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수비오 화산이 묻어 버린 폼페이의 극장 유적. 도시는 79년 그 모습 그대로 박제됐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 ElfQrin
기원전 130년쯤, 이탈리아 남부의 한 도시에 거대한 공중목욕탕이 들어섰습니다. 이른바 공화정 욕탕(Republican Baths)이라 불리는 곳이었죠. 시민들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잡담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2,000년이 지난 지금, 과학자들이 이 욕탕의 물 한 방울도 남지 않은 자리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몸을 담갔던 그 물에는 인간의 땀과 소변 성분이 잔뜩 섞여 있었다는 거죠. 한마디로 거대한 페트리 접시, 즉 세균 배양 접시 같은 물이었던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실을 2,000년이 지나서야 알아낼 수 있었을까요?
이야기는 79년 8월의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폼페이 시가지 전체가 화산재 아래에 그대로 묻혀 버렸죠. 비극이긴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사건은 도시의 모든 풍경을 통째로 박제해 버렸습니다. 거리, 건물, 벽화는 물론이고 도시의 수도 시설까지 거의 그대로 남았던 거예요.

폼페이 스타비안 욕탕의 프리지다리움(냉탕). 둥근 돔 천장 가운데에 채광창이 뚫려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 Schorle
독일 마인츠 대학교의 지질학자 체스 파스히어(Cees Passchier) 박사 연구팀은 바로 이 폼페이 유적에 주목했습니다. 그들은 욕탕과 우물, 그리고 도시 외곽에서 도시로 물을 끌어왔던 수도교(아쿠에둑투스)에 남아 있는 침전물을 채취했죠. 이 침전물은 그냥 지저분한 때가 아니라 탄산칼슘으로 굳어진 얇은 층들이 켜켜이 쌓인 것이었습니다.
물이 흐르거나 고일 때, 거기에 녹아 있던 탄산칼슘은 표면에 천천히 침전됩니다. 동굴 안에서 종유석이 자라는 것과 같은 원리죠. 그리고 이 얇은 층 하나하나에는 그 시기의 물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이 섞여 있었는지를 알려 주는 화학적 지문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연구팀은 침전물 속 탄소와 산소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가장 오래된 공화정 욕탕의 물에서는 탄소-13의 값이 우물에서 욕탕 쪽으로 갈수록 뚝 떨어지는 패턴이 확인됐죠. 이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유기물, 그러니까 땀과 소변 같은 배설물이 물에 섞여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신호였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이 물이 거의 교체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욕탕 물은 하루에 한 번 정도 갈렸던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당시 우물에서 양동이를 사슬에 매달아 도르래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으니, 수십 톤짜리 욕탕을 자주 비우고 채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거죠. 결국 시민들은 어제의 누군가가 흘린 땀이 떠다니는 물에 몸을 담갔을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폼페이 스타비안 욕탕의 발굴된 내부. 기원전 2세기에 처음 지어졌으며 폼페이에서 가장 오래된 공중목욕탕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 2.0) / Carole Raddato
그렇다면 폼페이 사람들은 영영 이런 더러운 물에 만족했을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기원전 80년쯤 폼페이가 로마의 식민지가 된 뒤, 도시의 풍경이 크게 바뀌기 시작했죠. 로마인들이 도시 북동쪽으로 약 35km 떨어진 산악 지대의 카르스트 샘에서 물을 끌어오는 수도교를 새로 놓은 겁니다.
수도교 이전, 폼페이의 우물물은 베수비오 화산 주변 지하수에 의존했기 때문에 광물이 잔뜩 녹아 있는 짠 물에 가까웠습니다. 마시기에도, 목욕하기에도 그리 좋은 물은 아니었죠. 반면 새로 끌어온 수도교 물은 비교적 깨끗했고, 무엇보다 양이 풍부했습니다. 욕탕 물을 자주 갈 수 있게 됐다는 뜻이죠.
하지만 모든 게 좋아진 건 아니었습니다. 연구팀은 침전물에서 또 하나의 문제를 발견했어요. 바로 납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물을 옮기는 파이프인 피스툴라(fistula)를 납으로 만들었는데, 이 납이 물에 녹아 사람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던 거죠. 분석 결과 공화정 욕탕뿐 아니라 로마식 인프라가 깔린 뒤에도 납 오염은 검출됐습니다.

폼페이 거리 아래에서 발굴된 고대 로마의 납 수도관(피스툴라). 도시 곳곳의 분수와 욕탕에 물을 공급했지만 동시에 납 오염원이 됐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 Paul VanDerWerf
재미있는 건 시간이 지나면서 납 오염이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점입니다. 물속에 녹아 있던 광물들이 파이프 안쪽 벽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일종의 보호막을 만들었기 때문이죠. 마치 주전자 안에 끼는 물때처럼요. 다만 파이프를 새로 갈아 끼울 때마다 이 보호막은 다시 처음부터 자라야 했고, 그때마다 납 오염이 잠깐씩 다시 고개를 들었을 거라고 연구팀은 추정합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폼페이의 부유한 시민들은 비교적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었어요. 큰 저택의 지붕에는 빗물을 모으는 시설이 있었고, 그 물을 따로 저수조(시스테르나)에 보관했기 때문이죠.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거리의 분수에서 납 파이프를 거친 물을 받아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0년 전 도시에서도 식수의 질에는 빈부 격차가 있었던 거죠.
참고로 폼페이의 납 문제는 이번 연구가 처음 짚은 게 아닙니다. 2017년 프랑스 연구팀은 폼페이 수도관 한 조각을 분석해 거기에 안티몬(antimony)이라는 더 위험한 중금속이 검출됐다고 발표하기도 했죠. 당시 연구를 이끈 필리프 샤를리에(Philippe Charlier) 박사 연구팀은 베수비오 화산 지대 특유의 광물 환경 때문에 폼페이 물에는 안티몬이 더 많이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이라면 시민들은 일상적으로 구토와 설사, 장기 손상을 겪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하나의 욕탕 침전물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결국 폼페이 사람들의 위생 수준, 도시 인프라의 발전, 그리고 빈부 격차의 흔적까지 들춰내는 셈입니다. 화산이 도시를 묻어 버린 그날, 사람들은 자신들이 매일 몸을 담그던 물의 진짜 정체를 끝내 알지 못했을 겁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에야 우리는 그 물의 비밀을 한 겹씩 들여다보고 있는 거고요.
1. Sürmelihindi, G., et al. (2026). "Seeing Roman life through water: Exploring Pompeii's public baths via carbonate deposit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 123(3), e2517276122. DOI: 10.1073/pnas.25172761222. Charlier, P., et al. (2017). "Did the Romans die of antimony poisoning? The case of a Pompeii water pipe (79 CE)." Toxicology Letters, 281, 184-186. DOI: 10.1016/j.toxlet.2017.07.8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