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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칼럼 · 생명진화

암이 생기기도 전에 위를 떼어 낸 사람들

과학드림2026.11.06

암이 생기기도 전에 위를 떼어 낸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에게 위내시경은 낯선 검사가 아닙니다. 만 40세부터는 2년마다 국가 위암 검진을 받을 수 있고, 2022년 한 해에만 국가 검진으로 약 784만 건의 위내시경 검사가 이뤄졌습니다. 같은 해 새로 위암 진단을 받은 사람은 2만 9,487명으로, 전체 암 발생의 약 10%⁠를 차지해 다섯 번째로 많았습니다. 위암 발생률이 낮은 서구에서는 위암이 국가 검진 대상도 아니라고 하니, 확실히 우리에게 더 가까운 병입니다.

위내시경 검사에 쓰는 내시경.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만 40세 이상에게 2년마다 국가 위암 검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아무 탈이 없는 위를 미리 떼어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엔 위가 없어도 정말 살 수 있나 싶었습니다. 위암 수술로 위의 일부나 전체를 잘라 내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하지만, 이 사람들은 암이 생기기 전에 건강한 위를 내놓았다는 점이 다릅니다.

덩어리를 만들지 않는 암

오해가 없도록 먼저 짚고 가겠습니다. 대부분의 위암은 유전병이 아닙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 짠 음식, 흡연 등이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히죠. 이 글에서 다룰 유전성 미만형 위암은 전 세계 위암의 1%⁠도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드문 경우입니다.

흔히 암이라고 하면 혹처럼 뭉친 덩어리를 떠올립니다. 미만형 위암은 다릅니다. 뚜렷한 덩어리 없이 암세포가 위벽 점막 아래로 스며들듯 퍼지고, 그러면서 위벽이 두껍고 딱딱해집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으니 대개 많이 퍼진 뒤에야 발견되고, 그 단계의 생존율은 약 20%⁠에 그칩니다. 유전성일 때는 주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생깁니다.

미만형 위암 조직을 현미경으로 본 모습⁠(400배 확대). 암세포가 덩어리를 이루지 않고 낱낱이 흩어져 있습니다.

원인 유전자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CDH1입니다. 이 유전자는 E-카드헤린이라는 단백질을 만드는데, 이웃한 세포끼리 서로 붙잡게 해 주는 단백질이에요. 손을 맞잡고 줄 서 있던 아이들이 손을 놓으면 금세 흩어지듯, E-카드헤린이 없으면 세포도 제자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이 단백질은 세포가 마구 불어나지 않게 막는 종양 억제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CDH1 변이를 물려받은 사람은 모든 세포에 고장 난 사본을 하나씩 갖고 태어납니다. 그러다 위 점막 세포에서 나머지 하나마저 고장 나면 E-카드헤린이 사라지고, 서로 붙지 못한 세포들이 덩어리 대신 흩어져 위벽을 파고듭니다. 부모 중 한 명이 변이를 가졌다면 자녀가 물려받을 확률은 50%⁠입니다.

마오리 대가족이 먼저 연구실을 찾았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의 몇몇 대가족에서는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대를 이어 되풀이됐습니다. 1994년, 그중 한 대가족이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교 유전학 연구실에 먼저 연락했고, 이 연구실의 유전학자 패리 길퍼드가 연구를 맡았습니다.

눈여겨볼 건 가족이 연구에 참여한 방식입니다. 가족은 많게는 100명이 모이는 회의를 여러 번 연 뒤에야 참여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연구자가 아니라 가족이 직접 구성원들에게 연락해 DNA 시료를 모은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연구 대상에 머물지 않고 연구의 주인으로 나선 겁니다. 이 연구에서 원인 유전자 CDH1이 밝혀졌고, 결과는 1998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습니다.

유전자 검사로 누가 위험한지 알 수 있게 됐지만, 변이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 어려운 선택이 남았습니다. 해마다 내시경을 받아도 이 공격적인 암을 제때 찾아낸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떠오른 선택지가 암이 생기기 전에 위를 떼어 내는 예방 수술이었습니다. 이 가족의 첫 예방 수술은 환자가 합병증으로 숨지면서 연구 자체가 무산될 뻔했습니다. 그래도 가족은 멈추지 않았고, 더 경험 많은 외과의가 있는 큰 병원에서 이어진 10건의 수술은 성공했습니다. 이후 이 가족에서 위암은 크게 줄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위 없이 사는 사람들이 생긴 지는 이제 30년 가까이 됐고, 전 세계적으로 수천 명이 암을 막기 위해 위를 떼어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위 없이 산다는 것

위는 음식을 잠시 담아 두고, 위산과 소화 효소로 잘게 부수며 섞는 주머니입니다. 영양소 흡수는 대부분 소장에서 일어나니 위가 없어도 살 수는 있습니다. 예방적 위 전절제술은 위를 통째로 떼어 내고 식도를 소장에 바로 잇는 수술입니다. 유방암 위험이 높은 사람이 유방을 미리 떼어 내는 수술과 발상은 같지만, 몸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훨씬 큽니다.

수술 뒤 적어도 여섯 달 동안은 하루 열 번쯤 아주 적은 양을, 껌처럼 오래 씹어 가며 먹어야 합니다. 소화 문제가 잦고, 혈당이 갑자기 오르내려 쓰러지기도 하며, 몸무게도 많이 빠집니다. 몇 달은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병원들의 연구를 보면 환자 열 명 중 한 명꼴로 입원해야 할 만큼 심한 합병증을 겪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몸이 적응합니다. 소장 윗부분이 차츰 위 노릇을 하면서 한 번에 먹는 양이 늘고 체중도 돌아옵니다. 수술한 지 10년이 넘은 여러 사람이 이제는 거의 평소처럼 먹는다고 말합니다. 다만 맹물은 유독 잘 넘어가지 않는데 맛을 낸 물은 괜찮다는 식의 작은 변화는 남습니다. 위를 떼어 낸 젊은 여성들도 대개 임신해 건강한 아이를 낳습니다. 반대로 몇 년이 지나도 메스꺼움과 역류, 피로가 이어져 직업을 바꾼 사람도 있습니다.

평생 챙겨야 할 것도 있습니다. 비타민 B12는 위에서 만드는 내인자가 있어야 흡수되기 때문에, 위가 없으면 평생 B12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은퇴한 외과 종양학자 대니얼 코잇은 위 절제가 장기적으로 뼈 건강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위산이 없으면 칼슘 흡수가 어려워질 수 있고, 나이가 들수록 골절 위험이 커진다는 설명입니다.

코잇은 수술 뒤의 심리적·사회적 영향도 더 연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위를 줄이는 비만 수술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알코올 사용 장애가 늘어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위를 통째로 떼어 낸 사람들의 음주 문제는 아직 일화 수준이라 제대로 된 연구가 필요합니다.

마오리 공동체 안에서도 세대에 따라 겪는 어려움이 달랐습니다. 가족이 위암으로 숨지는 것을 지켜본 윗세대보다, 그런 비극 없이 자란 젊은 세대가 수술 뒤 마음고생을 더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비극이 줄었다는 건 분명한 진보인데, 바로 그 때문에 위를 내놓는 일이 더 큰 희생처럼 느껴질 수 있는 거죠.

수술만이 답은 아니다

가족력이 뚜렷한 변이 보유자가 평생 진행성 미만형 위암에 걸릴 위험은 약 70%⁠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성 보유자는 소엽성 유방암 위험도 약 40%⁠로 높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가족력이 없는 보유자의 평생 위험은 약 10~40%⁠로 더 낮을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수술 대신 정기 내시경으로 지켜보는 쪽을 택하는 사람도 있고, 의사들도 이런 선택을 예전보다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수술이 필요 없어진 건 아닙니다. 수술에 비교적 신중한 편인 코잇도 가족력이 뚜렷한 사람에게는 예방적 위 절제를 권합니다.

길퍼드의 연구실은 위를 떼어 내지 않아도 되는 치료법이나 약을 찾고 있습니다. 그는 언젠가 지금의 위 절제를 돌아보며 너무 가혹한 수술이었다고 여기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봅니다. 이 변이가 왜 마오리 가족들에서 유난히 흔하고, 그것도 여러 번 따로 생겨났는지도 아직 모릅니다. 과거에 어떤 진화적 이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위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1993~1995년 진단 환자 43.9%⁠에서 2018~2022년 진단 환자 78.4%⁠로 크게 올랐습니다. 하지만 마오리 가족의 이야기는 일찍 찾아내는 것만으로는 안심하기 어려운 암도 있다는 걸 보여 줍니다. 가족력이 걱정된다면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수술보다 그 시작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원인 유전자를 찾는 첫걸음은 연구자가 아니라, 대를 이어 가족을 잃어 온 한 공동체가 먼저 내디뎠으니까요.

참고 자료

  • Guilford 외, "E-cadherin germline mutations in familial gastric cancer", Nature(1998)
  • 미국 국립보건원 의학도서관 MedlinePlus, 유전성 미만형 위암⁠(HDGC) 정보
  •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 2022년 국가암등록통계⁠(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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