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똥이 안데스 왕국을 일으켰다, 친차의 '하얀 금' 비밀

새똥이 안데스 왕국을 일으켰다, 친차의 '하얀 금' 비밀

1865년 페루 친차 제도의 구아노 채취 현장. 흙처럼 보이는 이 더미가 19세기 페루를 통째로 먹여 살린 '하얀 금'이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Henry DeWitt Moulton

잉카 제국이 안데스를 호령하기 전, 페루 남서쪽 해안에는 인구 약 10만 명을 거느린 도시 문명이 수세기 동안 번성했습니다. 이름은 친차 왕국. 사막에 가까운 메마른 땅에서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먹였을까요. 답은 의외였습니다. 바닷새 똥이었죠.

이 결론을 내놓은 건 2026년 학술지 《PLOS ONE》에 실린 논문 한 편입니다. 호주 시드니 대학교⁠(University of Sydney)⁠의 고고학자 제이콥 봉어스⁠(Jacob Bongers) 박사가 이끈 다학제 연구팀이 친차 계곡의 무덤 안에 잠들어 있던 옥수수 알갱이를 분석한 결과였죠. 그 옥수수에는 친차 사람들이 어떻게 사막 위에 왕국을 세웠는지가 화학 신호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페루 해안 바위섬을 새하얗게 뒤덮은 페루부비⁠(Peruvian booby) 군집. 친차 제도와 발레스타스 제도 같은 바닷새 서식지는 매년 어마어마한 양의 구아노를 쌓아 올립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LBM1948

페루 해안은 농사짓기에 정말 가혹한 땅입니다. 안데스 산맥과 차가운 훔볼트 해류 때문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모래 섞인 흙은 영양분을 잡아 두지 못해 금세 빠져나가 버리죠. 한마디로 옥수수 같은 작물에겐 거의 사형 선고에 가까운 환경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봉어스 연구팀이 친차 계곡의 무덤 35곳에서 출토된 옥수수 알갱이의 탄소·질소·황 동위원소를 측정해 보니, 이상한 신호가 잡혔습니다. 옥수수에 들어 있는 질소 함량이 주변 토양만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을 만큼 높았던 거죠. 이런 화학적 지문이 찍히려면, 누군가가 질소가 폭발적으로 많은 비료를 일부러 뿌려 줘야만 합니다. 그 비료가 바로 바닷새 구아노였습니다.

구아노는 가마우지, 펠리컨, 부비 같은 바닷새의 배설물이 오랜 세월 쌓여 굳은 천연 비료인데요. 페루 앞바다는 차가운 한류 덕에 멸치가 떼로 몰려들고, 그 멸치를 먹은 바닷새 수백만 마리가 친차 제도 같은 작은 섬에 빽빽이 둥지를 틉니다. 비가 거의 안 내리는 해안 기후 덕에 똥은 씻겨 나가지 않고, 질소와 인이 그대로 보존된 채 수십 미터 두께로 굳어 가는 거죠.

페루 안데스 농촌에서 손으로 옥수수를 심는 모습. 친차 사람들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 해안에서도 구아노 시비 덕분에 옥수수 농사를 대규모로 짓는 데 성공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Caserío Vallicopampa

그렇다면 친차 사람들은 이 똥을 어떻게 가져왔을까요. 봉어스 박사는 식민지 시대 스페인 사람들이 남긴 기록까지 함께 들춰 봤습니다. 거기에는 페루 해안과 북부 칠레의 공동체들이 직접 뗏목을 띄워 가까운 섬으로 건너간 다음, 굳은 새똥을 자루에 담아 본토로 실어 날랐다는 서술이 또렷이 남아 있었죠. 가장 유력한 채취지는 친차 계곡 바로 앞바다에 떠 있는 친차 제도⁠(Chincha Islands)⁠였습니다.

구아노가 들어오자 사막 농지에서 옥수수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식량이 흘러넘치자 친차 왕국은 어부에서 상인, 장인, 항해자까지 분업이 가능한 거대한 사회로 부풀어 올랐죠. 봉어스 박사는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대 안데스 문화권에서, 비료는 곧 권력이었다."

이 권력은 단순히 자원을 손에 쥐었다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연구진은 친차의 직물과 도자기, 의례용 도구에서 바닷새와 물고기, 옥수수 도상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확인했는데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의례용 굴착봉⁠(Met 1979.206.1025) 한 점에는 바닷새와 옥수수, 추상화된 물고기와 계단식 단⁠(段) 무늬가 한꺼번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친차 사람들은 바다와 새, 땅의 작물이 한 줄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연결 고리를 신성하게 모시기까지 했던 거예요.

오늘날의 친차 제도. 작은 바위섬들에 두텁게 쌓인 구아노가 멀리서 보면 흰 모자처럼 보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 Manuel González Olaechea

공동 저자인 텍사스 A&M 대학교⁠(Texas A&M University)⁠의 조 오스본⁠(Jo Osborn) 박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간 해석을 내놓습니다. 친차의 진짜 힘은 구아노라는 자원 자체가 아니라, 바다 생태계와 육지 농업을 하나로 엮어 낸 생태학적 지식이었다는 거죠. 한류와 멸치, 바닷새와 똥, 그리고 옥수수 한 알까지 이어지는 순환을 머리로 파악하고, 그것을 농사 달력으로 옮길 수 있어야 비로소 왕국이 굴러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건 19세기 들어 같은 구아노가 다시 한번 페루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는 점이에요. 19세기 중반 유럽 농업이 화학비료에 눈을 뜨면서 친차 제도의 구아노는 그야말로 하얀 금으로 둔갑했고, 페루 경제 전체가 새똥 수출로 굴러갈 정도가 됩니다. 결국 이 자원을 둘러싸고 칠레, 페루, 볼리비아가 충돌한 1879년 태평양 전쟁⁠(구아노 전쟁)⁠까지 터졌죠. 친차 사람들이 천 년 전부터 알고 있던 자원의 가치를 세계가 뒤늦게 깨달은 셈이에요.

황금이나 은이 아니라 새똥으로 세워진 왕국이라니, 처음 들으면 농담 같지 않나요. 그런데 옥수수 알갱이에 박힌 질소 신호와 식민지 시대 기록, 그리고 도자기에 새겨진 바닷새 그림이 한 방향을 가리키는 순간, 농담은 단단한 과학이 됩니다. 친차 사람들이 남긴 진짜 유산은 어쩌면 거대한 피라미드도, 황금 가면도 아닌, 바닷새 한 마리의 똥 한 줌까지 신성하게 바라봤던 그 눈빛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문헌

1. Bongers, J. L., Milton, E. B. P., Osborn, J., Drucker, D. G., et al. (2026). "Seabirds shaped the expansion of pre-Inca society in Peru" PLOS ONE. DOI: 10.1371/journal.pone.0341263

2. Szpak, P., & Chiou, K. L. (2020). "A comparison of nitrogen isotope compositions of charred and desiccated botanical remains from northern Peru" Vegetation History and Archaeobotany. DOI: 10.1007/s00334-019-00761-2

3. Sandweiss, D. H., & Reid, D. A. (2016). "Negotiated subjugation: Maritime trade and the incorporation of Chincha into the Inca Empire" Journal of Island and Coastal Archaeology. DOI: 10.1080/15564894.2015.1105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