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에는 재미있는 조합이 하나 있습니다. '빵' 기호와 '맥주' 기호를 나란히 붙여놓으면, 이게 '식사' 혹은 '양식'이라는 뜻이 되죠.
밥+국이 아니라, 빵+맥주.
그게 이집트인들이 생각하는 '한 끼'였단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황당한 건 따로 있습니다. 피라미드를 짓던 노동자들이 받은 '하루 임금'이 뭐였는지 아시나요? 금도, 은도, 동전도 아닙니다. 바로 이 빵과 맥주였죠. 그것도 1인당 하루 약 5리터, 맥주 500ml 캔으로 치면 10캔에 달하는 양을요. 한 학자의 추산에 따르면, 가장 큰 피라미드 하나를 짓는 데 소비된 맥주만 대략 8억 7천만 리터. 올림픽 규격 수영장으로 환산하면 약 350개를 가득 채울 만한 양입니다.
도대체 고대 이집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왜 노동자들에게 물도 아니고 맥주를 그렇게 퍼줬던 걸까요?
피라미드 공사장 바로 옆에는 축구장 크기만 한 거대한 빵 공장이 있었습니다. 매일 새벽, 수백 명의 남녀가 줄지어 '쿼른(quern)'이라는 석제 맷돌에 '엠머(emmer)'라는 밀을 갈았죠. 엠머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주식으로 먹던 밀 품종인데, 현재 우리가 먹는 빵 밀보다 훨씬 거칠고 단단한 곡물입니다.
반죽을 치대는 방식도 흥미로운데요. 수천 명이 먹을 반죽을 손으로만 치댈 순 없었던 탓에, 발로 밟아 치댔을 가능성이 크다고 고고학자들은 추정합니다.
빵 굽는 방식은 더 독특하죠. 이집트인들은 오븐을 따로 짓는 대신, 원뿔 모양의 점토 틀을 사용했습니다. 땅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벌건 숯을 가득 채운 다음, 점토 틀을 거꾸로 꽂아 넣습니다. 그리고 틀 안에 반죽을 집어넣고, 똑같은 틀을 뚜껑처럼 덮은 뒤, 그 위에 다시 뜨거운 재를 잔뜩 쌓죠.
이런 장치가 공터에 끝도 없이 줄지어 있는 광경이라니. 고고학자들은 이 모습을 "거대한 계란판 같았다"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하루 수천, 수만 개의 빵이 구워져 나왔던 거죠.
여기서 재미있는 통계 하나. 고고학자들이 이집트 5천 년 역사에서 확인한 빵의 종류는 무려 '40가지'가 넘습니다. 비스킷, 바게트, 피타빵은 기본이고요. 꽃 모양, 과일 모양, 새 모양, 악어 모양, 심지어 남근 모양 빵까지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창의성, 무시 못 하죠.)
그런데 일반 노동자들이 먹은 건 원뿔 모양의 기본 빵이었습니다. 최근 한 연구자가 이집트 고대 도자기 파편에서 효모를 채취해 그 시절 빵을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데 성공했는데요. 재현된 빵은 소금, 효모, 고수(coriander), 엠머 밀가루. 딱 네 가지 재료로만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맛이 놀라울 만큼 훌륭하다는 게 시식자들의 공통된 평가죠. 스펀지처럼 쫄깃하고, 사워도우 특유의 시큼한 풍미가 돌고, 고수 향이 뒤늦게 혀끝을 간지럽히는 맛. 뉴욕이나 파리의 고급 비스트로에 내놔도 손색없을 수준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피라미드에 쓰인 돌덩이 하나의 평균 무게가 2.5톤. 큰 건 수십 톤에 달하죠. 이런 걸 땡볕 아래서 굴리고 끌어올리던 사람들한테, 맛없는 빵을 주면 어떻게 됐을까요? 파업 각 아니겠습니까? 피라미드급 중노동에는 피라미드급 퀄리티의 빵이 필요했던 거죠.
이집트 노동자가 하루에 마신 맥주는 약 5리터, 10파인트. 사막 한가운데 지표면 기온이 섭씨 54도까지 올라가는 환경에서 돌을 옮겨야 했으니, 목이 타들어 갈 만도 했겠죠. 그런데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 하나. '어린이들도' 맥주를 일상적으로 마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나일강 물은 사실상 생활하수였거든요. 이집트인들이 빨래하고, 용변 보고, 가축 씻기던 그 강물이 식수원이기도 했으니까요. 알코올이 미생물을 죽여주는 덕분에, 오히려 맥주가 강물보다 훨씬 안전한 음료였던 셈이죠. 이집트 의사들은 맥주를 '약'으로 처방하기도 했습니다. 기침, 변비, 결막염, 소화불량. 왠만한 질환에는 일단 맥주가 처방전에 올랐죠. 그럼 이집트 맥주, 어떤 맛이었을까요?
현대 맥주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 몇 가지를 짚어야 합니다.
첫째, 홉(hop)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아는 맥주의 쌉쌀한 뒷맛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죠. 둘째, 엠머 밀로 양조했기 때문에 훨씬 걸쭉하고 크리미했습니다. 현대 맥주가 '음료'라면, 이집트 맥주는 '묽은 죽'에 가까웠습니다. 셋째, 곡물 껍질이 둥둥 떠다녔습니다. 여과를 하긴 했지만 완벽하진 않아서, 사람들은 '갈대 빨대'로 맥주를 빨아 마셨죠. 껍질을 걸러내기 위해서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특징. 이집트 맥주는 엄청나게 '시큼'했습니다. 양조통이 열려 있다 보니 초파리가 떼로 달려들었고, 녀석들이 묻혀온 박테리아가 알코올을 식초로 바꿔놓았거든요. 일부 학자들은 이집트 맥주를 "알코올성 죽", "시큼한 보리 밀크셰이크"라고 묘사합니다. 재현 연구 결과를 보면 콤부차와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하는데요. 섭씨 50도가 넘는 사막에서 돌 나르고 온 노동자에게 이보다 시원한 음료가 있었을까 싶죠.
그런데 여기서 진짜 충격적인 학설이 하나 등장합니다. 인류 문명의 기원에 대한 교과서 설명은 대략 이렇습니다. "인류가 야생 곡물을 모아 '빵'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농업이 발달했고, 그 결과 문명이 탄생했다. 맥주는 우연히 만들어진 부산물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 순서가 완전히 뒤집혀 있다고 주장합니다. 왜냐고요? 빵을 만드는 게... 말이 안 되게 귀찮거든요.
1만 년 전 수렵채집인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죠. 배가 고프면 견과류나 뿌리를 캐먹는 게 훨씬 쉬웠습니다. 사냥하면 단백질이 한 방에 해결되고요. 그런데 굳이 뙤약볕 아래서 허리 굽혀 몇 시간씩 이삭을 따고, 그걸 또 몇 시간씩 갈아 가루로 만들고, 진흙 오븐까지 지어가며 빵을 구워 먹을 이유가 있었을까요?
빵 몇 조각을 얻자고 그 난리를요? 투입 대비 산출이 영 안 맞죠. 하지만 맥주는 얘기가 다릅니다. 맥주는 일단 '취하게' 해주고, 사회적 결속을 강화시키고, 종교 의식과도 깊이 연결돼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조 과정이 빵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반쯤 터진 곡물을 물에 데우고, 향신료 넣고, 효모가 알아서 일하길 기다리면 끝. 밀가루 갈 필요도 없죠. 이 학설의 시나리오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1)처음엔 계절 종교 의식을 위해 야생 곡물로 맥주를 만들었다. → (2)의식을 더 자주 치르고 싶어서 곡물을 일부러 기르기 시작했다. → (3)그게 농업의 시작이 됐다. → (4)투입한 노동이 아까워 곡물을 먹기도 했다. → (5)농업 기술이 발달해 잉여 식량이 생겼다. → (6)잉여가 사람을 모았고, 도시가 생겼다. → 도시는 직업을 분화시켰다. → (7)장인, 사제, 서기관, 군인, 상인이 등장했다. → (8)그렇게 문명이 탄생했다.
그러니까 인류 최초의 도시국가도,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도. 그 출발점엔 '술 한잔 걸치고 싶었던' 우리 조상들의 소박한 욕망이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물론 모든 고고학자가 이 가설에 동의하진 않습니다. 점잖은 학자들은 이 학설을 상당히 당혹스럽게 여기죠. 인류의 모든 예술과 시와 건축과 종교가 결국 '얼큰하게 취해보려는 인간의 갈증'에서 시작됐다니, 받아들이기 쉬운 얘기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고대 이집트에서만큼은, 빵과 맥주가 문명의 핏줄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빵과 맥주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죠. 그래서 무덤에도 맥주 단지와 빵 덩어리를 잔뜩 넣었습니다. 저승에서도 목마르면 안 되니까요.
피라미드를 보면서 '도대체 저걸 어떻게 지었을까' 감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빵 한 조각과 맥주 한 잔이라고나 할까요?
참고문헌
1.Hayden, B., Canuel, N., & Shanse, J. (2013). What was brewing in the Natufian? An archaeological assessment of brewing technology in the Epipaleolithic. Journal of Archaeological Method and Theory, 20(1), 10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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