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4천 년 전, 사람은 왜 강아지를 자기 무덤 옆에 묻었을까?

1만 4천 년 전, 사람은 왜 강아지를 자기 무덤 옆에 묻었을까?

고대 이집트의 게이어-앤더슨 청동 고양이상. 동물을 가족처럼 여겼던 흔적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 Oxyman

독일 본⁠(Bonn) 인근 오버카셀⁠(Oberkassel)⁠이라는 마을의 한 채석장. 1914년, 인부들이 돌을 캐내다 사람의 뼈가 섞인 자갈층을 발견합니다. 그 자리에서 나온 건 30~40대 남성과 20대 여성, 그리고 약 7개월 된 강아지 한 마리의 뼈였죠. 세 유해는 적철석 가루를 뒤집어쓴 채 나란히 묻혀 있었고, 함께 묻힌 부장품 중에는 사슴뼈로 만든 비녀와 곰의 음경뼈를 깎아 만든 작은 조각상까지 있었습니다.

이 무덤의 나이는 약 1만 4천 년. 마지막 빙하기가 막 풀리던 시점이었죠. 그러니까 인류는 농경을 시작하기 한참 전, 매머드와 순록을 쫓아다니던 수렵채집민 시절부터 이미 강아지를 자기 가족 곁에 묻어줬다는 얘기입니다. 도대체 그 시절 사람들은 왜 개를 사람 무덤에 같이 묻어준 걸까요?

사실 고대인들이 동물을 묻어준 흔적은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캐나다 앨버타 대학교의 고고학자 로버트 로지⁠(Robert Losey) 교수에 따르면, 동물 매장 풍습은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확인됩니다. 북미에만 3,000년 이상 된 개 무덤이 200곳 넘게 발견됐고, 일리노이주 코스터 농장에서 나온 개 세 마리는 무려 8,500년 전 것으로 추정되죠.

그런데 고고학자가 "이건 의도적으로 묻어준 거다"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따로 있는데요. 우선 구덩이 흙이 주변 지층보다 푸석푸석하게 섞여 있어야 하고, 동물 뼈가 흩어지지 않고 해부학적 순서대로 가지런히 놓여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죽은 짐승을 던져 버린 게 아니라, 누군가가 정성껏 자세를 잡아 묻어줬다는 증거인 거죠.

본-오버카셀에서 발견된 1만 4천 년 전 강아지의 골격

본-오버카셀 유적에서 발견된 약 7개월 된 개의 골격. 두 명의 사람과 함께 매장된 가장 오래된 "가족 견"의 흔적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Don Hitchcock

병든 강아지를 8주나 돌봐준 사람들

본-오버카셀의 강아지는 한참 동안 그저 "가장 오래된 매장견"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8년, 벨기에 겐트 대학의 수의학 고고학자 뤽 얀센스⁠(Luc Janssens) 박사 연구팀이 이 골격을 다시 들여다봤죠. 결과는 《저널 오브 아키올로지컬 사이언스⁠(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에 실렸는데요.

이 강아지는 생후 19주쯤 디스템퍼⁠(개홍역)⁠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질환에 걸렸던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강아지 디스템퍼의 치사율은 75%⁠에 달하고, 별다른 간호 없이는 길어야 3주를 못 버티는 병이죠. 그런데 이 1만 4천 년 전의 강아지는 발병 후에도 약 8주를 더 살아남았습니다. 누군가가 곁에서 물을 떠먹이고, 체온을 맞춰주고, 토사물을 닦아줬다는 뜻이죠.

얀센스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이 정도로 아픈 새끼 강아지는 사냥에도 못 따라가고, 짖는 경비견 역할도 못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이 개는 사람에게 "쓸모"가 있어서 살려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저 정이 들어서, 측은해서, 가족이라서 돌봤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과 개의 정서적 유대가 빙하기 끝자락에 이미 시작됐다는 가장 묵직한 증거인 셈이죠.

바이칼 호숫가의 "개 공동묘지"

고대인이 강아지를 "가족"으로 대접한 또 다른 증거지가 시베리아 동부의 바이칼 호수 일대입니다. 약 7,000~8,000년 전, 이 지역의 수렵채집민들은 본격적인 공동묘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일부 개도 사람과 같은 묘지에 같은 방식으로 묻혔죠. 앞서 등장한 로지 교수가 직접 발굴한 사례들입니다.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의 광활한 풍경

시베리아 바이칼호 일대. 7,000~8,000년 전 이곳의 수렵채집민들은 사람 묘지에 일부 개를 같은 방식으로 묻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 2.0) / Pavel Marianov

흥미로운 건 매장 위치입니다. 사람들은 죽은 개를 집 옆 아무 데나 묻어버린 게 아니었어요. 일부러 시신을 메고 공동묘지까지 옮겨가서 묻어줬죠. 심지어 이미 묻혀 있던 사람의 뼈를 옆으로 살짝 밀어내고 그 자리에 개를 집어넣은 사례도 있습니다. 사람과 개를 동등한 "묘지 사용자"로 본 거예요.

함께 묻힌 부장품도 비슷합니다. 어떤 개의 목 부근에서는 사슴 이빨로 만든 목걸이가 발견됐는데, 같은 시기 같은 묘지의 사람 무덤에서도 동일한 모양의 목걸이가 나왔습니다. 로지 교수는 2013년 《PLOS ONE》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개들은 영혼을 가진 존재, 사후 세계가 있는 존재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죠.

한 가지 재미있는 패턴도 있는데요. 같은 논문에 따르면 바이칼 일대에서 개를 매장한 집단은 주로 강·호수 물고기를 많이 먹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대로 이후 등장한 유목 목축민 집단의 유적에서는 개 매장이 거의 사라지고, 의례용으로 "희생"된 흔적만 남죠. 사람의 생업이 바뀌면 개의 사회적 위상도 같이 출렁였다는 얘기입니다.

홍해 항구의 고양이 묘지

이쯤 되면 "개만 그런 거 아냐?" 싶은데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집트 남부, 홍해에 면한 작은 로마 시대 항구도시 베레니케⁠(Berenike)⁠에서는 무려 "고양이 공동묘지"가 발견됐죠. 폴란드 과학아카데미의 고고동물학자 마르타 오시핀스카⁠(Marta Osypińska) 박사 연구팀의 작품인데요.

이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는 서기 75년에서 150년 사이, 그러니까 로마 제국 초기입니다. 마을 외곽의 별도 구역에서 거의 100마리에 달하는 동물 골격이 출토됐는데, 그중 무려 86마리가 집고양이였고, 개 9마리, 원숭이 4마리도 함께 묻혀 있었죠. 일부 고양이는 철제 목걸이를 차고 있었고, 어떤 무덤은 어미와 새끼 고양이가 한 구덩이에 합장돼 있었습니다.

오시핀스카 박사가 2016년 《안티쿼티⁠(Antiquity)》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걸 "반려동물 묘지"라고 결론 내린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동물들이 미라화되지 않았어요. 같은 시기 이집트 본토에서는 신께 바치기 위해 동물을 미라로 만들어 묻는 게 흔했는데, 베레니케의 동물들은 사람 무덤에서 떨어진 별도 구역에 "있는 그대로" 묻혔죠. 종교 의례가 아니었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둘째, 도살 흔적이 없습니다. 뼈에는 칼자국이나 외상 흔적이 거의 없고, 상당수가 자연사로 보였죠. 셋째, 무엇보다도 종 구성이 다양했어요. 신께 바치는 의례용 동물이라면 한 종으로 통일되는 게 보통인데, 베레니케에는 고양이·개·원숭이가 한 묘지에 섞여 있었습니다. 결국 "각자의 집에서 키우다 죽은 반려동물을 같은 곳에 묻어준 동네 공동 묘지"라는 결론에 도달한 거죠.

그런데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아쉬켈론 국립공원의 고대 유적

이스라엘 지중해 연안의 고대 도시 아쉬켈론. 이곳에서는 약 2,500년 전부터 한 세기 동안 최소 500마리, 최대 1,500마리의 개가 묻혔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 2.5) / Shlomo Roded

고대 개 매장지의 "끝판왕"은 이스라엘 지중해 연안의 도시 아쉬켈론⁠(Ashkelon)⁠입니다. 페르시아 제국과 초기 그리스 시대에 걸쳐, 그러니까 약 2,500년 전부터 한 세기 동안 이 도시의 거리와 주거지 바닥 아래에 최소 500마리, 많게는 1,500마리에 이르는 개가 묻혔죠. 전 세계 어떤 고대 유적과도 비교가 안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발굴을 이끈 고고학자 폴라 왑니쉬-헤세⁠(Paula Wapnish-Hesse)⁠는 30년 넘게 이 뼈들을 들여다봤는데요. 분석 결과 죽은 개들은 대부분 어린 강아지이거나 노견이었고, 살해 흔적도 없었습니다. 자연사로 죽은 떠돌이 개들을 누군가가 일일이 구덩이에 모로 눕히고 꼬리를 다리 사이에 끼워 묻어준 거죠. 그런데 부장품도, 묘비도, 어떤 "특별한 표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왑니쉬-헤세는 이걸 베레니케 식의 반려동물 묘지로 보지는 않습니다. 무덤이 별도 구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던 동네 곳곳에 흩어져 있거든요. 그렇다고 종교 의례라는 가설도 시원찮습니다. 그러기엔 너무 "평범하게" 묻혔어요.

왑니쉬-헤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30년 넘게 연구했지만, 우리는 아직 그들이 왜 이 개들을 묻었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떤 고대인의 마음은, 그들이 남긴 1,500구의 뼈로도 끝내 풀리지 않는 거죠.

1만 4천 년 전 빙하기 사냥꾼이 병든 강아지에게 떠먹여 준 물 한 모금, 시베리아 호숫가에서 사람 묘지를 옆으로 밀어내며 들여놓은 개의 시신, 홍해 항구도시에서 어미와 새끼 고양이를 같은 구덩이에 눕힌 누군가의 손길. 시대도 대륙도 다른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행동을 반복해 왔다는 사실이, 어쩌면 "동물을 가족으로 대하는 마음"이 우리 종의 꽤 오래된 본능에 가깝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요?

참고문헌

1. Janssens, L., et al. (2018). "A new look at an old dog: Bonn-Oberkassel reconsidered."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DOI: 10.1016/j.jas.2018.01.0042. Losey, R. J., et al. (2013). "Burying Dogs in Ancient Cis-Baikal, Siberia: Temporal Trends and Relationships with Human Diet and Subsistence Practices." PLOS ONE. DOI: 10.1371/journal.pone.00637403. Osypińska, M. (2016). "Pet cats at the Early Roman Red Sea port of Berenike, Egypt." Antiquity. DOI: 10.15184/aqy.2016.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