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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털원숭이는 신경과학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에서 자주 쓰이는 영장류 모델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Charles J. Sharp
원숭이 한 마리가 화면 속 세계를 움직입니다. 길을 따라가고, 방향을 바꾸고, 목표 지점으로 다가가죠. 그런데 손잡이를 잡은 것도 아니고, 발판을 밟은 것도 아닙니다. 몸은 거의 가만히 있는데 화면 속 몸만 움직였습니다.
그럼 정말 생각만으로 걸은 걸까요? 표현만 들으면 독심술처럼 느껴집니다. 머릿속 문장을 읽어내서 컴퓨터가 알아서 움직인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실제 과학은 조금 다릅니다. 연구진이 읽은 것은 생각의 내용이 아니라, 움직이려는 의도가 만들어내는 뇌의 전기 신호였습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는 뇌와 기계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입니다. 여기서 직접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평소에는 뇌가 척수와 근육을 거쳐 손가락을 움직이고, 손가락이 키보드나 조이스틱을 움직입니다. 하지만 BCI는 이 중간 경로를 일부 건너뜁니다. 뇌 신호를 기계 명령으로 바꾸는 거죠.
벨기에 KU 루벤의 오펠리 소쉬스(Ophelie Saussus), 소피 더 스흐레이버(Sofie De Schrijver), 피터 얀센(Peter Janssen) 교수 연구팀은 이 문제를 조금 더 실제 상황에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2026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연구에서, 이들은 세 마리 붉은털원숭이의 뇌 신호를 이용해 가상현실 속 이동을 제어하게 했습니다.
기존 BCI 연구는 커서를 움직이거나 로봇 팔을 조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도 대단하지만, 실제 삶에서 필요한 이동은 훨씬 복잡합니다. 앞으로 가다가 장애물을 피해야 하고, 목표 지점에 맞춰 방향을 바꿔야 하죠. 휠체어를 생각해 보면 더 분명합니다. 직선으로만 가는 기계라면 일상에서 쓰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뇌 신호만으로 복도와 방, 장애물이 있는 공간을 지나갈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상상이 아닙니다.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이동의 자유와 바로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연구팀은 원숭이의 일차운동피질, 등쪽 전운동피질, 배쪽 전운동피질에 전극을 심었습니다. 이 세 영역은 몸을 움직이기 전 계획과 실행에 관여합니다. 쉽게 말해 뇌가 앞으로 갈 준비를 하는지, 왼쪽으로 틀 준비를 하는지, 속도를 바꾸려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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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운동 관련 신호는 전극과 해독기를 거쳐 가상 공간의 이동 명령으로 바뀐다. 그림ⓒ The Finch
여기서 중요한 건 신호가 곧바로 앞으로 가라는 명령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전극은 수많은 뉴런의 활동을 짧은 시간 단위로 기록합니다. 이 숫자들이 해독기(decoder)라는 알고리즘을 지나면서 화면 속 아바타의 속도와 방향으로 바뀌죠. 그러니까 기계가 읽는 것은 마음속 문장이 아니라, 뉴런 활동의 패턴입니다.
연구팀은 다섯 가지 과제를 만들었습니다. 중심에서 목표로 가는 과제, 계속 이동하는 과제, 3차원 목표로 움직이는 과제, 다시 나타나는 목표를 찾는 과제, 장애물을 피하는 과제였죠. 단순히 점 하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점점 현실적인 이동 문제로 난도를 올린 겁니다.
결과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원숭이들은 몸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도 가상 세계를 탐색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모든 과제의 성공률은 우연 수준을 뚜렷하게 넘어섰습니다. 예를 들어 연속 내비게이션 과제에서 세 원숭이는 각각 평균 약 69%, 70%, 59%의 성공률을 보였죠.
이 숫자가 의미 있는 이유는 과제의 우연 수준이 훨씬 낮았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여러 방향에 있고, 장애물이 있고, 3차원 위치까지 고려해야 하면 아무렇게나 움직여서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즉 성공률은 뇌 신호에 실제 이동 정보가 들어 있었고, 해독기가 그 정보를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꺼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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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서 하나를 움직이는 일과 달리, 가상 공간 탐색은 방향 전환, 위치 추정, 목표 도달을 동시에 해독해야 한다. 그림ⓒ The Finch
그런데 더 흥미로운 부분은 훈련 방식입니다. 해독기는 원숭이가 실제로 손이나 몸을 움직이는 데이터를 오래 모아야만 작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구진은 원숭이가 움직임을 관찰하는 동안의 신호를 이용해 해독기를 훈련했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환자에게 적용하려면 이런 조건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이것이 당장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극을 뇌에 심는 일은 침습적인 절차입니다. 장기간 안정성, 감염 위험, 신호 품질, 사용자의 피로도 같은 문제가 남아 있죠. 또 가상현실에서 성공한 기술이 실제 휠체어, 실제 복도, 실제 사람들 사이에서도 안전하게 작동하려면 훨씬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생각만으로 움직였다는 표현 뒤에는 생각을 읽는 마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움직임을 준비하는 뇌의 신호가 있고, 그 신호를 숫자로 바꾸는 해독기가 있으며, 사용자가 다시 그 결과를 보며 적응하는 닫힌 고리가 있습니다. 뇌와 기계가 서로 조금씩 맞춰 가는 거죠.
결국 이 연구가 보여준 것은 한 가지입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도 뇌는 움직임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준비 신호를 충분히 정교하게 읽어낼 수 있다면, 움직임은 근육을 통하지 않고도 바깥 세계로 나올 수 있습니다. 생각을 읽은 것이 아니라, 움직이려는 마음이 남긴 전기적 발자국을 읽은 셈입니다.
1. Saussus, O., De Schrijver, S., Garcia Ramirez, J., Decramer, T., & Janssen, P. (2026). "Intracortical brain-computer interface for navigation in virtual reality in macaque monkeys." Science Advances, 12(16), eadw3876. DOI: 10.1126/sciadv.adw3876
2. De Schrijver, S., Garcia Ramirez, J., Iregui, S., Aertbelien, E., De Schutter, J., Theys, T., Decramer, T., & Janssen, P. (2026). "An intracortical brain-machine interface based on macaque ventral premotor activity." Scientific Reports, 16, 38536. DOI: 10.1038/s41598-026-38536-1
3. Lebedev, M. A., & Nicolelis, M. A. L. (2017). "Brain-machine interfaces: From basic science to neuroprostheses and neurorehabilitation." Physiological Reviews, 97(2), 767-837. DOI: 10.1152/physrev.00027.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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