온 사회였습니다.
1. Hein, A. M., et al. (2025). "A brief natural history of misinformation."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 22(233), 20250161. DOI: 10.1098/rsif.2025.0161
2. Fahimipour, A. K., Gil, M. A., Celis, M. R., Hein, G. F., Martinez, N. D., Hein, A. M. (2023). "Wild animals suppress the spread of socially transmitted misinforma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20(14), e2215428120. DOI: 10.1073/pnas.2215428120
3. Gray, L., Webster, M. M. (2023). "False alarms and information transmission in grouping animals." Biological Reviews, 98(4), 1140-1164. DOI: 10.1111/brv.1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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