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년 전 안데스 신탁은, 정말로 소라 소리로 말했다

3,000년 전 안데스 신탁은, 정말로 소라 소리로 말했다

기원전 1200~500년에 지어진 페루 차빈 데 우안타르 유적의 외관.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Mimcollipal

페루 안데스 깊은 골짜기, 해발 3,180m 지점에 거대한 돌무더기 하나가 박혀 있습니다. 차빈 데 우안타르⁠(Chavín de Huántar) 유적이죠. 기원전 120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무려 700년에 걸쳐 지어진 이 돌 신전은 잉카보다도 훨씬 오래된 안데스 문명의 성지입니다.

이곳의 핵심에는 4.5m 높이의 화강암 비석 하나가 서 있습니다. 위로 치켜뜬 눈, 송곳니, 머리카락 대신 뱀이 달린 인간형 조각상. 이름은 란손⁠(Lanzón), 스페인어로 큰 창이라는 뜻입니다. 안데스 사람들은 이 석상을 통해 신탁을 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신탁이라뇨? 돌이 어떻게 말을 했단 말일까요?

차빈 데 우안타르 유적의 석조 건축물

페루 안데스 해발 3,180m 지점에 자리한 차빈 데 우안타르 유적. 기원전 1200~500년 사이에 지어진 의례 복합 건축군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Mimcollipal)

오랫동안 차빈의 신탁은 그저 신화로만 여겨져 왔는데요. 글자 기록도 없고, 의식 장면을 묘사한 문서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2008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음악음향연구센터⁠(CCRMA)⁠의 음향 인지 과학자인 미리엄 콜라⁠(Miriam A. Kolar) 박사가 이끄는 팀이 차빈에 들어가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콜라 박사 팀이 들고 간 건 발굴용 호미가 아니라, 정밀 마이크와 스피커, 그리고 음향 측정 장비였죠. 이른바 음향 고고학⁠(archaeoacoustics)⁠이라는 분야로, 옛 건축물이 소리를 어떻게 전달하고 변형시키는지를 측정해 사라진 의식의 모습을 복원하는 연구입니다. 그리고 이 팀의 측정 결과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20개의 소라고둥 나팔이 전부였다

사실 차빈에서 음향 연구의 단서가 처음 발견된 건 2001년입니다. 같은 스탠퍼드의 고고학자인 존 릭⁠(John W. Rick) 박사 팀은 원형 광장 옆 작은 회랑에서 화려하게 장식된 소라고둥 나팔 20개를 한꺼번에 발굴했습니다. 안데스 원주민어로 푸투투⁠(pututu)⁠라 불리는 악기인데요.

재미있는 건 이 소라들의 정체입니다. 학명은 슈트롬부스 갈레아투스⁠(Strombus galeatus). 안데스 산맥이 아니라 무려 수백km 떨어진 에콰도르 해안의 열대 바다에서만 사는 종이죠. 누군가 이 거대한 소라를 일부러 산맥 너머로 옮겨, 끝부분을 잘라내고 트럼본 모양의 입구멍을 깎아 악기로 만든 겁니다. 입과 손이 닿은 자리가 닳아 있는 걸 보면, 한두 사람이 잠깐 쓴 게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연주된 악기가 분명했죠.

차빈 유적의 돌 회랑 내부

차빈 유적 내부의 좁은 돌 회랑. 지름 21m의 원형 광장 지하로 미로처럼 이어진 통로가 수십 개에 달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Mimcollipal)

릭 박사는 이 푸투투들의 음을 처음엔 기타 튜너로 측정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자, 본격적인 음향 분석을 위해 작곡가 존 차우닝⁠(John Chowning) 박사에게 도움을 청했죠. 그의 동료였던 페리 쿡⁠(Perry R. Cook) 박사는 미니어처 마이크를 소라 안팎에 배치해 음의 진동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했습니다.

쿡 박사가 2010년 미국음향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차빈의 푸투투들은 272Hz에서 340Hz 사이의 음을 냈습니다. 피아노 건반으로 따지면 도샵에서 파에 이르는 음역이죠. 단순한 트럼펫이 아니라, 일정한 음 높이가 있는 진짜 악기였던 겁니다.

돌 속에 숨어 있던 증폭기

여기서 콜라 박사의 본격적인 측정이 시작됩니다. 그는 2009년부터 란손 석상이 모셔진 회랑⁠(Lanzón Gallery)⁠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는데요. 이 회랑은 십자가 모양의 작은 방으로, 좁고 긴 복도 끝에 숨어 있죠. 그런데 콜라 박사가 처음 들어갔을 때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란손 석상의 새겨진 입과, 회랑 벽에 뚫린 환기 덕트 하나가 일직선으로 정확히 맞춰져 있었던 거죠. 그 덕트는 회랑 안쪽에서 바깥쪽 원형 광장⁠(지름 21m)⁠으로 곧장 뚫려 있었고요. 콜라 박사는 이 덕트가 단순한 환기구일 리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치 신탁의 입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발화선처럼 보였거든요.

차빈 데 우안타르 유적 외관

차빈 데 우안타르 유적의 외부 석조 벽면. 지름 21m의 원형 광장과 다층 테라스, 지하 회랑이 정교하게 연결돼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 2.0 / Manuel González Olaechea)

그래서 그는 인간 가청 범위인 20Hz부터 20,000Hz까지의 시험음을 회랑 안에서 스피커로 재생하고, 덕트 안쪽과 바깥쪽에 마이크를 배치해 어떤 주파수가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측정했습니다. 같은 실험을 여러 날, 여러 위치에서 반복했죠. 결과는 그야말로 놀라웠습니다.

덕트는 푸투투의 음역대⁠(272~340Hz)⁠에 해당하는 주파수를 다른 소리보다 10~20데시벨이나 더 크게 증폭하고 있었습니다. 10데시벨은 인간 귀에 두 배쯤 크게 들리는 차이거든요. 게다가 덕트 바깥으로 나오는 지점에서는 푸투투 음역대가 아닌 다른 소리들은 오히려 억제됐죠. 즉, 이 돌 통로는 정확히 소라고둥 나팔의 음만 골라 광장으로 쏘아 보내도록 설계된 셈입니다.

신탁은 돌의 입이 아니라 소라의 목소리였다

이 발견이 왜 그렇게 중요한 걸까요? 우연이라기엔 단서들이 너무 많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첫째, 차빈 건축물 곳곳에는 이런 덕트가 무수히 뚫려 있는데, 하필이면 란손 회랑의 그 덕트만이 푸투투 음역대에 정확히 맞춰져 있죠. 둘째, 덕트 출구 바로 아래쪽 원형 광장 벽면에는 푸투투를 부는 인물 부조가 새겨져 있고, 광장 바닥엔 단면이 푸투투를 닮은 화석화된 바다 달팽이 두 마리가 박혀 있습니다.

셋째, 이 광장에서 몇 m 떨어진 곳에는 카라콜라스 회랑⁠(Caracolas Gallery)⁠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푸투투들이 마치 벽에 걸려 있던 것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던 자리입니다. 광장에서 의식이 열리고, 푸투투가 연주되고, 그 소리가 덕트를 타고 회랑 안 신탁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들리도록 모든 게 정교하게 짜여 있었던 거죠.

콜라 박사는 2017년 학술지 타임 앤드 마인드에 발표한 논문에서, 차빈의 의례 공간이 사람의 감각, 특히 청각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도록 설계됐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신권 정치의 지도자들이 환각 식물과 어둠, 좁은 공간, 그리고 정확하게 조율된 음향까지 동원해 신탁의 권위를 만들어냈다는 거죠. 돌이 말을 한 게 아니라, 돌의 모양이 말을 만들어냈던 겁니다.

어쩌면 3,000년 전 안데스 사람들이 들었던 신의 목소리는, 사실 누군가가 광장 한쪽에서 소라고둥을 부는 소리였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소리가 돌 통로를 지나며 다른 잡음은 사라지고, 신탁의 음역대만 살아남아 사람들의 귀에 닿았던 것뿐이죠. 신비란, 어쩌면 잘 설계된 물리학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문헌

1. Kolar, M. A. (2017). "Sensing sonically at Andean Formative Chavín de Huántar, Perú." Time and Mind. DOI: 10.1080/1751696X.2016.12722572. Cook, P. R., et al. (2010). "Acoustic analysis of the Chavín pututus (Strombus galeatus marine shell trumpets)." The Journal of the Acoustical Society of America. DOI: 10.1121/1.35083703. Abel, J. S., et al. (2008). "On the Acoustics of the Underground Galleries of Ancient Chavín de Huántar, Peru." The Journal of the Acoustical Society of America. DOI: 10.1121/1.29347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