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장수거북 영상을 털어내며

1년쯤 전, 「바다거북의 진화」를 만들고 있었다. (25년 11월 21일에 올렸었네.) 그때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김일훈 박사님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장수거북 이야기를 잠깐 들었다. 다른 바다거북들과 달리 장수거북에게는 등딱지가 없다는 것. 딱딱한 껍데기 대신 가죽이 몸을 덮고 있다는 것. (거북인데 등딱지가 없다니. 학명부터가 가죽이다. 데르모켈리스 코리아케아(Dermochelys coriacea). 데르모도 코리아케아도 '가죽'이라는 뜻이다.)
그 얘기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때부터 장수거북 콘텐츠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그 장수거북 영상을 올리기 직전이다.
영상은 장장 27분이 넘는다. 과학드림에서 한 편으로 낸 영상 중에는 아마 가장 길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는 일곱 장으로 나눴다. 노른자도 배아도 없는 가짜 알, 사라진 등딱지, 하루 평균 330kg씩 해파리를 먹어 치우는 식성, 1,344m까지 내려가는 심해 잠수, 차가운 바다를 견디는 몸, 20,558km의 여행, 그리고 7만 마리에서 755마리로 줄어든 동태평양 어미들까지.
논문을 찾고 검토하는 데 오래 걸렸다. 그중에서도 과거 과학자들의 가설이 담긴 논문을 찾는 게 특히 어려웠다. (과학자들 사진은 또 왜이리 찾기 힘든 건지.)
원고 얼개를 짜는데 고민이 많았다. 해파리를 먹는 이야기 바로 다음에 심해 잠수 미스터리를 붙였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위기 이야기는 마지막 챕터에 모았다. 사실, 과학 컨텐츠 스크립트를 작성할 때 이런 구성 작업이 생각보다 오래걸린다. (사실, 꿀 좀 빨아 볼까해서 AI에 맡겨 보기도 했는데, 영~ 탐탁지 않아서 그냥 직접 ㅎㅎ)
처음 만든 장면들은 너무 촌스러웠다. 그래서 수정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말풍선은 최대한 짧게, 약간의 유머가 느껴지게 하고 싶어서 여러 번 고쳤다. (근데, 이 아재 감성이 어디 가겠는가?)
새벽 작업 때는 장수거북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는 게 굉장히 오래 걸렸다. 솔직히 그냥 생성형 이미지로 대체해서 대충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과학드림 컨텐츠 영상의 결이 많이 바뀌고 있는 중인데, 시청자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실 걱정이 많다. 퀄리티가 높아졌다는 분도 있고, 예전 B급 감성이 좋다는 분도 있고.)
장수거북을 비롯해 애니메이션 속 생물들은 중간에 3D로 다시 만들어 갈아 끼웠다. 영상 곳곳에 튀어나오는 두더지만 빼고. (개인적으로 두더지는 2D가 더 귀여워서)
새벽 2시 무렵에는 타노스 장갑의 핑거스냅을 붙잡고 있었다. 중지와 엄지가 맞닿은 채로 튕겨야 하는데, 작업하면 할수록 손가락 모양이 점점 더 이상해지는 바람에, 환장할 노릇이었다. (지구온난화 이야기에 타노스가 왜 나오는지는 영상의 챕터 7에서 확인하시라.)
썸네일은 그동안 써 온 서체와 스타일에서 조금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전 스타일을 살짝 살리면서도 새롭다는 느낌을 주는 게 어려웠다. 가끔은 썸네일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게 맞나 싶을 때도 있다. 그렇게 27분을 털어냈다. 너무 후련하다. (등딱지를 벗은 기분이랄까?)
다만, 조회수는 조금 걱정된다. 장수거북은 사실 대중적인 소재가 아니라서. 허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더 이상 나의 소관이 아닌 것을.
아, 그리고 영상 맨 끝에는 내가 만든 게임을 하나 소개했다. 「장수거북 빌리지」. 새끼 장수거북이 해파리를 먹으며 바다를 여행하고, 자랄수록 등 위로 따개비들이 이사 와서 작은 마을을 지어 나가고, 더 자라면 심해 탐험도 할 수 있다. (이런 작업은 예전이라면 꿈도 못 꿨겠지만, ai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는다. 참, 신통방통한 세상이다.) 영상 콘텐츠 공개 일정에 맞춰 부랴부랴 서둘러서 버그도 많고, 기능도 아직 많이 구현되지 않았다. 그래도 누군가는 재미있게 해주었으면 하는...(꿈도 야무지다)
후~ 이제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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