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속 검은 줄 574개,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은 한 유리공이 처음 알아챘다

햇빛 속 검은 줄 574개,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은 한 유리공이 처음 알아챘다

프라운호퍼 흡수선을 발견한 독일 광학자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1787~1826)⁠의 초상화.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1814년, 독일 바이에른의 작은 광학연구소에서 27살의 한 유리공이 햇빛을 좁은 틈으로 들여보낸 뒤 프리즘에 통과시켰습니다. 빛은 빨강에서 보라까지 익숙한 무지개로 펼쳐졌는데요. 그런데 그 무지개를 망원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본 그는 깜짝 놀라고 맙니다. 무지개 위에 가느다란 검은 줄이, 그것도 무려 574개나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죠.

이 검은 줄들은 이후 무려 100년이 넘게 걸려 정체가 풀렸습니다. 그리고 정체가 풀리자, 인류는 별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또 우리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는데요. 이 모든 발견의 출발점에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한 고아 유리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Joseph von Fraunhofer, 1787~1826)⁠죠.

프라운호퍼는 1787년 3월 6일, 독일 슈트라우빙⁠(Straubing)⁠이란 작은 도시에서 11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대대로 유리를 다뤘는데요. 평범한 인생이었어야 했지만, 운명은 그를 이른 시기부터 흔들기 시작합니다. 열 살이던 1797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한두 해 뒤 아버지마저 사망하면서 그는 고아가 되고 말았죠.

후견인들은 어린 프라운호퍼를 뮌헨으로 보내 거울과 장식 유리를 만드는 거장 필리프 안톤 바이흐젤베르거⁠(Philipp Anton Weichselberger)⁠의 도제로 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스승이 영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소년에게 등잔불 켜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도제들에게 일요일 교육조차 받지 못하게 했죠. 프라운호퍼는 이런 어둠 속에서 2년을 견뎠습니다.

그러던 1801년 7월의 어느 날,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이흐젤베르거의 작업장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내린 거예요. 잔해 속에 묻힌 프라운호퍼를 구하는 데에는 몇 시간이나 걸렸는데, 마침 사고 소식을 들은 바이에른의 선제후 막시밀리안 4세가 현장에 도착합니다. 흙더미에서 끌려 나오는 가난한 견습공을 본 그는, 이 소년을 평생 후원하기로 결심하죠.

막시밀리안 선제후의 측근이었던 산업가 요제프 폰 우츠슈나이더⁠(Joseph von Utzschneider)⁠는 프라운호퍼에게 수학과 광학 책을 사 주고, 베네딕트보이에른⁠(Benediktbeuern)⁠에 있던 자신의 광학연구소에서 일할 기회를 줬습니다. 책 한 줄 마음껏 읽지 못했던 견습공은 20대 초반에 이 연구소의 유리 제조 부문 전체를 책임지는 자리에 오릅니다. 그리고 1807년, 스무 살의 그는 첫 과학 논문을 발표하죠.

프리즘 속에서 발견한 574개의 검은 줄

당시 프라운호퍼가 매달리던 문제는 의외로 실용적인 것이었습니다. 망원경 렌즈가 색에 따라 빛을 다르게 굴절시키는 정도, 즉 굴절률을 더 정밀하게 측정해야 더 좋은 망원경을 만들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빛이 프리즘을 지날 때 빨강과 보라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정확한 경계를 도무지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색이 그라데이션처럼 부드럽게 섞여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알코올과 황을 태운 인공 불빛을 광원으로 써 봤는데, 신기하게도 스펙트럼의 주황색 영역에 환한 띠 하나가 또렷하게 떴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프라운호퍼는 같은 실험을 햇빛으로 다시 해 보기로 합니다. 1666년대에 아이작 뉴턴이 햇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켰던 그 실험을 더 정밀한 장비로 다시 해 본 거예요.

뉴턴이 둥근 구멍으로 빛을 받아 스크린에 비쳤다면, 프라운호퍼는 아주 좁은 슬릿⁠(틈)⁠으로 빛을 받고, 스크린 대신 측량용 망원경⁠(테오돌라이트)⁠으로 무지개를 직접 들여다봤습니다. 그러자 본인의 표현 그대로 무한히 많은 수직 검은 줄이 무지개를 가르고 있었죠. 어떤 줄은 옅었고, 어떤 줄은 새카맸습니다. 그는 슬릿 폭과 장비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 봤지만 줄의 위치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프라운호퍼가 동료들 앞에서 분광기를 시연하는 모습

프라운호퍼가 1814년에 발명한 분광기로 태양광 스펙트럼을 시연하는 모습을 담은 19세기 말의 판화.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Richard Wimmer 회화의 사진판화⁠(1897)

이는 곧 그 검은 줄들이 실험 장비가 만들어낸 환영이 아니라, 햇빛 자체가 가진 성질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립니다. 가장 두드러진 10개 줄에는 A부터 K까지 알파벳을 붙였고, 결국 574개의 줄을 모조리 측정하죠. 또, 시리우스나 베텔게우스 같은 밝은 별의 빛에서도 비슷한 검은 줄들을 발견하는데, 별마다 줄이 그어진 위치가 조금씩 달랐습니다.

이 현상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발견이었습니다. 만약 검은 줄이 지구 대기에서 생긴 거라면 별마다 위치가 다를 수 없거든요. 따라서 줄들은 별과 태양 그 자체가 보내는 정보였던 거죠. 다만 정작 프라운호퍼 본인은 이 줄들이 어떤 정보를 담고 있는지는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고, 훗날 이것들이 자신의 이름을 따 프라운호퍼 흡수선⁠(Fraunhofer lines)⁠으로 불릴 거라는 사실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검은 줄에 숨겨진 별의 화학 성분

프라운호퍼는 정작 학계에서 큰 인정을 받지 못한 채 1826년 6월,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사인은 폐결핵이었지만, 유리 가마에서 산화납을 다뤘던 것이 결정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죠. 그를 평생 후원했던 우츠슈나이더는 추도사에서 그가 우리를 별에 더 가깝게 데려다줬다고 말했는데요.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프라운호퍼는 별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잴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떠난 뒤 30여 년이 지난 1859~1860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키르히호프⁠(Gustav Kirchhoff)⁠와 화학자 로베르트 분젠⁠(Robert Bunsen, 분젠 버너로 유명한 그분 맞습니다)⁠이 결정적 단서를 잡습니다. 두 사람은 실험실에서 나트륨을 태웠을 때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이, 프라운호퍼가 태양에서 봤던 두 줄의 검은 선과 정확히 같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거죠.

이건 무슨 뜻일까요? 별빛이 별의 외곽 대기를 통과할 때, 그 대기 속의 원자들이 특정 파장의 빛만 골라서 흡수해 버린 결과라는 뜻입니다. 즉, 검은 줄 하나하나가 특정 원소의 지문이었던 거예요. 줄의 위치를 보면 별이 어떤 원소로 이루어져 있는지, 줄의 진하기를 보면 그 원소가 얼마나 많은지까지 알 수 있게 됐죠. 1863년에는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긴스⁠(William Huggins)⁠가 별과 지구가 같은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태양광 스펙트럼에 나타난 프라운호퍼 흡수선 도해

프라운호퍼가 발견한 검은 흡수선들이 가시광 스펙트럼 위에 표시된 도해. 알파벳 기호는 그가 처음 붙인 주요 선의 이름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Cepheiden

그런데 이 검은 줄의 진짜 위력은 20세기에 들어서야 폭발합니다. 만약 빛을 내는 천체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으면, 그 빛의 파장은 마치 호스를 흔들 듯 짧아져서 모든 흡수선이 파란색 쪽으로 살짝 밀려납니다. 반대로 멀어지고 있으면 파장이 길어져 빨간색 쪽으로 밀려나죠. 천문학자들은 이를 청색편이, 적색편이라고 부르는데요. 별의 화학 성분이 박힌 검은 줄이 일종의 속도계 눈금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유리공의 흑선이 알려준 우주의 비밀

1920년대 후반, 미국 윌슨산 천문대의 에드윈 허블⁠(Edwin Hubble)⁠과 동료 밀턴 휴메이슨⁠(Milton Humason)⁠은 멀리 있는 은하들을 관측하다 깜짝 놀라고 맙니다. 우리 은하 근처의 일부 은하를 빼고는, 거의 모든 은하의 프라운호퍼 흡수선이 적색편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적색편이가 더 컸습니다. 모든 은하가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으며, 멀수록 더 빨리 멀어진다는 결론에 이른 거예요.

이 관측은 1929년 허블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짧은 논문 한 편으로 정리됐고, 이후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로 자리 잡습니다. 200년 전 한 가난한 유리공이 햇빛 속에서 발견한 가느다란 검은 줄들이, 결국 우주의 역사 자체를 다시 쓰게 만든 거죠. 컬럼비아 대학교 우주생물학센터의 칼렙 샤프⁠(Caleb Scharf) 박사는 프라운호퍼야말로 허블이 우주의 역동성을 알아채는 토대를 깔아 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에드윈 허블 인물 사진

프라운호퍼 흡수선의 적색편이를 측정해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1889~1953)⁠의 1931년 인물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Johan Hagemeyer

정규 교육이라곤 거의 받지 못한 채 등잔불 하나 켜지 못하던 견습공이, 햇빛 속의 검은 줄을 끈질기게 들여다본 끝에 우주의 팽창이라는 어마어마한 발견의 첫 단추를 끼웠다는 사실. 참 놀랍지 않나요? 오늘날에도 천문학자들은 외계 행성의 대기에 산소나 메탄이 있는지를 따질 때 여전히 프라운호퍼식 분광 분석을 사용합니다. 200년 전 한 청년이 본 그 무지개 위 검은 줄들은, 지금도 별과 별 사이에서 우리에게 정보를 보내고 있는 거예요.

참고문헌

1. Hubble, E. (1929). "A relation between distance and radial velocity among extra-galactic nebula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15.3.1682. Jackson, M. W. (1996). "Buying the Dark Lines of the Solar Spectrum: Joseph Von Fraunhofer's Standard for the Manufacture of Optical Glass." Archimedes (Springer). DOI: 10.1007/978-94-009-1784-2_13. Bahcall, N. A. (2015). "Hubble's Law and the expanding univers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1424299112

햇빛 속 검은 줄 574개,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은 한 유리공이 처음 알아챘다 – 100년 전 과학 – Fin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