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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AA 탐사 영상에 담긴 심해의 황금 구체. 출처: NOAA Ocean Exploration (Official NOAA media) / NOAA Ocean Exploration, Seascape Alaska 5
알래스카 코디액섬 근처 바다, 수심 약 3,250m 아래였습니다. NOAA의 원격조종 잠수정 딥 디스커버러가 어두운 바닥을 훑고 있었는데요. 화면 한가운데 바위에 붙은 금빛 반구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매끈하고 둥글고, 한쪽에는 찢어진 듯한 구멍도 있었죠.
처음 본 사람이라면 알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혹은 스펀지, 죽은 생물의 껍질, 심지어 영화 속 외계 생명체의 흔적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당시 연구자들도 바로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이 반짝이는 덩어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심해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우리가 바다를 많이 안다고 느끼는 건 주로 얕은 바다 이야기입니다. 산호초, 해조류, 물고기 떼처럼 익숙한 장면들이 있죠. 하지만 빛이 거의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서는 생명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깊은 바다에서는 생명이 얼마나 낯선 얼굴로 나타날까요?
수심 3,250m에서는 햇빛이 사실상 사라집니다. 압력은 지상보다 수백 배 높고, 온도는 낮습니다. 먹이도 풍부하지 않죠. 이런 환경에서는 몸을 크게 키우는 방법, 바닥에 붙는 방법, 천천히 살아가는 방법이 모두 달라집니다. 그래서 심해 생물은 얕은 바다 생물의 확대판이 아니라, 다른 규칙으로 만들어진 생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발견이 나온 2023년 탐사는 알래스카 해역의 심해 지형과 생물을 조사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잠수정은 사람 대신 내려가고, 연구자들은 배 위에서 화면을 보며 표본을 고릅니다. 화면 속 물체 하나를 집어 올리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심해 바닥에서는 로봇 팔이 조금만 거칠게 움직여도 표본이 부서지거나 퇴적물이 일어나 시야가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황금 구체는 처음부터 귀한 단서였습니다. 색깔도 이상했고, 모양도 이상했고, 바위에 붙어 있다는 점도 이상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알이라면 누구의 알인지, 스펀지라면 어떤 구조를 가진 스펀지인지, 생물의 일부라면 왜 그 부분만 남았는지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단순히 신기한 물건이 아니라, 여러 가설을 동시에 불러내는 표본이었던 거죠.
NOAA 연구팀은 이 물체를 조심스럽게 회수했습니다. 그리고 샘플은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과 NOAA Fisheries의 분류학 연구자들에게 넘어갔죠. 여기서부터는 추리극에 가깝습니다. 겉모습만으로는 답이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연구진은 현미경으로 조직을 보고, DNA를 읽고, 이미 알려진 심해 생물의 유전 정보와 하나씩 비교했습니다.
첫 단서는 쏘는 세포였습니다. 자포동물은 먹이를 붙잡거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작은 캡슐처럼 생긴 세포를 씁니다. 말미잘, 해파리, 산호가 여기에 속하죠. 특히 스피로시스트(spirocyst)라는 세포는 말미잘과 가까운 무리를 가리키는 힌트가 됩니다. 금빛 덩어리는 식물도, 단순한 알도 아니라 자포동물 쪽 흔적을 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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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던 황금 구체의 정체는 조직 구조, 자포세포, DNA 단서가 맞물리며 말미잘 계열 생물로 좁혀졌다. 그림ⓒ The Finch
하지만 이 단서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심해에서 건진 샘플에는 여러 생물의 DNA가 섞일 수 있습니다. 표면에 미생물이 달라붙을 수도 있고, 바닷속에서 오래 노출되며 다른 유전 물질이 끼어들 수도 있죠. 그러니 표면 DNA 몇 조각만 보고 결론을 내리면 엉뚱한 이름표를 붙일 위험이 있습니다.
연구진은 더 깊게 들어갔습니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체와 더 넓은 유전 정보를 비교했고, 그 결과 이 물체가 거대 심해 말미잘 렐리칸투스 다프네아(Relicanthus daphneae)와 매우 가까운 신호를 보인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생물은 원래 볼로세로이데스 다프네아로 기술됐다가, 이후 분자계통 연구를 거치며 독특한 위치가 확인된 심해 자포동물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반전이 나옵니다. 이 황금 구체는 말미잘 전체가 아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말미잘이 바위에 몸을 고정하던 기저부의 남은 흔적으로 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본 것은 생명체의 얼굴도, 알도 아니라 바닥에 붙어 있던 몸의 흔적에 가까웠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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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잘의 윗부분이 사라져도 바위에 붙은 기저부는 둥근 구조로 남을 수 있다. 황금 구체는 그런 생물학적 잔해로 해석된다. 그림ⓒ The Finch
그럼 말미잘의 윗부분은 어디로 갔을까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죽어서 떨어져 나갔을 수도 있고, 포식이나 물리적 충격으로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생활사 과정의 한 장면일 가능성도 남아 있죠. 바로 이 지점이 심해 생물학을 어렵게 만듭니다. 단 한 번의 관찰은 답이 아니라, 다음 질문을 여는 문이 됩니다.
사실 렐리칸투스 다프네아 자체도 흥미로운 생물입니다. 2014년 《플로스 원》에 발표된 계통 연구는 이 생물이 전통적인 말미잘 분류 안에 깔끔하게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겉보기에는 말미잘처럼 보이지만, 유전 정보는 꽤 독특한 위치를 가리켰던 거죠. 과학에서 이름표가 바뀐다는 건 단순한 행정이 아닙니다. 생명의 친척 관계를 다시 그리는 일입니다.
이번 황금 구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체를 알기 위해 연구자들은 겉모습보다 작은 구조를 봤고, 작은 구조보다 유전 정보를 봤습니다. 그리고 그 유전 정보를 다시 기존 분류 체계와 맞춰 봤죠. 낯선 물체 하나가 심해 생물의 생활사, 분류, 진화를 한꺼번에 건드린 셈입니다.
이런 과정은 느립니다. 사람들은 화면에 잡힌 순간 정답이 알고 싶어 하지만, 실제 연구는 샘플 준비, 염기서열 분석, 비교 자료 확인, 동료 검토를 거쳐야 합니다. 황금 구체가 발견된 뒤 정체가 공개되기까지 시간이 걸릭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심해의 미스터리는 한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답은 실험실의 긴 반복 속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외계 알이 아니었다는 반전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진짜 핵심은 과학이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이상해 보인다고 상상으로 빈칸을 채우지 않습니다. 모양, 세포, DNA, 계통도를 차례로 대조하며 해상도를 올립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심해 생물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일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어떤 생물이 어디에 사는지 알아야 해저 자원 개발, 심해 채굴, 해양 보호구역 논의에서 무엇을 지켜야 할지 말할 수 있습니다. 이름 모를 황금 덩어리 하나가 생태계의 빈칸을 채우는 퍼즐 조각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작은 표본 하나가 넓은 바다의 관리 방식까지 바꿀 수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심해 탐사는 발견과 보전이 곧바로 이어집니다.
결국 황금 구체는 외계 생명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덜 놀라운 것도 아닙니다. 사람 눈에는 낯선 물체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지구 생명이 심해라는 극단적인 세계에서 남긴 흔적이었으니까요. 우리가 모르는 것은 우주에만 있지 않습니다. 지구의 가장 어두운 바닥에도 아직 충분히 많습니다.
1. Rodríguez, E., Barbeitos, M. S., Brugler, M. R., Crowley, L. M., Grajales, A., Gusmão, L., Häussermann, V., Reft, A., & Daly, M. (2014). "Hidden among Sea Anemones: The First Comprehensive Phylogenetic Reconstruction of the Order Actiniaria." PLOS ONE, 9(5), e96998. DOI: 10.1371/journal.pone.0096998
2. Daly, M. (2006). "Boloceroides daphneae, a new species of giant sea anemone from the deep Pacific." Journal of Natural History, 40, 1241-1247. DOI: 10.1080/00222930601121775
3. Gusmão, L. C., Grajales, A., & Rodríguez, E. (2019). "Mitogenomics suggests a sister relationship of Relicanthus daphneae with Actiniaria." Scientific Reports, 9, 18182. DOI: 10.1038/s41598-019-546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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