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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활엽수 줄기에 붙어 자라는 부싯깃 버섯(Fomes fomentarius). 속살을 말려 두드리면 솜처럼 불을 잘 받는 ‘아마두’가 된다. 이 버섯 하나가 인류의 불 씨 기술 1만 1천 년을 관통하는 주인공이다. ⓒ George Chernilevsky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고고학자들이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왜 석기시대 유적에서 버섯이 발견되지 않을까. 인류는 숲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살았고, 숲이 있는 곳엔 버섯이 있습니다. 그런데 뼈, 돌, 도기 파편은 수만 년이 지난 지금도 고스란히 땅속에 남아 있는 반면, 버섯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버섯은 거의 대부분 물로 이뤄져 있어서, 땅에 떨어지면 며칠 안에 쪼그라들어 사라지거든요. 영국 노팅엄 대학의 해나 오리건(Hannah O'Regan) 연구팀이 2015년에 발표한 표현을 빌리면, 이건 '보이지 않는 왕국(hidden kingdom)'의 문제였습니다. 분명 있었던 건 확실한데, 보이지가 않으니 연구할 방법이 없었던 셈이죠.
그런데 지난 10년 사이,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치석 속 DNA 분석, 탄소·질소 동위원소, 현미경을 이용한 초정밀 잔류물 검출. 이 세 가지 도구가 결합하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숨은 버섯 기록'이 줄줄이 드러나기 시작한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습니다. 버섯은 인류가 빙하기를 넘기고 농경 사회로 들어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지금껏 과소평가된 엔진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영국 요크셔의 스타 카(Star Carr) 유적입니다. 1950년 이 중석기 시대 유적지의 토탄층에서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건 놀라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1천 년 전에 정교하게 손질된 버섯 82개가 물에 잠긴 진흙 속에서 거의 완벽한 형태로 보존돼 있었거든요. 토탄층은 산소가 거의 없어서 미생물이 번식하지 못합니다. 이런 환경이 아니라면 남아 있을 수 없는 유물이었던 겁니다.
이 중 76개는 Fomes fomentarius, 흔히 부싯깃 버섯이라고 부르는 종으로 밝혀졌습니다. 54개에는 칼로 얇게 저민 흔적이 남아 있었고, 41개는 타 있던 흔적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식량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이 버섯은 '아마두(amadou)'라는 부드러운 펠트 모양 소재로 가공되는데, 한 번 불이 붙으면 은은하게 오래 타는 성질이 있습니다. 바람 부는 들판에서도 쉽게 꺼지지 않으니까 '불씨 운반 수단'으로 최적인 거죠.
2008~2015년 스타 카 재발굴에 참여한 요크 대학의 해리 롭슨(Harry Robson) 연구팀은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탰습니다. 같은 유적에서 얇게 말려 있던 자작나무 껍질 두루마리도 함께 발견됐는데, 이 둘을 세트로 쓰면 휴대용 불씨 보관통이 됩니다. 부싯깃 버섯이 불을 품고, 자작나무 껍질이 바람막이 겸 착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구조였죠. 당시 영국에 살던 수렵 채집인들은 이 '불 키트'를 허리에 매달고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즉석에서 모닥불을 피웠다는 얘기입니다.
유목 집단에게 불을 지고 다니는 능력은 생존의 판을 뒤집는 도구입니다. 새 야영지에 도착해도 첫날 밤부터 고기를 익혀 먹고, 추위를 넘기고, 포식자를 쫓을 수 있거든요. 비슷한 부싯깃 버섯 유물은 스페인 라 드라가(La Draga, 약 7,300년 전), 덴마크 뮐러루프, 독일 호헨 비혤른, 러시아 비스 I 유적에서도 계속 발견됐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수천 년간 같은 기술이 쓰였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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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요크셔 스타 카 유적에서 나온 중석기시대 사슴뿔 헤드드레스. 영국 케임브리지 고고인류학 박물관 소장. 약 1만 1천 년 전 수렵·채집인이 남긴 생활 흔적이 토탄층 덕분에 예외적으로 잘 보존된 이 유적에서 부싯깃 버섯 82개도 함께 발견됐다. ⓒ Ethan Doyle White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부싯깃 버섯이 실제로 불을 붙이는 데 쓰였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의외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미라에게서 나왔습니다.
이탈리아 알프스의 얼음 속에서 발견된 외찌(Ötzi the Iceman)는 약 5,300년 전, 그러니까 사람이 처음 구리를 쓰기 시작한 동기시대 인물입니다. 1991년 발견 당시 그는 가죽 주머니를 차고 있었는데, 그 안에 F. fomentarius로 가공한 아마두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옆엔 황철석(pyrite) 조각도 함께 있었죠. 황철석은 부싯돌과 부딪히면 불꽃이 튀어 오르는 광물입니다. '불씨 + 발화 장치'의 완전한 세트였던 겁니다.
결정적 한 장면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아마두 섬유 사이에는 황철석 부스러기가 실제로 박혀 있었습니다. 그냥 보관해둔 게 아니라, 불꽃이 튀어 아마두 속으로 파고들 때 남은 흔적이었죠. 외찌는 최근 며칠 사이에도 이 키트로 불을 피웠다는 뜻입니다. 1만 1천 년 전 스타 카의 수렵인이 쓰던 기술이 5천 년 뒤 동기시대 사람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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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발견된 약 5,300년 전 미라 외찌(Ötzi)의 복원. 그가 차고 있던 가죽 주머니에서 부싯깃 버섯(Fomes fomentarius)으로 가공한 ‘아마두’와 황철석 조각이 함께 나왔다 — 스타 카 사람들이 쓰던 불씨 기술이 5천 년을 건너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 Mannivu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버섯이 '불'의 역사만 다시 쓴 건 아닙니다. '식단'의 역사도 다시 썼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고고학자들은 고대인의 뼈에서 탄소·질소 동위원소를 측정해 옛날 사람이 무얼 먹었는지를 추정해왔습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식물, 육류, 해산물마다 동위원소 비율이 다르게 남거든요. 이 방식으로 네안데르탈인의 뼈를 분석해보면 질소 값이 아주 높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네안데르탈인은 '북극곰만큼이나 고기에 의존한 초육식성'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201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로라 와이리치(Laura Weyrich) 연구팀이 네안데르탈인의 치석을 직접 DNA 분석해봤더니,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벨기에 유적의 네안데르탈인 치석에서는 잿빛 가루눈물버섯의 DNA가, 북부 스페인 유적에서는 갈라진 부채버섯의 DNA가 검출됐습니다. 고기만 먹던 사람들이 아니었던 거죠.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습니다. 약 4만 8천 년 전 스페인 동굴에 살던 한 네안데르탈인의 치석에서는 페니실린 곰팡이에 감염된 풀이 검출됐습니다. 그리고 그 개인의 턱에는 심한 농양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페니실린' 곰팡이가 치통을 완화시켜준다는 걸 알고 찾아 먹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확정적인 건 아니지만, 네안데르탈인이 단순한 생고기 사냥꾼이 아니라 주변 환경을 훨씬 더 정교하게 관찰하던 존재였다는 그림이 그려진 겁니다.
그러면 왜 기존 동위원소 분석이 네안데르탈인을 '초육식성'으로 오해했던 걸까요. 2015년 이후 연구들은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습니다. 버섯, 특히 Boletus 속(porcini 계열) 버섯은 질소 동위원소 값이 고기와 겹칠 정도로 높습니다. 결국 과거 연구자들이 '이건 고기 신호'라고 해석했던 것 중 일부가 사실은 버섯 신호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죠. 실제로 약 1만 5천 년 전 스페인 구석기인의 치석에서 Boletus 포자가 검출된 게 결정타였죠.
버섯이 동위원소 해석의 사각지대에 숨어 있었다는 결론은, 인류 조상의 식단 전체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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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위턱뼈에 두껍게 굳어 있는 치석(dental calculus). 살아 있는 동안 먹은 음식의 DNA·단백질·전분 알갱이가 이 광물화된 침전물 속에 그대로 갇혀 수만 년을 버틴다. 네안데르탈인의 치석에서 잿빛가루눈물버섯 DNA가 나온 것도 이 창 덕분이다. ⓒ Dr. Kelly Blevins / Wikimedia Commons (CC0)
마지막 이야기는 버섯과 가까운 친척인 '곰팡이'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 인류사가 또 한 번 뒤집힙니다.
2024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리 리우(Li Liu) 연구팀은 중국에서 발굴된 약 1만 년 전 도기 조각에서 놀라운 걸 찾아냈습니다. 도기 안쪽 미세한 틈에 붙어 있던 유기물 속에서 Monascus라는 붉은 곰팡이 조각과 효소 공격을 받은 녹말 알갱이가 함께 검출된 겁니다. Monascus는 쌀에 붙으면 녹말을 당으로 분해하는 효소를 내놓는데, 그 당이 공기 중의 효모를 만나면 알코올이 됩니다. 우리가 아는 '쌀술' 발효의 가장 이른 증거였던 거죠.
이게 왜 놀라운 발견일까요. 이전까지 연구자들은 Monascus를 이용한 '홍국(red qu)' 전통이 약 2,000년 전에 등장했다고 봤습니다. 문헌 기록이 거기까지밖에 올라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1만 년 전 도기에서 증거가 나오면서, 이 발효 기술이 기록보다 8천 년 이상 앞선 시점에 이미 쓰이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 겁니다.
시점이 결정적입니다. 1만 년 전은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본격적으로 따뜻해지기 시작한 홀로세 초입이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야생 벼 채집이 재배로 넘어가고, 사람들이 한곳에 정착해 '마을'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마을이 처음 생긴 것과 술이 처음 빚어진 것이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는 뜻이죠.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술은 의례, 장례, 집단 회식, 정치 협상의 매개체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사회적 접착제' 기능을 해왔거든요. 실제로 리우 연구팀이 분석한 도기 중 일부는 무덤 부장품으로 출토된 장례 용기였습니다. 정착 공동체가 공동의 의례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Monascus로 빚은 쌀술이 핵심적인 매개가 됐다는 해석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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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ascus 붉은 곰팡이를 쌀에 접종해 만든 홍국·홍주(hong zhao) 같은 전통 쌀술. 이 발효 기술의 기록은 2천 년 전까지였지만, 2024년 중국 신석기 유적 도기에서 검출된 Monascus 조각과 효소 공격을 받은 녹말 알갱이가 그 시점을 약 1만 년 전으로 끌어올렸다. ⓒ Gluo88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고고학이 지난 반세기 동안 거석 기념물과 창끝, 토기 장식에 몰두해온 건 그것들이 '보이고 만져지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버섯은 반대편 극단에 있었죠. 물컹하고 이틀이면 사라지는 존재. 그래서 인류사의 큰 그림에서 오랫동안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법론이 바뀌자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고대 치석에서 DNA를 뽑아내는 기술, 토기 표면 현미경 잔류물 분석, 버섯 고유의 동위원소 서명을 따로 측정하는 실험. 이 세 가지가 서로를 보완하면서, 과거에는 그냥 '고기+식물' 신호로 퉁 쳐지던 흔적들에 세 번째 선이 그어지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 세 번째 선이 그어지자마자 그림이 바뀌었습니다. 빙하기 끝자락에 살아남기 위해 쥐고 다녔던 휴대용 불씨, 네안데르탈인이 치통에 스스로 처방한 항생 곰팡이, 농경 사회의 시작을 장식했던 1만 년 전의 쌀술. 버섯은 없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볼 눈을 갖지 못했을 뿐이었죠.
앞으로 이 '숨은 왕국'이 얼마나 더 넓어질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인류가 지금의 모습으로 걸어오는 길 중간중간에,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생물과 훨씬 더 깊이 얽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 Weyrich, L. S., Duchene, S., Soubrier, J., et al., "Neanderthal behaviour, diet, and disease inferred from ancient DNA in dental calculus", Nature, 2017. doi:10.1038/nature21674
2. Power, R. C., Salazar-García, D. C., Rubini, M., et al., "Dental calculus indicates widespread plant use within the stable Neanderthal dietary niche", Journal of Human Evolution, 2018. doi:10.1016/j.jhevol.2018.04.009
3. Power, R. C., Salazar-García, D. C., Straus, L. G., et al., "Microremains from El Mirón Cave human dental calculus suggest a mixed plant-animal subsistence economy during the Magdalenian in northern Iberia",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2015. doi:10.1016/j.jas.2015.04.015
4. O'Regan, H. J., Lamb, A. L., & Wilkinson, D. M., "The missing mushrooms: searching for fungi in ancient human dietary analysis",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2016. doi:10.1016/j.jas.2016.09.009
5. Milner, N., Conneller, C., & Taylor, B., "Star Carr: A Persistent Place in a Changing World", White Rose University Press, 2018.
6. Liu, L., Wang, J., Liu, H., & Ren, X., "Identifying Monascus-fermented rice wine residues on 10,000-year-old pottery from Shangshan, China", PNAS Nexus, 2024. doi:10.1093/pnasnexus/pgae078
7. Taub, B., "How our ancestors used mushrooms to change the course of human history", New Scientist, 10 March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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