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년 전, 미생물이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

The Finch2026. 5. 14.

20억 년 전, 미생물이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

고온 산성 환경에서 살아가는 고세균 사진. 솔파타리쿠스라는 종으로, 진핵세포의 먼 친척으로 알려진 고세균은 단순한 모양의 단세포 미생물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 3.0) / Ceballos et al. (2012)

전자현미경 슬라이드 위에 놓인 한 미생물이 8년 만에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꿈틀거렸습니다. 길이 1마이크로미터⁠(0.001mm)⁠도 안 되는 이 작은 세포는 자기 몸에서 긴 촉수 같은 가지를 뻗어 유리 표면을 잡고는 천천히 기어갔죠.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 실험실은 그날 환호성으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왜 이 별것 아닌 듯한 장면이 그토록 큰 사건이었을까요. 이 미생물의 이름은 아스가르드 고세균⁠(Asgard archaea). 우리 몸을 이루는 복잡한 세포의 가장 가까운 조상 후보로 꼽히는 존재입니다.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사건 하나를 꼽으라면, 약 20억 년 전에 벌어진 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단순한 세포에서 복잡한 세포가 탄생한 사건이죠. 인간, 동물, 식물, 곰팡이를 이루는 세포는 모두 진핵세포라 부르는데요. 안에 DNA를 담은 핵,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 그리고 세포를 지탱하는 그물 같은 골격이 들어 있습니다.

반면 대장균 같은 단순한 미생물에는 이런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핵도, 미토콘드리아도, 골격도 없죠. 이런 단세포 생물을 원핵생물이라 부릅니다. 원핵생물은 40억 년 전쯤 등장했고, 진핵생물은 25억에서 20억 년 전 사이 어딘가에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그 사이의 빈칸을 채우는 일이 수십 년간 과학자들의 숙제였죠.

아스가르드 고세균 세포 구조와 진핵세포 비교 도식

그림: 아스가르드 고세균이 액틴 단백질로 만든 세포 골격과 막 돌기를 이용해 기어다니는 모습을 진핵세포와 비교한 도식. ⓒ The Finch

중요한 단서 하나는 1990년대에 나왔습니다. 진핵세포의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 안에서 핵의 DNA와는 전혀 다른 유전자 한 묶음이 발견된 거죠. 그 유전자는 산소로 에너지를 만드는 박테리아와 똑 닮아 있었습니다. 즉 미토콘드리아의 조상은 한때 따로 살던 박테리아였고, 어떤 다른 세포가 이걸 통째로 삼킨 뒤 한 몸이 됐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그 박테리아를 삼켰을까요.

두 번째 결정적 단서는 2015년에 등장합니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의 안야 스팡 박사와 테이스 에테마 박사 연구팀이 북극해 깊은 바닥의 진흙에서 DNA 조각을 긁어 모은 거죠. 짜맞춰 보니, 한 미생물의 유전체에 그동안 진핵생물에만 있다고 알려진 유전자들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세포 골격을 만드는 유전자, 낡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구획을 짓는 유전자까지 포함돼 있었죠. 이들은 이 미생물 무리에 북유럽 신화 속 신들의 거처 이름을 따 아스가르드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후 과학자들은 이 잃어버린 고리를 더 찾으려 애썼지만, 진척은 더뎠습니다. 일본 해양연구개발기구의 이마치 히로유키 박사 연구팀은 무려 12년에 걸쳐 심해 진흙 속 미생물 한 종을 실험실에서 키우는 데 성공해, 2020년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죠. 프로메테오아르카에움 신트로피쿰⁠(Prometheoarchaeum syntrophicum)⁠이라 이름 붙인 이 세포는 진핵세포처럼 긴 돌기를 뻗고 있었습니다.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로의 진화 트리와 내공생 사건 도식

그림: 약 20억 년 전 아스가르드 고세균이 산소 호흡 박테리아를 세포 안에 들여 미토콘드리아로 삼은 내공생 가설 도해. ⓒ The Finch

그리고 2026년, 미국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의 미생물 생태학자 브렛 베이커⁠(Brett Baker) 박사 연구팀이 큰 그림을 다시 그려냈습니다. 그는 캘리포니아 앞바다 심해부터 중국 연안의 얕은 갯벌까지 표본을 모은 뒤, 새로 개발된 DNA 분석 기법으로 희귀 미생물 유전자를 골라냈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새 아스가르드 종이 한 번에 404종 발견됐고, 과거 데이터에서 놓쳤던 30종까지 합쳐 알려진 아스가르드 다양성이 거의 두 배로 늘었습니다.

같은 연구에 참여한 파스퇴르 연구소의 미생물 생태학자 캐스린 애플러 박사는 더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새로 찾은 아스가르드 중 상당수가 산소가 풍부한 연안 바닷물에 살고 있었던 거죠. 게다가 이들의 유전자에는 산소로 호흡하고 유기 탄소를 먹는 단백질 설계도가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숨 쉬며 살아가는 방식과 똑같다는 얘기입니다.

한편 빈 대학교의 미생물학자 크리스타 슐레퍼⁠(Christa Schleper) 박사 연구팀은 슬로베니아 해안의 산소 없는 진흙에서 아스가르드를 따로 떼어내 키우는 데 8년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살아 있는 세포를 슬라이드에 올려 영상을 찍는 데 성공했죠. 박사후연구원 필립 라들러는 영상을 빠르게 돌리자 미생물이 골격을 이용해 촉수처럼 가지를 뻗고는 슬슬 기어다니더라고 회상했습니다. 다른 원핵생물은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직 진핵세포만 이렇게 기어다니죠.

실험실에서 배양한 아스가르드 고세균 MK-D1의 전자현미경 사진

이마치 박사 연구팀이 12년에 걸쳐 배양에 성공한 아스가르드 고세균 Prometheoarchaeum syntrophicum (MK-D1)⁠의 SEM 사진. 긴 막 돌기가 세포 밖으로 뻗어 나온 모습이 보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Imachi et al. (2020)

그러니까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산소가 거의 없던 초기 지구 어딘가, 진흙 바닥에 아스가르드 같은 고세균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액틴 비슷한 단백질로 세포 골격을 만들고, 그걸 분해했다 다시 쌓으며 천천히 기어다녔죠. 약 25억 년 전, 광합성을 하는 박테리아가 등장해 산소를 대기에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산소는 많은 미생물에게 독이었지만, 연안에 살던 일부 아스가르드는 이걸 견디고, 나아가 산소를 이용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한 아스가르드가 산소로 에너지를 만드는 박테리아와 만났습니다. 잡아먹은 건지, 더부살이를 시작한 건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그 박테리아는 세포 안에 자리를 잡고 미토콘드리아가 됐죠. 에너지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세포는 커질 수 있었고, 더 복잡해질 수 있었고, 결국 다른 단세포 생물을 잡아먹는 포식자로 변신했습니다. 동물, 식물, 곰팡이로 이어지는 진핵생물의 계보가 이 한 번의 만남에서 시작됐다는 얘기입니다.

참 신기하지 않나요. 더 흥미로운 건, 애플러 박사 말처럼 이 사건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재연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캐나다 댈하우지 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 존 아치볼드⁠(John Archibald) 박사는 새 연구 덕분에 진핵세포 기원 논쟁이 비로소 진짜 생물 표본 위에서 논의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죠. 우리 발 밑 진흙 어딘가에서, 또 한 번의 거대한 생명사 사건이 조용히 진행 중일지도 모릅니다.

참고문헌

1. Spang, A., Saw, J. H., Jørgensen, S. L., et al. (2015). "Complex archaea that bridge the gap between prokaryotes and eukaryotes." Nature, 521, 173-179. DOI: 10.1038/nature14447

2. Imachi, H., Nobu, M. K., Nakahara, N., et al. (2020). "Isolation of an archaeon at the prokaryote-eukaryote interface." Nature, 577, 519-525. DOI: 10.1038/s41586-019-1916-6

3. Liu, Y., Makarova, K. S., Huang, W. C., et al. (2021). "Expanded diversity of Asgard archaea and their relationships with eukaryotes." Nature, 593, 553-557. DOI: 10.1038/s41586-021-03494-3


댓글 0

댓글을 불러오는 중...

20억 년 전, 미생물이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 – Fin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