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8년, 미국 캔자스주 로건 카운티의 어느 밀밭. 화석 사냥꾼 찰스 H. 스턴버그(Charles H. Sternberg)가 쟁기날에 걸린 희뿌연 석회질 덩어리를 조심스레 털어내고 있었습니다. 흙을 쓸어내자 드러난 건 사람 손바닥보다 긴, 원뿔 모양의 이빨이었어요. 밀밭 아래 8천만 년 잠들어 있던 거대한 바다 도마뱀의 턱이었죠.
스턴버그는 이 화석을 워싱턴 D.C.로 부칩니다. 받은 곳은 스미스소니언 국립박물관. 그곳의 고생물학자 찰스 W. 길모어(Charles W. Gilmore)가 포장을 풀었을 때, 그는 자기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뭔지 알았습니다. 타일로사우루스 프로리거(Tylosaurus proriger). 몸길이 8미터가 넘는, 백악기 후기 바다의 정점 포식자였어요.
그런데 길모어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 짐승이 자기 마지막 식사의 비밀을 갈비뼈 속에 품고 있었다는 걸요. 그 비밀이 드러나는 데는, 앞으로 83년이 더 걸립니다.

화석 사냥꾼 찰스 H. 스턴버그. 1860년대부터 40년 넘게 캔자스 백악지대를 누비며 수십 구의 바다 도마뱀 뼈를 발굴한 전설적 인물입니다.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지금은 지평선까지 밀밭이 펼쳐진 캔자스. 근데 8천만 년 전, 이곳은 바닷속이었습니다. '서부내륙해로(Western Interior Seaway)'라 불리던 이 바다는 북극해에서 멕시코만까지 북미 대륙을 통째로 반으로 갈랐어요. 너비는 1,000킬로미터, 가장 깊은 곳은 800미터. 한반도만 한 바다가 대륙 한복판에 누워 있었던 셈이죠.

백악기 후기(약 8천만 년 전, 캄파니아절)의 북미 대륙과 서부내륙해로. 오늘날의 캔자스·네브래스카·사우스다코타 일대는 모두 바닷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 William A. Cobban et al. / USGS (CC BY 4.0).
이 바다의 주인공이 바로 타일로사우루스였습니다. 몸은 뱀처럼 길쭉했고, 꼬리 끝엔 상어처럼 위아래로 뻗은 지느러미가 달렸어요. 네 다리는 노처럼 생겨서, 물속을 쏜살같이 달렸죠. 근데 재미있는 게, 이 짐승은 공룡이 아닙니다. 분류상으론 오늘날 왕도마뱀이나 뱀의 직계 친척이거든요. 한마디로 바다로 돌아간 거대한 도마뱀이었던 겁니다.
1921년 봄, 길모어는 이 짐승의 해부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그가 주목한 건 아래턱이었어요. 타일로사우루스의 턱은 일반 도마뱀과 달랐거든요. 중간에 또 하나의 경첩이 있었습니다. 뱀이 달걀을 통째로 삼킬 때 턱이 옆으로 벌어지잖아요? 그것과 똑같은 원리였던 거죠.

스미스소니언이 소장한 타일로사우루스 프로리거 표본(USNM V6086). 길쭉한 머리와 원뿔형 이빨이 도마뱀류의 특징을 선명히 드러냅니다. ⓒ Smithsonian NMNH / CC0.
같은 시기 앨라배마에서 발견된 친척 글로비덴스(Globidens alabamensis)는 버섯 모양 이빨로 조개를 으깨 먹었는데, 타일로사우루스의 이빨은 전혀 달랐어요. 끝이 원뿔처럼 뾰족하고, 날이 서 있었죠. 분명히 살을 찢는 포식자였던 겁니다. 게다가 이중 경첩 덕에, 자기 머리보다 큰 먹이도 통째로 삼킬 수 있었어요.
길모어는 이빨 하나하나, 척추 한 마디 한 마디를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꼬리는 어떻게 움직였을지, 다리는 물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지. 집요하게 분석했죠. 근데 정작 그는, 이 짐승의 가장 결정적인 단서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2001년으로 건너뛸게요. 캔자스에 사는 아마추어 고생물학자 마이클 에버하트(Michael Everhart)는 스미스소니언 수장고에서 오래된 표본 하나를 꺼내 봅니다. 표본번호 USNM 8898. 바로 1918년 스턴버그가 파내 길모어의 책상 위에 놓였던 그 타일로사우루스였어요. 83년째 수장고 선반에서 잠들어 있던 셈이죠.
에버하트는 갈비뼈 안쪽에 박힌 석회암 덩어리를 조심조심 깨 나갔습니다. 한참을 다듬던 그의 손이 멈춥니다. 석회암 속에, 또 다른 뼈가 있었거든요. 그것도 한두 조각이 아니었습니다. 척추뼈, 갈비뼈, 다리뼈가 통째로 엉켜 있었어요.
돌리코린콥스(Dolichorhynchops). 목이 길고 돌고래 정도 크기인, 플레시오사우루스의 일종이었습니다. 요컨대 에버하트는 타일로사우루스의 마지막 식사 메뉴를 발굴해 낸 거예요. 8천만 년 전 어느 날, 이 8미터짜리 포식자는 비슷한 덩치의 해양 파충류를 통째로 삼키고는, 소화시키기 전에 죽었던 거죠. 그리고 그 증거는 갈비뼈 안에 갇힌 채 8천만 년을 버텼습니다.
에버하트는 이 발견을 2004년 네덜란드지질학회지(Netherlands Journal of Geosciences)에 발표합니다. 한 마리 화석이 발굴된 지 86년 만에, 그 짐승의 마지막 한 끼가 뒤늦게 밝혀진 순간이었죠. 1921년의 길모어에겐 CT 스캐너도, 현대적 제작(preparation) 기술도 없었습니다. 갈비뼈 속을 들여다볼 방법 자체가 그 시대엔 존재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014년, 스웨덴 룬드대학교의 요한 린드그렌(Johan Lindgren) 연구팀이 네이처(Nature)에 충격적인 논문 한 편을 실어요. 타일로사우루스류 화석에 남아 있는 멜라닌 색소의 화학적 흔적을 분석했더니, 이들의 피부가 오늘날 백상아리나 장수거북처럼 '등은 어둡고 배는 밝은' 반대그림자(countershading) 패턴을 지녔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었죠.
즉, 길모어가 100년 전 머릿속으로 그렸던 회색빛 괴물은 사실 등이 남색에 가까운 짙은 빛, 배는 은백색이었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어두운 바다 밑과 구분이 안 되고, 아래서 올려다보면 밝은 수면과 섞이는 완벽한 수중 위장이었어요. 먹이의 입장에선, 다가오는 걸 알아챘을 땐 이미 늦었을 겁니다.
1918년, 밀밭에서 턱뼈를 들어 올린 스턴버그. 1921년, 워싱턴의 작업대에서 그 턱의 경첩을 그림으로 옮긴 길모어. 2001년, 갈비뼈 속에서 또 다른 바다 괴물을 꺼내 든 에버하트. 2014년, 멜라닌 흔적으로 피부색을 복원한 린드그렌. 하나의 화석이 네 세대의 과학자를 건너가며, 캔자스 백악기 바다의 풍경을 한 조각씩 채워 왔습니다.

오늘날 캔자스주 퀸터(Quinter) 인근 캐슬록의 스모키힐 백악층. 이 하얀 석회암이 바로 8천만 년 전 서부내륙해로의 바닥에 쌓인 해양 퇴적물이고, 타일로사우루스의 뼈가 발굴되는 지층입니다. ⓒ James St. John / Wikimedia Commons (CC BY 2.0).
오늘날 캔자스주 퀸터 근처의 캐슬록에 가 보면, 하얗게 빛나는 석회암 절벽이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어요. 스모키힐 백악층(Smoky Hill Chalk Member). 8천만 년 전 서부내륙해로 바닥에 쌓인 해양 퇴적물이 지금 들판 위로 솟아 있는 셈이죠. 타일로사우루스의 뼈가 나오는, 바로 그 지층입니다.
이 지층 어딘가에는 지금도 8천만 년 묵은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어요. 길모어가 100년 전 본 건 전체 그림의 일부였을 뿐이고, 지금 우리가 보는 것도 미래의 어느 고생물학자한텐 "그 시절엔 그것까지밖엔 몰랐구나" 싶은 한 조각일 겁니다. 캔자스의 밀밭 아래서, 이야기는 아직도 자라고 있는 거죠.
참고문헌
1. Gilmore, C. W. (1921). An extinct sea lizard from western Kansas. Scientific American, 124(14), 273, 280–282.
2. Everhart, M. J. (2004). Plesiosaurs as the food of mosasaurs: new data on the stomach contents of a Tylosaurus proriger (Squamata; Mosasauridae) from the Niobrara Formation of western Kansas. Netherlands Journal of Geosciences, 83(3), 225–229.
3. Lindgren, J., Sjövall, P., Carney, R. M. et al. (2014). Skin pigmentation provides evidence of convergent melanism in extinct marine reptiles. Nature, 506, 484–488.
4. Everhart, M. J. (2017). Oceans of Kansas: A Natural History of the Western Interior Sea (2nd ed.). Indiana University Press.
5. Sternberg, C. H. (1909). The Life of a Fossil Hunter. Henry Holt and Comp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