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한 여성이 처음으로 해저 지도를 그렸다

1950년대, 한 여성이 처음으로 해저 지도를 그렸다

1968년 미 해군 조사선 USNS 케인호에 승선한 마리 사프. 출처: Wikimedia Commons / AIP Emilio Segrè Visual Archives (CC0 Public Domain) / Bill Woodward

1957년 이전까지, 사람들 대부분은 바다 밑이 그저 평평한 모래 평원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단조로운 사막. 그게 당시 해저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이었죠.

그런데 1957년 어느 날, 미국에서 한 장의 지도가 발표됩니다. 북대서양 해저에 거대한 산맥이 솟아 있고, 그 한가운데를 V자로 가르는 깊은 골짜기가 있다는, 그때까지 아무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이 지도를 그린 사람은 컬럼비아대 라몬트 지질연구소의 지질학자이자 제도사였던 마리 사프⁠(Marie Tharp, 1920~2006). 한 여성 과학자가 손으로 직접 펜을 잡고 완성한 결과물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 시절엔 잠수정도, 위성도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한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서 바닷속 지형을 그릴 수 있었던 걸까요?

사프와 헤이즌의 해저 지도 자료를 보관 중인 미국 의회도서관 지리·지도부 컬렉션. 출처: Wikimedia Commons / Library of Congress (Public Domain) / Bruce C. Heezen & Marie Tharp

이야기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사프는 컬럼비아대 라몬트 지질연구소에 합류했죠. 미시간대에서 석유지질학 석사를 받았던 사프였지만, 당시 라몬트의 규칙은 단호했습니다. 여성은 연구선에 탈 수 없다는 거였죠. 바다로 나가는 일은 남자들의 몫. 사프에게 주어진 자리는 사무실 안 제도용 책상이었습니다.

남성 동료들은 연구선 베마호와 애틀랜티스호에 올라 바다로 떠났고, 음향측심기로 해저까지 음파를 쏘아 돌아오는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음파의 왕복 시간을 잰 종이 두루마리, 이걸 가지고 돌아오면 사프가 한 줄 한 줄 깊이로 환산해 종이 위에 그렸죠. 사프의 오랜 공동연구자였던 브루스 헤이즌⁠(Bruce C. Heezen, 1924~1977) 박사도 그렇게 매년 데이터를 잔뜩 들고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1952년, 사프는 결정적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1946년부터 1952년까지 애틀랜티스호가 수집한 음향측심 자료에, 1921년 군함 스튜어트호의 자료까지 더해, 북대서양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단면 6개를 나란히 그린 거죠. 그러자 6개의 모든 단면에서 똑같은 패턴이 보였습니다. 해령 한가운데가 V자 모양으로 깊이 파여 있었던 거예요. 깊이는 평균 2km, 너비 수십 km에 달하는 거대한 골짜기였습니다.

사프와 헤이즌이 1957년 발표한 북대서양 해저의 첫 입체 지형도. 한가운데 솟아 있는 대서양 중앙 해령이 또렷이 보인다.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미국 1931~1963 저작권 미갱신) / Bruce C. Heezen & Marie Tharp

사프는 이 V자 골짜기가 대륙이 갈라지는 흔적, 즉 열곡⁠(rift valley)⁠일 수 있다고 헤이즌에게 보고했죠. 그런데 헤이즌의 첫 반응은 어땠을까요? 그는 사프의 발견을 girl talk(여자 얘기)⁠라며 한마디로 일축해 버립니다. 당시 학계에서 대륙이 움직인다는 알프레드 베게너⁠(Alfred Wegener)⁠의 1912년 대륙이동설은 주류 과학자들 사이에서 거의 비웃음 거리였거든요. 헤이즌은 사프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따로 있었어요. 비슷한 시기 헤이즌은 대학원생 하워드 포스터에게 전 세계 해저 지진의 진앙을 점으로 찍은 지도를 만들게 했는데요. 이 진앙 지도를 사프의 해령 지도 위에 겹쳐 보자 놀라운 그림이 펼쳐졌습니다. 전 세계 해저 지진의 점들이 사프가 찾아낸 V자 골짜기를 정확히 따라가며 줄지어 있었던 거죠. 지각이 갈라지는 자리에서 지진이 일어난다는 가장 직관적인 증거였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첫 입체 지형도는 1957년 발표됐습니다. 사프와 헤이즌은 이 지도를 일부러 physiographic diagram, 즉 비행기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본 듯한 조감도식 도해로 그렸어요. 여기엔 다 이유가 있는데요. 당시는 냉전 한복판이라 음향측심 원자료의 상당수가 군사 기밀이었습니다. 정확한 등심선을 그대로 공개하면 소련 잠수함에게 길을 알려 주는 셈이었죠. 그래서 대략적 지형감만 살리는 방식으로 우회한 거예요.

대서양 중앙 해령에서 마그마가 올라와 새 해양 지각이 만들어지고, 양쪽으로 갈라져 멀어지는 해저 확장 모식도.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 Jagons

1957년 지도는 학계의 풍경을 바꿔 놓았습니다. 해령 한복판이 지각이 새로 만들어지며 갈라지는 자리라는 사실은, 이후 해리 헤스⁠(Harry Hess)⁠의 1962년 해저 확장설로 이어졌고, 1960년대 후반에 이르면 판구조론⁠(plate tectonics)⁠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으로 완성되죠. 대륙이동설을 비웃던 학계가 사프의 지도 한 장 앞에서 입장을 바꾼 셈입니다.

하지만 정작 사프의 이름은 1959년부터 1963년 사이 헤이즌과 동료들이 판구조론을 다룬 주요 논문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사프는 이후에도 대서양 남쪽, 인도양, 홍해, 아덴만까지 해령의 V자 골짜기가 이어진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고, 1977년에는 오스트리아 산악 화가 하인리히 베란⁠(Heinrich Berann)⁠과 함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발행한 《세계 해저 지도⁠(The World Ocean Floor)》까지 완성합니다. 그제야 사프의 작업은 세상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죠.

사프가 라몬트-도허티 종신공로상을 처음 받은 건 2001년. 데뷔하고 50년이 지난 시점이었어요. 미국 의회도서관은 1997년 그녀를 20세기를 대표하는 4대 지도제작자 중 한 명으로 꼽았고, 2025년엔 그녀의 1957년 지도를 다시 조명하는 전시까지 열었습니다. 한때 책상 앞에 갇혀 있던 한 여성의 손끝에서, 지구의 가장 큰 비밀이 모습을 드러낸 거죠.

참고문헌

1. Higgs, B. M. (2020). "Understanding the Earth: the contribution of Marie Tharp" Geological Society, London, Special Publications. DOI: 10.1144/SP506-2019-248

2. Barton, C. (2002). "Marie Tharp, oceanographic cartographer, and her contributions to the revolution in the Earth sciences" Geological Society, London, Special Publications. DOI: 10.1144/GSL.SP.2002.192.01.11

3. Doel, R. E., Levin, T. J., & Marker, M. K. (2006). "Extending modern cartography to the ocean depths: military patronage, Cold War priorities, and the Heezen-Tharp mapping project, 1952-1959" Journal of Historical Geography. DOI: 10.1016/j.jhg.2005.10.011

4. North, G. W. (2010). "Marie Tharp: The lady who showed us the ocean floors" Physics and Chemistry of the Earth. DOI: 10.1016/j.pce.2010.05.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